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1

단편

by 장순혁

- 등대 (prologue)

[등대지기 모집.
장소 - 서해 중 하나의 섬.
대상 – 스무 살 이상의 누구나.
모집 인원 – 00명.
월 급여 700만원.
하는 일
- 등대 보수 및 유지.
- 6개월 간격으로 교대 근무.
- 처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섬으로 출발하기 전 3개월 치 지급.
- 다음 차례와 교대할 때 나머지 3개월 치 지급.
- 생필품 및 각종 생존 물자 제공.
- 인터넷 x, 전화 x, 편지 x.
- 외부와 연락할 방법은 없음.
- 신청, 면접, 등대를 다루는 일주일간의 교육.
(교육비 별도 제공)]


- 아버지의 죽음

단순히 말하자면 안타까운 사고였다.
내 아버지의 죽음은.
여덟 살과 아홉 살 사이, 그 언저리에서
내가 잰걸음을 놀릴 무렵에 일어난, 사고.
초등학교 교실에서
방과 후에 남아 받아쓰기를 연습하던 나에게
담임 선생님께서 다가와
근처 가까웠던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내 손을 잡아 이끌고 향하신.
그 병원에서 아버지는 누워계셨다.
아니, 쓰러져계셨다.
아니, 아니다.
당시의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알지 못했으니
누워계신 동시에 쓰러져계셨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언제나 따스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와 눈을 마주치시고는
내게 오늘 학교는 어땠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느냐고,
내게 물으시던
나의 아버지.
빨간 피로 범벅이 되어 웃음을 짓지도 않으시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던 아버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삐빅거리는 기계음만 들려주신 아버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같이 보곤 했던 뉴스에,
아버지가 아침마다 펼쳐보시던 신문에 나오곤 했던,
그래,
뉴스나 신문에서 매일 같이 나왔던
음주 운전자가 차로 치어버린 불쌍한 피해자.
그런 피해자가 되어버리신 아버지.
아버지는 그 수없이 많은 기삿거리 중 하나였다.
아마 그 밤,
다른 이들의 저녁 식사 시간의
자그마한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리신
나의 아버지.
남겨진 가족들은 그 피해자의 가족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결국 언제인가에는 죽는 법이고,
그게 우리 가족에게 닥쳐왔을 뿐이니까.
다만 그리 무심하고도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나는 너무 어렸었고,
엄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셨었고,
형은.. 형은 모르겠다.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형이었으니까.
형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주변인들로서는 조금 어렵고,
주변인들에게는 서툰,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아버지처럼.
정확히 하자면 착한 사람의 분류에 들어갈,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아무튼 내 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히 말하자면 그랬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 장례식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나와 엄마는 울었다.
말 그대로 쓰러질 듯이 울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계셨고,
나와 엄마는 그 모습이 슬퍼 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은 울지 않았다.
팔에 노란 완장을 차고서는,
상주로서 장례식장을 지켰다.
사람들이 오면 목례를 하고,
맞절을 하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쓰러질 듯이 우시던 엄마는
아버지의 검은 리본 달린 사진을 보고
결국 혼절하듯 쓰러지셨고,
나는 엄마의 곁에 누워 장례식이 한창이던
그 옆방에서 죽은 듯이 울었다.
그러던 중 새벽.
목이 말라 밖으로 나선 나의 눈에
힘이 빠진 형의 모습이 보였다.
형은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울었다.
거센 세상의 폭풍에서 동생과 어머니를 지키게 해달라고.
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이어받아,
그들을 지켜줄 수 있게 해 달라고.
나는 형의 곁으로 갔다.
형의 옆에서,
형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의 사진을 보았다.
형은 눈물을 닦고는 담담히 내게 말했다.

형 : “이제 아버지는 없으니까,
우리가 엄마에게 힘이 되어드려야 해.
할 수 있지?
형이 엄마랑 연우를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갈라지는 소리로 다시 한번 울었고,
형은 그런 나를 안아주었다.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열다섯의 형이 그 나이의 소년처럼 보였던 날이.
그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형이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때 내가 울지 않고 씩씩하게
형에게 나도 엄마를, 형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더라면,
형은 지금처럼 현실이라는 충격에 대비해
홀로 갑옷을 입는 대신에,
나와 함께 방패를 드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렸던 나는 울기를 선택했고,
결국 형은 우는 나를 보며 함께 울기보다
나를 엄마와 함께 자신의 뒤에 두고,
홀로 세상에 맞서는 걸 선택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
그렇게 형의 선택을
강요해버리고 만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 슬픔의 병

그로부터 십여 년 정도 지났을까,
엄마가 병에 걸렸다.
간암이었나, 폐암이었나.
의사의 말로는 잦은 술과 담배로 인해
촉발된 병이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술도, 담배도 아닌
슬픔으로 인해 병이 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어머니는 매년, 매달, 매주,
아니, 매일 울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까.
형이 내 나이였을 때부터
형은 가장이 되어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장학금을 받고, 밤이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마가 놓은 집안의 대소사를 형이 잡았다.
누구보다 늦게 잠에 들고,
누구보다 빨리 잠에서 깨어났다.
형은 원래 국어 선생님이 되려 했었지만
엄마가 암에 걸린 뒤로, 형은 기초의학과로 전과했다.
애초에 똑똑했던 형이니, 전과 정도는 상관없었다.
졸업 후 교수의 밑에서 조교까지 했다.
그 교수의 지인은 엄마의 담당의였다.
삶이 형을 그렇게 바꾼 것인지,
형이 삶을 그렇게 바꾼 것인지,
나는 몰랐다.
알았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 같지만.
그러나 난, 나는,
그 무렵 형의 나이에서 방황을 선택했다.
형과는 달리.
담배를 피웠고, 술을 마셨고, 싸웠다.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시비가 걸린 사람들과, 그리고, 가족들과.
학교에선 연례행사처럼 정학을 당했고,
그럴 때마다 형은 하던 공부나 일을 멈추고서는,
내 학교로 달려와 교무실에서 허리와 고개를 숙였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끔 가정에서 조취를 취하겠다고,
이번 한 번만 넘어가 달라고,
죄송하다고.
교육자라는 연놈들은
그런 형에게 가정환경이 어떻든
동생 좀 잘 돌보라는둥,
이번이 마지막이라는둥,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거만하게 말을 지껄여댔고,
그 말에 화가 난 내가 껄렁하게 입을 열 때면,
형은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말로 나의 입을 닫게 했다.
그런 날이면 형과 나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리고 아마도, 형도.


- 병이 짙어지다 I

엄마의 병은 점점 심해져만 갔고,
결국 알코올 소독용 솜 냄새가 나는 병원,
입원용 병실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교 진학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매일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산소호흡기만 입과 코에 매단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엄마를 내려다보면,
죽은 건지, 산 건지 나로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구분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둘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형은 엄마가 쓰러진 뒤로,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매일같이 병원에서 살았다.
나는 남는 시간에,
아니지, 남는 게 시간뿐이었으니,
모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짬을 내어 엄마를 보러 갈 때,
그때만이 유일하게 형과 만날 수 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렇다 할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냥, 그냥 있었다. 둘이서.
아니지, 엄마까지 셋이서.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묻지 않았고,
서로의 근황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바쁜 건 피차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엄마의 병원비는 서서히
형의 월급으로는 채울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비대해져만 갔다.
나는 아르바이트 일당을 받으면
아르바이트 일당의 거의 전부를 엄마의 침대에 두고 나왔다.
다음 날,
엄마를 보러 가면 형은 내게 말없이 흰 봉투를 건넸다.
봉투 안에는 내가 전날 두고 간 돈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때는 그냥 단순하게 화가 났었던 것 같다.
형이 혼자 가장 행세를 하며
괜한 곤조나 자존심만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에게 봉투를 받으면
그냥 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전부 다 술과 담배, 여자를 사는 데에만 썼다.
술을 마시면 아픔이 무뎌졌고
담배를 피우면 아픔에 익숙해졌으며
여자를 안으면 아픔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혼자 잠을 잘 때만 집에 들어왔고,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덮인 집은 지저분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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