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2

단편

by 장순혁

- 병이 짙어지다 II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엄마의 병실에 갔더니
형이 보호자 의자에 앉아 어떤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옆자리에 털썩, 하고 앉으니,
형은 말없이 서류를 접어 품에 넣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고, 형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그 날도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내가 병실을 나갈 때, 형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놀랐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형을 돌아보니 형은 품속의 서류를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나보다 먼저 병실을 나갔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쳐봤다.

[등대지기 모집.
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
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
모집 인원 – 00명.
월 급여 700만원.
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무슨 뜻이지?
나보고 하라는 걸까?
엄마는 자기가 돌볼 테니?
기분이 나빴다.
언제까지 아빠 행세를 할 건지.
나는 서류를 찢어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버렸다.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병실 밖, 벽에 형이 기대고 서 있었다.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싶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발길을 돌렸다.
형은 구태여 나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던 걸까.
뭐,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형을 본 적이 없다.
형은 소리도 없이 존재를 감췄다.
엄마의 옆에는 그때부터 나만 있었다,
나만.
형도 없이. 나만.
엄마와 함께 있었지만 고독했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그러나 형이 그립지는 않았다.
형은 도망친 게 분명했다.
삶으로부터,
운명으로부터.
엄마로부터,
나로부터.
형의 인생 절반 이상을 좀먹던
지긋지긋한 것들로부터.
도망친 겁쟁이를 그리워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다시, 장례식

엄마가 죽었다.
엄마의 장례식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과 달랐다.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앉아 엄마의 사진을 바라봤다.
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형과 다르니까.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정말 형과 다르니까.
다르고 싶었던 건지, 달라지고 싶었던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희미하게는 같았다.
손님도, 통곡도 없이 엄마의 장례식은 끝이 났다.
나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 문 앞에는 세금고지서, 우편, 광고지 등등이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모조리 집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거실 바닥에 대충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흰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음을 알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내용물을 꺼냈다.
찢어진 것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너덜너덜하게 감은 종이였다.
펼쳐보았다.
그 언젠가, 형이 내게 준 서류였다.
내가 찢어버렸던, 등대지기를 구한다는 서류.
내용은 같았다.

[등대지기 모집.
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
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
모집 인원 – 00명.
월 급여 700만원.
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그러나 달랐던 것은 맨 밑 여백에 적힌 두 문장의 글.
형의 글씨체로 적힌,

+82 050 – 3967
등대로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달칵

여자 목소리 : “나흘 후, 십삼 시, 서해 오천항.”

달칵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다가,
불현듯 일어나 낡은 가방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었다.
그러다, 가방을 팽개치고 지갑만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
어차피 이제 내게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건, 어디로 가든,
마지막으로 형 얼굴을 보고, 얘기나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왜 도망간 건지, 아니, 도망이 맞긴 한 건지,
아니면, 뭐라도 말이나 해보든지, 라는 마음으로.


- 오천항

오천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하긴, 생선잡이 배들은 모두 새벽이 되자마자 나갈 테니까.
오후 한시인 지금은 생선을 잡으러 나갈 시간도
생선을 잡으러 나갔던 배가 돌아올 시간도 아닌 것은 분명했다.
부둣가에는 나가지 못한 배들,
쌓인 생선들을 손질 중인 아줌마들,
손수레에 얼음을 옮기며 이곳저곳 바쁘게 다니는 남자뿐이었다.
그 와중에 홀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오천항 끄트머리에 멀거니 선 나.
이곳저곳 고개를 돌려 둘러본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등대지기 면접을 보러 온 것 같은
사람들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나 : "언제 온다는 거야?"

그때 얼음을 옮기던 남자가 내 앞에서 넘어진다.
수레에서 얼음이 요란스럽게 쏟아진다.
남자는 중얼거린다.

남자 : “에이씨, 진짜..”

남자는 바닥의 얼음들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남자를 도와 얼음을 수레에 담아준다.
남자가 가늘게 웃으며 말한다.

남자 :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 : “별말씀을요.”

다시 한번 허리를 굽히고 얼음을 집으려 할 때
남자가 내게 조용히 묻는다.

남자 : “이름.”

나 : “..예?”

남자가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얼음을 모으며 다시 묻는다.

남자 : “이름.”

나는 그런 남자를 바라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쓰러진 얼음을 요란스레
다시 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내 대답한다.

나 : “..이연우요.”

남자는 내 이름을 듣고 잠시 동작을 멈춘다.
이내 주변을 살펴보던 남자.
수레에 도로 담은 얼음을 옆 바닷물에 쏟아버린다.
바닥의 얼음들도 발로 쓸어 넣는다.
나도 손에 쥐고 있던 얼음들을
남자를 따라 바다에 집어 던진다.
남자는 다시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고,

남자 : “따라와.”

남자는 조용히 말하고는, 뛰어가듯이 걷는다.
남자의 장화 모양을 따라
오천항 바닥에 발자국들이 새겨지고
그 발자국들을 나는 말없이 바라보며 남자를 따라 간다.


- 생선 창고 I

남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부둣가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한 생선 창고.
남자는 창고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간다.
나도 남자를 따라 들어간다.
창고 안에 들어서면,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한쪽 벽은 상자째 쌓여있는 생선.
그 반대 벽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들.
남자가 문을 다시 닫는다.

남자 : “이쪽으로.”

남자는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나는 책상 앞 의자에, 남자를 마주 보고 앉는다.
남자는 책상 위의 공책을 들어
한참을 이리저리 넘겨본다.
그러다 마침내 찾은 듯,
책상에 공책을 펼쳐 내려놓는다.
내가 볼 수 있게 공책을 돌려준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남자.
담배와 라이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동시에 말한다.

남자 : “이연우.. 이현우 동생, 맞지?”

나는 공책을 보며 대강 답한다.

나 : “예.”

공책에 적혀있는 건 내 신상정보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학력,
그리고 가족관계서.
아버지, 사망.
어머니, 사망.
...
이상하다.
가족관계서에 나는 외동으로 적혀있다.
형이 적혀있지 않다.

나 : “이거..”

내 말을 끊고 남자는 묻는다.

남자 :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나 : “..여기로 오라던데요?”

남자 : “누가?”

나 : “전화 걸어보니까요.”

나는 품속에서 너덜너덜한 서류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준다.
남자는 서류를 읽는다.
난 책상 위의 담배를 집고
남자를 따라 담배를 피운다.
남자는 그런 나를 흘깃, 바라봤다가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린다.
곧이어 서류를 내려놓고는

남자 : “이상하네.”

나 : “이상하긴 하지.
그나저나 너는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

뼛속까지 스며든 내 반골 기질.

남자 : “꼬우면 너도 반말하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나 : “그렇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왜 내가 외동으로 적혀 있느냐야,
이 가족관계서에.”

남자는 나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남자 : “형한테 아무 얘기도 못 들었냐?”

나 : “그렇게 친하진 않았거든.”

남자 : “...”

남자는 다 피운 담배를 대충 바닥에다 던지며

남자 : “원래 여기 들어오면 다 그래.
기록이 말소되지.
다 동의하니까 강제는 아니고..
일일이 다 말하면 길어지니까, 아무튼.”

남자는 서류를 책상 위에 놓는다.

남자 : “이 계획은 끝난 지 오래야.
누가 전화한 거야?”

나도 남자를 따라 담배를 바닥에 버린다.

나 : “무슨 계획?”

남자 : “그 등대지기 말이야.
..너 신문이나 뉴스도 안 보냐?”

나 : “시간이 없어서.”

남자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인상을 찡그리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건넨다.
스마트폰은 동영상이 틀어져 있다.
뉴스의 장면 중 하나다.
여자 아나운서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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