네 명의 작은 선생님들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잘하게 될 줄 알았다
부족한 것이 없고 모르는 것도 없이
힘도 엄청나게 센 슈퍼맨 같은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어른이었다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고 보니
(정말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된 것 같다)
어른은 처음이라서, 더욱이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준비 없이 맞이한 계절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다
수많은 날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이리저리 공중에 떠다니다가
어느덧 어른이 된 지도 한참 지나게 되었다
하지만 어릴 적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과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까마득히 멀다
아직도 인생의 골목길 꺾어지는
언저리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서성이는 게
겉모습만 어른이고 속에는 어린아이가
그대로 있으면서 당최 자라지를 않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부모'가 되었다
부족한 나에게 부모라는 이름은
한여름 오후에 소나기처럼 갑자기 쏟아졌기에
우산도 없이 흠뻑 온몸이 젖도록 맞기만 했다
소나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여전히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앞으로 다가올 가을을 대비해
한층 성숙해질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을을 준비하지..?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시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많은 시험과 자격증이 있지만
정말 중요한 부모가 되는 데에는
아무 자격증도 시험도 없다는 게 신기하다
아.. 실습도 안 해봤는데
부모 자격증도 없는데
부모 시험에 합격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직 내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꽁꽁 숨긴 어린이가 살고 있는데..
어른이 처음일 때보다 부모가 처음일 때가
더 걱정이었고 걱정이고 걱정일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오늘도 3살 막내 아이는
'아빠~' 부르며 달려와 안긴다
조금만 장난을 쳐주어도
눈만 마주치면 까르르 웃는다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온다.
폭 안기어 책이 뚫어져라 보면서 열심히 듣는다
어딘가 다치거나 조금만 긁혀도
나에게 달려와 꼭 보여주고 알려준다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서럽게 울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하소연한다
길을 걸으면 신기한 것 투성이라
계속 어눌한 말로 질문도 한다
이렇게 부족한 나에게
의지하고 달려오는 어린 인생이 있다
세상 최고의 개그맨인 양 웃어 주는 사람이 있다
세상 최고의 작가인 것처럼 내가 읽어주는 글을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세상 최고의 의사인 것처럼 조금만 다쳐도 달려와
꼭 치료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 최고의 상담가처럼 모든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울면서 다 털어놓는 사람이 있다
세상 최고의 박사인 것처럼 모르고 궁금한 것은
전부 다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
비록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한 나여도,
이런 나라도 '아빠~'하고 불러주며
달려와 안기는 한 사람이 있어서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전보다 더 성장하고 싶다
드디어 내 안에 당최 자랄 생각을 하지 않던
어린아이도 자라기 시작한다
아.. 이렇게 자라는구나
어른이 되었다고 자라는 게 끝이 아닌 것을
알게 되니 참 기쁘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방황하던 내 별이
제 길을 찾아 점차 빛을 찾아가는 것같이
영혼이 기쁨으로 밝게 채워진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아이도 나를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나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아이들은
나의 작은 선생님들이다
앞으로 이 작은 선생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이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마음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고 싶다.
P.S.
첫째 9살, 둘째 7살 , 셋째 5살, 넷째 3살
우리 네 명의 소중한 선생님들 사랑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