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

BY. 봄볕

by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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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가는 오후 두시,

싱거운 이야기를 비비다


나는 어느새

죽어가는 사랑의 파츠였다가

닳은 크레용 끝에 남은

굵고 검은 선이었다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주인없는 이름이었다


말랑했다가,

흐물거렸다가,

점점 투명하게 부풀어 오르는 몸은

너의 손 끝에서

사정없이 반죽되었다


파랑, 빨강, 분홍빛의 세계가

인사처럼 나를 삼키고


나는 기어가는 슬픔과

주먹에 찢긴 껍데기,

삼켜진 어제의 파츠들을

차례로 삼키며

끝내 뒤엉켰다


너는 말했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는 대답했다

세상은 슬라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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