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1. 내 캐리어에는 구황작물이 가득해
내가 자주 승무를 가는 스케줄 노선은 호남선, 전라선이다.
각각의 종착역은 목포역과 여수엑스포역.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노선 특성상 노인분들이 정말 많다.
거주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여행객들도 경로 고객이 많은 만큼
다양한 노인분들을 만나는데 한결같은 게 있다. 바로 간식이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 떡, 과일, 홍삼 맛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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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늦둥이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란 것을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 그분들의 사랑은 남아 있을지언정.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이야기하면
나는 공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특히나 대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에게 막말을 일삼거나 막무가내로 ‘해줘~’ 하는 분들(물론 좋으신 분들도 많다)을 만나다 보니 나에겐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첫 인식은 ‘고집스러움’이었다.
이런 나에게 인식을 바꿔준 몇몇 고객님들이 계신다.
[승하차 도우미 : 열차 내 도움이 필요한 승객들의 승하차를 도와드리고, 하차 역 휠체어 신청 및 인계를 도와드린다]
객실 순회 중 한 할아버지 승객이 부르셨다.
“내가 거동이 좀 불편한데...”
“네 고객님, 혹시 휠체어를 신청해 드릴까요?”
“그럼 좋은데, 내가 아예 이동이 어려워요”
“네. 제가 같이 이동 도와드릴게요~ 어디까지 가세요~?”
“구례구역!”
“멀리 가시네요~! 혹시 지금 화장실 필요하시면 같이 가드릴까요~?”
사실 별거 아닌, 어쩌면 업무로선 당연한 일.
내리실 때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며 고구마와 감자를 쥐여주시는데, 갓 구운 것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또 한 번은 한 할머니께서 부르셨다.
“내가 열차를 잘못 탄 거 같아요”
“가지고 계신 승차권을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 “따님분과 제가 통화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열차였기 때문에 우리 열차를 타고 가신 할머니께서는
마중 나온 따님분과 함께 “안녕~고마웠어요” 하며 홍삼 캔디 하나를 쥐여 주셨다.
사실 못 먹는 홍삼, 아니 좋아하지 않는 홍삼.
하지만 그 작은 하나에 담긴 마음이 따뜻해서 우선 캐리어 안에 넣는다.
일을 하면서 많은 고객들에게 VOC를 받는다.
‘고마웠어요’, ‘인상 깊어요’, ‘칭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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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말도 너무 힘 난다.
하지만 나는 이 말들보다 내 캐리어 안에 있는 구황작물이 칭찬 VOC보다 더 값지다.
뭐랄까
정이랄까.
따뜻함이랄까.
인터넷을 모르시는 어르신들의 감사 표시로는 최고 표현이랄까.
현실적으로 배고플 때 나의 굶주림을 채워준달까.
가끔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정신적으로 배고플 때 긍정의 간식이 되어준달까.
이렇게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노인은 고집스러움’은 ‘캐리어 안의 구황작물’로 바뀌었다.
아! 승진 평가 점수에 내가 받은 구황작물도 들어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