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3

단편

by 장순혁

- 생선 창고 II

아나운서 : [..등대지기를 구한다는 광고에 대해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높은 급여와 까다롭지 않은 대상 조건으로 인해
화제가 되었던 그 광고가
사실은 참여자들을 중국으로 가져다 파는
인신매매 수단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의 동해를 지키는 해경이
지난 12일, 서해상 등록되지 않은 수상한 배를 수색한 결과,
한국에서 중국으로 사람들을 팔아넘기는
브로커 이 모씨를 비롯한 다섯 명의 한국인들과
세 명의 중국인 선원들을 체포했습니다.
검경은 합동 조사를 시작했으며,
팔려간 사람들의 신원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
피의자들로부터 참여자들의 신원을 말소시키는
전문 업자가 있다는 점 등을 알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수십 명이 넘는 피해자의 가족들은
미적지근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남자는 자기 스마트폰을 도로 가져간다.
나는 남자에게 묻는다.

나 : “..그러면 형,
아니, 이현우도 팔려간 거야?”

남자 : “아니, 아마도.”

나 : “그러면 뭔데.
앞뒤가 안 맞잖아.”

남자 : “에이, 씨발..”

나 : “뭐냐고.”

남자 : “내가 알고 있는 건 딱 이 정도야.
참여자들을 만나고,
인원을 체크 한 다음에,
그 새끼들을 교육장이 있는 섬으로,
김 선장 배에 태워 보낸다.
이게 내 역할이야.
그 이상은 몰라.
뉴스에 뜨고, 이 사업은 빠그라졌어.
나한테도 연락 한 번 안 온다고.”

나 : “그러면 내 신상정보는 여기 왜 있는 거야.
이현우가 안 팔려갔다는 건 또 어떻게 아는 거고.
나한테 전화는 그럼 누가 한 거야, 대체.”

남자는 다시 담배를 꺼내 피운다.

남자 : “이현우는 그 계획 핵심 간부였어.
참여자가 어떻게 간부까지 된 건지는 나도 몰라.
아무튼,
팔아버릴 연놈들 정하는 것도
간부들 회의에 따라 정하는 거니까,
팔려가진 않았겠지.
이 공책에는 참여자들 가족 정보까지 다 들어있어.
원래는 폐기 처분해야 되는 게 맞는데,
나한테까지는 조사가 안 들어와서 가지고 있었지.
그리고 전화..
너 그 전화번호 알고 있냐?”

나 : “그 서류 맨 밑에 있어.”

남자는 서류를 읽는다.

남자 : “공칠공..
이육..삼..”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 생선 창고 III

남자 : “이거..”

나 : “이거 뭐?”

남자 : “이거..
섬 전화야.”

나 : “..뭔 소리야?”

남자 : “섬에서 너한테
직접 연락을 한 거라고.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는 책상을 손가락 끝으로 두드린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정적이 자리할 무렵,
남자에게 말한다.

나 : “일단 다 집어치우고,
그러면 너가 아는,
너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은,
참가자들 태운 배의 김 선장 정도라는 거지.”

남자 : “..어.”

나 : “그 등대가 있다는 섬에서,
팔까 말까를 정해서 중국 배로 실어서 보내는 거고.”

남자 : “아마도.”

나 : “..그러면 간단하네.
그 김 선장이랑 날 연결해줘.”

남자 : “뭐 하려고.”

나 : “뭘 하긴 뭘 해.”

나는 팔짱을 끼며 남자에게 말한다.

나 :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가봐야지.
그리고 끝까지 가지 않으면,
네 선에서 내가 정리될 것 같거든.”

남자는 책상 밑에서 쥐고 있던
사시미 칼을 들어 책상 위에 올려둔다.

남자 : “알고 있었냐?”

나 : “모르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렇게 한쪽 손만 계속 책상 밑에 두고 있으면.”

남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남자 : “..형이랑 비슷하네.”

나 : “내가?”

남자 : “어. 니네 형도 나한테 그 말 똑같이 했거든.
더 젠틀하게 말하긴 했지만.”

나 : “젠틀은 니미..
그냥 가식적인 거지.”

남자 : “뭐,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고.
어쨌든 섬에서 너한테 직접 연락을 했다는 건..”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남자 : “따라와.”

나 : “어디로 가는데.”

남자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남자 : “김 선장이랑 연결해 달라매.”

남자는 일어나 반대쪽 문을 열고 나간다.
나도 남자를 따라나선다.

나 : "..근데 사업 빠그라졌다면서,
그러면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야?"

남자 : "그 부둣가에서
그러고 멍청히 서 있는 연놈들은
다 똑같아서.혹시나 한 거지."

나 : "내가 경찰이었으면 어쩌려고?"

남자 : "경찰들은 철수한 지 오래야.
이 일 새나간 게 꽤 됐거든.
그리고.."

남자가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남자 : "이미 익숙한 얼굴이었으니까.
배로 보낸 새끼들 가족 사진은 난 다 외워."

나 : "왜?"

남자 : "예전에 배 태워 보낸 새끼
엄마가 찾아와가지고.
지 딸 내놓으라면서 오천항 한가운데서
지랄 염병을 한 적이 있어서.
그 지랄 떨기 전에 미리 창고까지 데려오면
조용히 시킬 수 있으니까."

나 : "조용히라.."

남자 : "시끄러운 건 질색이거든."


- 김 선장

남자 : “김 선장, 나야.
문 열어.”

밤,
남자는 부둣가에 메인 작은 생선잡이 배에 들어가
조타실 문을 두드린다.
나는 남자의 뒤에 선다.
조타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남자 : “또 술이나 대판 퍼마셨나.
이봐! 김 선장!
김 선장!”

정적

남자 : “야이 씨발 삐꾸 새끼야!
문 열어!”

문이 벌컥 열리며

김 선장 : “누가.. 딸꾹,
누가 삐, 삐꾸새끼래!
뒤질래? 이 잡놈의 새..”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나온
한쪽 눈에 안대를 쓰고 있는 남자.
문밖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김 선장 : “어.. 어!
자네 잘 지냈나?
오랜만이구먼. 웬일이야?”

남자 : “김 선장,
오랜만에 일해야지.”

김 선장 : “일? 뭔 일?
나 이제 생선잡이는 안 하는데?”

남자 : “그거 말고,
전의 일 말이야.”

김 선장은 딸꾹대며 남자 뒤의 나를 바라본다.
그러곤 다시 남자에게 눈을 돌리며

김 선장 : “..끝난 거 아니었어?”

남자 : “원래 그게 맞긴 한데..
아무튼 이 친구 좀 그 섬으로 데려다줘,”

김 선장 : “싫어!
딸꾹, 나도 할 만큼 했어.
조사도 받고,
감옥에도 있다가 나왔다고! 딸꾹.
에휴 시팔,
돈이 웬수지.. 그, 딸꾹,
그 돈 때문에 염병할 일 다 겪었어. 딸꾹.
이제 몰라!”

남자는 김 선장의 어깨를 두드린다.

남자 : “나도 알아, 아는데..
이 친구, 이현우 동생이야.
섬에서 건 전화도 받았대.”

김 선장 : “뭐?”

김 선장은 남자를 밀치고
내 얼굴에 두 손을 올려 자기 얼굴에 가까이 댄다.

김 선장 : “이현우 동생?
어.. 딸꾹, 닮았네.
어, 닮았어.
근데 섬에서 직접 전화를 했다고?
딸꾹, 얘한테?”

남자 : “어.”

“그러면 데려다줘야지.
섬. 딸꾹, 오케이.”

김 선장은 다시 조타실로 들어가
시동을 켜려고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한다.
곧이어 배에 시동이 걸리며 조명이 밝게 켜진다.
남자는 배 밖, 부둣가를 향해 뛰어가며

남자 : “에이 씨발,
나는 나가고 시동 걸든 말든 해야지.
하여튼 무대포라니까.”

남자는 부둣가에 서서 배 위의 나에게 말한다.

남자 : “뭐.. 자세한 건 김 선장한테 물어보고,
아무튼, 잘 가!”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뱃머리 쪽으로 가 대충 걸터앉는다.
배가 털털거리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 바다 위에서

김 선장 : “딸꾹, 안으로 들어와.
밖에 춥잖아.”

나 : “...”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는 내게
김 선장이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나는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김 선장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이것저것 내게 묻는다.

김 선장 : “추우면 담요, 딸꾹, 담요 줄까?
아니면 뭐, 커피라도 마실래?
그것도 아니면, 딸꾹, 차라도?”

나 : “...”

김 선장 : “아 필요 없구나,
그러면, 딸꾹, 쉬어.”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
나는 김 선장에게 묻는다.

나 : “왜 이렇게 잘해주려고 하지?”

김 선장 : “왜긴.. 딸꾹,
너 이현우 동생이라매.
그래서 그렇지, 뭐..”

나 : “..이현우가 뭐라도 해줬어?”

김 선장은 배를 자동운전으로 걸어놓고는
내 앞에 마주 앉는다.
자기 안대를 벗는다.
안대 속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눈조차도.
다시 안대를 쓰는 김 선장.
히히거리며 웃더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김 선장 : “이현우를 태웠을 때,
그때, 딸꾹, 네 명이 더 있었거든?
지금은 이유도 생각 안 나는데,
아무튼 그 네 명이랑 시비가 붙은 거야, 나랑.
내가 옛날 같았으면 다 줘패버리는 건데, 히히,
너무 늙었나 봐, 딸꾹.
그 새끼들 중 하나한테 맞아서 눈이 터져버렸어.
그렇게 쓰러진 채 한참을 처맞고 있었는데,
니네 형이 빠루를 잡더니,
네 명을 진짜 개 패듯이 패버리더라고.
딸꾹, 나야 뭐,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는데,
니 형이 그 네 명을 다 죽여버리고
바다로 던져버렸어. 히히.
그리고 나를 보살펴줬지. 딸꾹,
니네 형 싸움 졸라 잘하더라,
딸꾹.”

나 : “..형, 아니, 이현우가 싸움을 잘했다고?
..사람들도 죽이고?”

그럴 리가 없는데.
형이 누구랑 싸웠다는 건,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데.
그리고, 형이 사람을 죽였다고?

김 선장 : “어, 그렇다니까.
응급조치도 해줘서 과다출혈로 죽진 않았지.
이 안대는 말이야,
너네 형을 기억한다는 의미야.
딸꾹, 날 살려줬으니까.
나한테는 하나님,
부처님이랑 마찬가지지.
나중에 혹시 니 형 만나면
내가 진짜 고마워한다고 전해주라, 딸꾹.”

나 : “...”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다.
어째 형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내가 아는 형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만 같다.
낯설다.

김 선장 : “아, 맞다. 그리고 이거.”

김 선장은 서랍을 열어 뒤적거리더니,
피 묻은 빠루를 내게 건네준다.

김 선장 : “니 형이 나 지켜준 거야, 이걸로.
이거 너 가져.”

나 : “..내가 왜.”

김 선장 : “왜긴, 너가 이현우 동생이니까 그렇지.
내가 주는 행운의 표식이니까.
가져, 너가.”

나는 조심스럽게 빠루를 받는다.
오른손으로 쥐어본다.
김 선장은 일어나,
다시 자기가 배를 운전하기 시작하고,
나는 벽에 등을 기대어,
빠루를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흔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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