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2.jpg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사람은 아동기에 부모로부터 버려질까 두려워 부모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라고요. 부모가 나를 버리면 끝장이라는 공포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해요.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부모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편일 때, 아이가 소위 착한 행동을 했더니 부모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칭찬받을 행동을 하는 겁니다. 우는 것보다 웃음을 지었더니 갈등이 심화하지 않는 겁니다. 그럼 아이는 맥락 없이 미소를 짓거나 웃는 거죠. 제 기억에 저는 7세 때부터 차라리 부모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세 때부터 엄마에게 "제발 아빠랑 이혼해"라며 울고불고 사정을 하기 시작했고요. 보통의 경우라면 아이는 부모의 이혼을 두려워해야 하지만 저는 두렵기는커녕 부모가 헤어지지 않고, 나를 버리지 않아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아빠가 일삼는 폭력은 저의 원초적인 본능을 완전히 삭제시켰습니다.


폭력은 아빠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여러 사람으로부터 맞으며 살았어요. 아빠가 때렸죠,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엄마도 저를 때렸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에요. 다섯 살 차이가 나는, 그런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언니도 저를 때렸습니다. 언니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만 저를 때렸습니다. 그게 2년이에요. 마지막으로 B 언니. 제가 초등학교 학생이던 시절에 우리 집에서 살며 가사노동을 하던 언니였어요. 늘 폭력이 난무하는 집안이라 그랬는지 남이었던 B 언니도 저를 몹시 때렸습니다. 따귀를 때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고, 몸을 밀쳐 넘어뜨리고, 방구석에 놓여 있던 어른 키만 한 높이의 나무 옷걸이로 온몸을 때렸습니다. 왜들 그렇게 저를 잡아 때려댔는지 몰라요. 참으로 나쁜 어른들입니다.


때리는 아빠와 맞는 엄마를 보면서 저는 아빠에 대한 혐오와 엄마에 대한 동정심을 품으며 살아왔어요. 매일 아빠가 죽기를 기도했고, 엄마의 삶이 안타까워 엄마에게만큼은 "착한 딸"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죽지 않았고, 엄마는 아빠와 헤어지지 않았으며, 저는 나이 50세가 될 때까지 여전히 "착한 딸"의 형상으로 살아왔습니다. 50년을 그리 살다 보니 슬슬 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빠만 가해자인 것이 아니라 엄마도 가해자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제가 별 짓을 다 해도 엄마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놓지 않는 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의 탓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을 버리지 않아 스스로 고통 속에 사는 엄마와 그런 선택을 하여 자식인 나에게 학대를 일삼는 엄마를 버리지 않아 스스로 고통 속에 사는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당장 동정심만 가득한 "착한 딸" 노릇을 관두어야 제가 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늦었지만,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백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리 살아왔으면 충분했다 싶어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는 다르게 살아봐야겠지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보고는 합니다. '만약에 아빠가 그렇게 폭력을 휘둘렀어도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참으로 부질없는 상상입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하기는 해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아빠로부터 공감, 지지, 격려, 응원 같은 걸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아빠와 다정하거나 따뜻한 눈빛이나 말이나 신체적인 접촉을 나눈 적이 없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이런 걸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에이~설마. 한 번은 있겠지!"라고 묻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 기억 속엔 전혀 없답니다. 엄마의 경우에도 제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저를 위한 정서적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학대하는 남편과 사는 여성이 무슨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할 수 있었겠어요. 자라면서 엄마 역시 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저는 엄마로부터 공감, 지지, 격려, 응원을 받아 본 기억이 없습니다. 20대 중반 즈음부터 갑자기 엄마가 길을 걸으면서 제 손을 잡더라고요.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했는지 몰라요. 그 어색함과 불편감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합니다.


관심, 애정, 사랑 등 정서적 지원 없이 쌍욕과 물리적 폭력만이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저 같은 어른이 되는 겁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어제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평생의 시간을 우울과 불안의 늪에 빠져 고통받으며 사는 어른이 되는 겁니다. 저의 자매들과 남동생은 우울증, 공황장애, 망상증 등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주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제 케이스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아시다시피 가해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이런 종류의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미성숙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행하는 폭력들, 해악들 말입니다.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인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 수많은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고 지고 살아가는 많은 어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성숙한 부모들이 벌이는 해악은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둘의 시너지가 연약한 어린아이들을 잡아 삼키고, 그 어린아이의 원만한 성장을 방해하고 가로막습니다. 아이를 제대로 된 어른으로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으로, 환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기술의 상징 금성"(현 LG)이 이런 말을 자주 했었지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고요. 세탁기나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를 어느 회사 제품으로 살지 신중하게 잘 생각해 선택하라는 거예요. 가능하면 금성 제품이 좋겠다는 얘기고요. 세탁기 하나도 그러한데 자식은 어찌해야 합니까? 뭐, 결혼이야 둘이 죽고 못 살겠다면 과감하게 선택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둘이 알아서 잘들 살면 됩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는 다릅니다. 아이들은 10년이 아니라 평생을 좌우할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자격이 없는 미성숙한 인간들이 무턱대고 낳아 기를 일이 아닙니다. 반려동물을 들이는 문제만 해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고심한 후에 결정해야 합니다. 그 동물을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 케어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묻고 물을 후 선택해야 합니다. 사료만 챙겨주고, 가끔 한 번씩 쓰다듬어 주는 게 케어가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내가 준비된 사람인지 깊은 점검을 하고 또 한 후에야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들 문제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말해 무엇 합니까. 국가 자격증으로 “출산 및 육아 자격증” 과정이 개설 및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는 언제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출산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낳은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낳아 길러야 한다고 여기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최소한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홀로 비바람을 맞게 될 때, 그 비바람에 기꺼이 맞서거나 동행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유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그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어쩌면 마음도 몸도 병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어른이 되어 오늘도 이렇게 살아 있네요. 우리는 더 이상 어리고 여린 그때의 아이가, 그 사람들의 아이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찾든, 외부에서 찾든 나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스스로 애써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다르게 살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아빠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맺어야겠습니다. 아빠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 어린아이들을 학대해 오더니 사고로 뇌를 다친 후 오랜 세월 동안 자해를 일삼아 왔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원래도 못 하던 분노조절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고, 전에는 엄마를 향해 휘두르던 식칼을 자신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평생 이렇게 버전을 달리해 가며 가해하는 삶을 이어 가기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아빠는 현재 치매 환자가 되어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아빠는 늘 맑고 밝게 웃습니다. 아빠의 유일한 관심사는 “음식”입니다. 아빠는 하루 세 끼와 두 번의 간식이 정확한 시간에 제공되는 요양원의 시스템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치매 환자인 아빠에게 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빠에겐 가해의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 따져 물을 수도 없습니다. 아빠를 자주 원망하지만, 원망만 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건 아빠의 인생이었고, 이건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저와 아빠의 시간, 50년의 시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keyword
이전 19화인색하고, 좀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