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3. 나에겐 뜨거운, 당신에겐 따뜻한 승무원실
KTX는 당신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대부분은 객실 18량과 동력 2량을 포함한 20량의 긴 열차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2004년 첫 개통 이후, 지금까지 20년을 달리고 있는 이 기종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KTX-1, 케이원”이라 불린다.
이 기종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여전히 반응이 좋다.
프랑스에서 넘어온 이 기종은 안정성이 좋아 흔들림이 없어 순회하기 편하며,
잔 고장이 거의 없고 승무원실이 구역마다 잘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이 있다.
승무원에겐 가장 중요한 승무원실에 온도 조절 장치가 없다.
여름엔 밖보다 덥고, 겨울엔 밖보다 춥다.
상상해 보아라.
열차를 타고 가는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객실 안이 찜질방 같다던지, 얼음장 같다던지.
어느 쪽이 됐던 지옥이다.
그날도 초가을이었지만 승무원실은 뜨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사실 ‘이 뜨거운 승무원실 어쩌란 말이야!’ 라며 속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반팔 유니폼 차림의 나는 더위를 피하려 객실 통로에 앉아 있거나, 순회를 하며 시원함을 찾고 있었다.
한 승객분이 담요를 요청하셨다. 하지만 열차에는 담요가 실리지 않는다.
이유를 여쭤봤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 몸이 많이 춥다고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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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니 야윈 할머니가 덜덜 떨고 계셨다.
대체할 수 있는 뜨거운 물이라도 있으려면 좋으련만, 담요도 없는 열차에 있을 리가.
평소 겨울엔 핫팩을 캐리어에 넣고 다니는 나인데 더웠던 9월인지라 핫팩도 없다.
보부상이라 자부했는데.
늘 꼼꼼히 준비하던 나지만, 오늘은 그 준비가 아쉬웠다. 보부상 취소다.
“고객님 우선 객실 안에는 냉방이 돌아가고 있어서 너무 추우니, 통로는 좀 따뜻합니다. 그쪽으로 옮기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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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을 도와드린 후, 따님분과 나는 할머니의 체온을 올리기 위해 온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순간 내 캐리어에 편승 때 입는 카디건이 생각났다.
[편승 : ‘남의 차를 얻어 탄다’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근무가 아닌 지정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행로]
“얇지만 이거라도 걸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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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 오늘 편승도 아닌데 카디건이 있네.’ 보부상 안 한다는 거 취소하겠다.
카디건을 걸치시니 좀 낫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하지만 ‘오한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비상정차해 구급차를 불러야 할까?’
여러 생각이 스쳐가던 중, 그 뜨겁던 지옥의 승무원실이 생각났다.
“고객님 혹시.. 저희 열차에 제일 더운 곳이 있긴 한데, 그쪽으로 가보시겠어요?”
“어디이죠..? 우선 어머니가 아프셔서 좋을 것 같아요.”
“승무원실이에요.. 근데 매우 뜨거울 정도로 더운데 지금 할머니의 온도를 올리기엔 거기가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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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서 부축해 승무원실로 자리를 옮긴 할머니는 우리의 정성 덕분에 금방 떨림이 잦아지셨고, 혈액순환이 잘 되기 시작했는지 얼굴에 생기가 도셨다.
결국 비상정차 없이 안전하게 하차하신 고객님을 보내고 통로에서 순간 멍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불만을 가졌던 승무원실이 할머니에게는 따뜻한 안식처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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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의 근무환경을 위해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생각지 못하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장소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쓰임도 그러하다.
뜨겁던 승무원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쉼터가 되었듯, 나도 그렇게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에게 쉼터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