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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20. 2024

제10화. 재회

제10화.


안개가 걷히자, 기름과 물이 사람의 모습이 되어 서 있었다. 다만 아무런 말이 없을 뿐이었다. 


'...'

그 둘은 한참을 쳐다보았다. 다만 눈가가 붉다 못해 새빨간 정도였다. 서로의 몸에서 물과 기름이 한 방울씩 떨어져 상대에게 갔다. 처음에는 한 방울, 두 방울이었던 것이 수가 많아져 실로 장관을 이루었다. 그것들이 모여서 꽃의 형상이 되고 구름의 형상도 되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섬광이 눈앞을 가리면서 멀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세 글자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 마.. 워..'


'별을 보는 사람.' 


‘제---임스--! 들리나?’


소장의 목소리였다.      


‘이젠’     


“제임스!”      


‘외롭지 않아’      


구석에 있는 육각형 신호기가 눈에 들어왔다. 여태껏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버튼이 눌렸는지 녹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내가 신호기를 다시 줍자마자 연도를 알리는 계기판이 나타났다.


137억 년 전-     


13억 년 전-     


1억 년 전-     


눈을 뜨니 지구로 왔다. 과거로의 여행이 끝이 난 것이다. 수정도, 별빛으로 물든 하늘도 모두 사라졌다.      

‘제임스! 내 말 들리나? 일어나 보게.’


소장이 날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통신 기계도, 고글도 모두 그대로였다.      

내가 꿈을 꾼 걸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난 다시 그 신호를 들어 보았다. 이제 알 수 있었다. 신호기는 여행 내내 녹음 중이었다. 바다의 파도 소리나 내가 열매를 먹는 소리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웃음과 울음소리는 내가 듣지 못한 것이었다. 그건 신호기에만 녹음된 수정의 소리였다. 중간의 울음소리는 그 어떤 노래보다 구슬펐다. 마치 그 백색왜성의 열매처럼. 하지만, 끝나는 부분은 그 어떤 것보다도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임스? 왜 우는 거지? 도대체 뭘 보고 온 건가?’      


난 동료들이나 학계에 내가 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믿기에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으니까. 가상현실에서 교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양계 크기의 지적 생명체며, 심지어 그와 대화했다는 건 더 믿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유리컵에 물을 따르고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는 빈 주파수에 맞추어져 잡음 소리가 들렸다. 우주 배경복사는 전 우주에 균일하게 퍼져 있어서, 그 잡음 속에 일부가 들어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그들과 나눴던 이야기도 들어 있을지 모르겠다. 


옆 방에서 아이가 과외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 뭐예요?'


'고립된 상태에서는 그 형태가 변해도 에너지의 총량은 사라지지 않고 일정하다는 법칙이야. 물이 얼거나 증발하면 없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 형태가 변해도 물은 물이니까. 그것들을 다 모으면 결국 원래 물과 동일한 양이란다. 사라지거나 더 늘어나는 법이 없지' 


어쩌면 기름은 항상 바다 생물 곁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모습은 바꿨지만, 그것이 시간과 압력을 받으며 결국 다시 기름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몸속에 열매의 숲을 만들어 둔 바다 생물의 노력이 헛된 건 아닌 셈이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지 않았던가? 


집 앞에는 큰 호수 하나가 있었다. 거기에 띄워진 은방울 램프가 원을 그리고 있었다. 헤어진 램프들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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