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각설탕과 검은 호수
창문, 그 투명한 거름망 틈으로
꿀빛 햇살이 가득 쏟아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물줄기처럼.
밤새 곱게 갈린 어둠이
차곡차곡 모아져 있던 방.
그 검은 가루 위로 따스한 빛이 스며들자
아침이 깊은 향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밤새 묵묵히 가라앉아 있던 꿈은
그 향기에 이끌려
아지랑이 같은 꽃으로 피어나고,
어제의 기억처럼 투명하게 물든
그 여린 꽃잎들은
한 겹, 두 겹 제 속을 열어 보이다가
어느새 황홀한 모양으로
수면 위에 피어났다.
밤새 자리를 뒤척이던 그림자와
물 위에 피어난 꿈들이 담긴
투명한 잔에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한 방울, 두 방울 선명하게 차오른다.
어느새 향기로 채워진 그 호수
들어 올리니,
밖에서 서성이던 소리들은
깊은 바닥으로 사르르 가라앉았다.
늘 앞질러가던 시간도 이제 걸음을 늦추고,
갓 데운 우유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흐른다.
입술이 호숫가에 닿는 순간,
시간은 뒤꿈치를 들고 속삭였지.
“우리 잠시 쉬었다 가자.”
은수저로 노를 삼아 휘저으니
우윳빛 물결이 겹겹의 기억을 둥글게 감싸고,
물풀처럼 흔들리던 낡은 마음은
그 엉킨 뿌리까지 풀린다.
모난 각설탕 한 조각—
내 각진 마음 실렸을
그 작고 하얀 배 천천히 녹아 사라질 때,
이토록 달콤하게 잔잔해진 호숫가에
나는 고요히 서 있다.
호수의 수위는 조금씩 낮아지고,
마음의 수위는 천천히 차오르는구나.
마침내 찻잔이 투명한 바닥을 드러낼 때
아침은 어느덧 살기 좋은 온도로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 호숫가 산책.
그 향기로운 길
한 걸음, 한 걸음 거닐던 아침.
마음 깊은 데서 들려오는지,
호수 깊은 바닥에서 들려오는지 모를
다정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괜찮아. 하얀 각설탕처럼 모났던 너도,
검은 호수처럼 깊이 가라앉았던 너도—
이토록 따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