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단편

by 장순혁

1

그는 언제나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빌려서 설명하자면,
옛날,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부터 있었다고 한다.
사실, 할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라고 하셨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고,
밤 12시가 되면

집에 장작을 쌓아놓고서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기만 하면
그 앞 흔들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불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그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하셨다.

하얀 천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검은 눈구멍 두 개만 뚫어놓은 그에게서는
흔들의자가 앞뒤로 흔들리며 내는 소리인

끼익

끼익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2

그의 눈구멍 안으로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은 칠이 되어있을 뿐.
누구에게는 당연한 말이겠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말이겠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그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유령에게 눈이 있든, 없든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벽난로가 타고 있는,
바로 앞의 흔들의자.

그가 흔들의자에 앉아 다시

끼익

끼익

소리를 낼 때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옆 마룻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과자를 먹을 때는 그에게 과자를 건넸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는 그에게 장난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돌릴 뿐,

나와 함께 과자를 먹는다거나,
나와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준다거나,
나와 어울려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만 해도 나에게는 충분했다.

적어도 또래 친구들처럼 나를 피하거나,
내 얼굴의 화상 흉터를 보고 나를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돌을 던지며 나를 놀리지 않았으니까.

저녁이 될 때까지
나는 언제나 내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고,
괘종시계가 밤 12시를 알리는 종을 치면
나는 가지고 놀던 것들을 손에 쥐고
부리나케 흔들의자를 향해 달려갔다.

유령은 늘 그랬듯,
언제나 그 흔들의자에 앉아있었고
나는 그 옆이 원래 내 자리라는 듯 당연하게 앉아
혼자 재잘거리며 놀았었다.

유령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흔들의자만 조금씩 흔들며

끼익

끼익

소리만 낼 뿐이었지만
그 소리가 내게는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만 같아 좋았다.

그렇게 그는 나의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부모님은 유령에 관한 그 어느 말도 하지 않으셨다.
유령을 믿지 않으셨던 걸까.

내가 유령에 관해 이야기하려 해도
부모님은 못 들은 척, 대화 화제를 돌리셨다.

유령이 나오는 그 시간에 부모님께서는 항상 주무시고 계셨고
나는 유령과 단둘이 벽난로의 불 일렁임을 마주 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내 말은.


3

시간이 흘러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중학교에도, 고등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 화상 자국은
놀리거나, 피하거나, 따돌리기에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이 내 얼굴의 화상 자국들을 놀릴 때,
혹은 나를 피할 때, 나를 따돌리며 괴롭힐 때도
나는 언제나 흉한 나의 몰골을 탓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은 늘 그랬으니까.
그래왔었고 그랬었으니까.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
괴롭힘은 점점 더 심해져 갔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반항하지도,
아이들을 신고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 아이들이었어도 그랬을 수 있으니까.

그러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퇴를 했고
집에서 1년간 홈스쿨링을 받았다.

다행이었지.
그 정도 돈은 우리 집에 있었으니까.
집안의 큰 어르신인 할아버지께서도 반대하지 않으셨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아무런 말 없이
나의 결정을 이해해 주셨다.
어쩌면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이런 날이 올 줄 아시고
미리 대비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퇴를 하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강력한 조건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검정고시를 본 후 바로 취업을 하든가,
일자리를 찾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할아버지와 우리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마저 죽음으로 사라지실 때,
홀로 남겨질 나를 위하여,
내가 꿋꿋이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18살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남아버린 2년의 시간동안 나는 글을 썼다.

책을 읽을 때는
아무런 고통도,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책을 좋아했었는데,

이런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어서였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각종 공모전에도 합격했고,
소설 부문으로 신춘문예에서 등단도 했고,
이름 있는 출판사와 첫 책도 계약했다.

스무 살, 기자들이 지어준 나의 별명은
'새빨간 얼룩무늬 천재 작가'였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의 있는 그 자체로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여 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4

내 명성이 커져갈수록 내 자신감도 따라 커져갔다.
나는 더 이상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내 얼굴과 이름과 직업을 밝혔고,
사람들은 내게 친근하게 다가 와 대단하다며 칭찬을 했다.

장소를 대관해 내 글을 전시도 했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얼굴을 내보이며 인터뷰도 했다.
해외에서 작가에게 주는 유명한 상도 받았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업실을 구했고,
집에는 매일 밤늦게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아무리 늦게 집에 들어가더라도
유령은 늘 그 흔들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유령의 옆에 앉아
늘 그랬듯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고,
유령 또한 늘 그랬듯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유령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실로 향해
하루 종일 틀어박혀 글을 썼고

나의 하루는
글을 쓰거나,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시상식에서 상을 받거나,
출판사 직원들과 미팅을 하거나,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시상식을 마치거나,
미팅을 마치거나,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유령은 언제나 기다려주었다.
아니, 언제나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건가.
어쨌든 나에게 그 둘의 차이는 없었다.

나는 행복했다.


5

그 무렵 할아버지께서 노환으로 쓰러지셨다.
산소호흡기를 입에 단 채,
온몸에 링거들을 주렁주렁 다신 할아버지께서는
내겐 너무나 낯설게 보이셨다.

할아버지의 맥박을 알려주는
할아버지 옆의 모니터는 작은 진동만이
느릿느릿 반복되어 보였고,
그건 할아버지의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병실에 자주 찾아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친한 할아버지-손주 사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인제 와서 살갑게 대하기도 조금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다가온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영정사진 속 차갑게 굳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남들 모르게 홀로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굳이 할아버지께 친한 척 굴지 않아도 되겠다.
문안드리러 가지 않아도 되겠다.
집에 부담도 덜겠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3일간은 너무나 지루했으며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쓰던 글을 틈틈이 이어 썼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끝이 나고
나는 부리나케 작업실로 달려가 쓰던 글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퀄리티였다.

완성된 소설을 인쇄해 출판사에 직접 가져다주고,
출판사 직원들과 퇴근 후 진탕 술을 퍼마셨다.

취한 채 밤늦게 집에 돌아가니,
불 꺼진 벽난로 앞 유령이 흔들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선 뒤
비틀거리며 장작들을 모아 벽난로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내가 장작에 손을 뻗자
유령이 말을 했다.
나직하고 늙은 목소리였다.

"괜찮아. 이제 불 필요 없어."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도로 유령의 옆에 앉았다.

"..너 덕분이야.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성공하지도 못했을거야..
..글을 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고.
고맙다.. 진짜 고마워.."

횡설수설한 나의 말을
늘 그랬듯 유령은 말없이 들어주다가
나직하고 늙은, 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살아.
잘 살아야 해.
행복하게."

"그래.. 고마워.."

아침이 밝아오고,
다시 눈을 뜨니 유령은 사라지고 없었다.

깨어나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유령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한 것이다.

왜..?


6

그 후로 유령은 다시는 내게 나타나지 않았다.

장작을 쌓아놓고,
장작에 불을 붙이고,
흔들의자를 정성스레 세워놔도.

그렇게 몇 달이나 지났을까,
나는 유령이 앉아있던 흔들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봤다.

끼익

그 나직하던 목소리.
그 늙은 목소리.

끼익

그 다정하던 목소리.
그 사랑이 어린 목소리.

끼익

할아버지와 닮은, 목소리.

아..

흔들의자가 끼익거리는 소리에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꺽꺽대며 울었다.

한참을.
한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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