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에세이
어릴 적, 나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딘가 텁텁한 그 냄새가 영 입에 맞지 않아서였다.
칼국수는 젓가락조차 들기 싫었고,
소고기 특유의 냄새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팥죽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종종 말했다.
"나이 들면 너도 입맛이 바뀔 거야."
그러고는 큰 이모와 마주 앉아 나를 놀리듯 팥죽을 나눠 먹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싫어하던 음식을 먹게 될 리는 없지.'
그런 나도 마흔이 넘어 팥죽을 찾아 먹는다.
새알이 동동 떠있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속도 따뜻해지고, 기운 없던 몸에 은근히 힘이 도는 것 같다.
한 때 그렇게 좋아하던 양식은
이제 굳이 찾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멀어져 갔다.
인생도 그렇다.
싫었던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고,
좋았던 사람이 멀어지기도 한다.
지금도 억지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과는
속이 편할 리 없고,
억지로 웃어야 하는 자리는 여전히 낯설다.
살아가다 보면,
이렇듯 모든 내 입맛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속으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한 숟갈을 삼켜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억지로 삼킨 음식이
어느 날은, 문득 괜찮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나, 둘 입맛이 넓어지듯
내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넓어지는 걸까.
어릴 적 멀리 했던 음식이
익숙한 한 끼가 되는 것처럼,
인생도 물처럼 흘러가며 변한다.
좋은 날엔 달콤한 맛으로,
속상한 날엔 씁쓸한 맛으로,
별일 없는 날엔 담담한 맛으로
그렇게 흐르듯,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입맛이 변하는 것처럼 인생도 내 뜻대로 골라 담을 수는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스며든 인연이 내 안의 새로운 맛이 되기도 한다.
억지로 삼켰던 음식이 어느 날은 그리워지듯,
결국, 모든 건
천천히 내게 길들여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