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문의 차이

단편

by 장순혁

그대는 나와 함께 소파에 앉아
내가 그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테레비 속 축구를 보며 웃을 때에도
그대는 테레비 너머의 벽을 보았지
난 홀로 웃다가 괜히 멋쩍어서
그대에게 재밌지 않냐고 물었고
그대는 그 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강의 대답으로 나의 질문을 넘겼지
나는 그러려니 했어
뭐, 누구에게는 테레비 속 축구보다
테레비 너머 벽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으니까
그게 우리의 일상이었지
하지만 그날은 유독 심했어
우리가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우리가 함께 커피를 마실 때도,
우리가 함께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그대는 그 벽만 바라보았잖아
그래도 나는 참으려 했어
우리의 대화가 단절되고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지 않고
그대는 나와 생각을 맞추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데도 참고, 또 참으려 했어
하지만 그대는 선을 넘어버렸지
나는 그대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소리쳤고
그대는 조용히 떨면서 울었지
그리고는 말했어
저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냐고
나는 그게 뭐가 중요한 거냐고 조용히 물었지
또, 알고 싶냐고 물었어
그대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지
나는 테레비를 옆으로 밀고
더듬더듬 벽에 달린 손잡이를 찾았어
실은 벽이 아닌 커다란 문이었지
근데 고작 손잡이의 유무에 따라
벽과 문으로 나뉘는 것이라면
굳이 벽과 문에 차이를 둬야 할까?
아무튼 나는 벽인지 문인지를 열었고
그대는 그 안에 채워진 그대들을 보고 소리를 질렀지
나는 그대 전의 그대에게 사용한 망치를 들고
그대의 머리칼을 잡고 그 안으로 들어갔지

문을 닫고 보니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있네
그 구멍에 눈을 갖다 대보니
피 흘리는 그대가 보여
그래서 그대가 그랬나 봐
다음 그대를 위해 이 구멍은 메꿔야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는 그대들이 되어버린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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