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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이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참 고마웠어

by 아르망

마지막 문이 닫히기 전,

텅 빈 집을 가만히 안아봅니다.


짐이 떠나간 빈자리와

방 안에 멈춰 서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시간까지.


벽지에 층층이 그어진 낡은 연필 자국,

어제보다 높아진 오늘을 자랑하던 목소리.


그 1센티,

눈부신 수평선 위로 모두 함께 웃던 시간마저

어느새 벽을 짚고 까치발로 서 있습니다.


창가의 가느다란 거미줄이

얇은 시간의 줄처럼 천천히 흔들립니다.


잘 가.

지금까지 참 고마웠어.


까치발로 서 있던 그 시간이,

여리고 투명한 실낱 하나를 빌려

흔들어 주던 마지막 손인사.


집 앞에는 훌쩍 자란 단풍나무가

바람결에 주홍 잎을 펼치고,

그 틈 사이로 햇살이

금빛 물방울이 되어 흩날립니다.


이 모든 것을 담던 제 눈동자에

어느새

풍경이 넘쳐흘러내립니다.


아, 짐은 모두 떠났지만

추억은 이사 날짜를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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