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석상

단편

by 장순혁

빠직.

낡은 삽이 부러지고,
청년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부러진 삽을 내려다보다,
마저 포대에 모래를 채우려 손을 모아 쌓다가,
포대에 모래를 집어넣던 청년이
두 동강 난 삽을 양손에 쥐고는
작게 중얼거린다.

"진짜 씨X.."

모래바닥에 대충 아무렇게나 주저앉는 먼지 덮인 청년.
마찬가지로 낡은 옷의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낸다.
그러나 텅 비어있는 담뱃갑.

"허."

담뱃갑을 아무렇게나 구겨버린 후 뒤로 휙, 하고 던져버린다.
청년은 흐르는 땀을 닦지도 않은 채
멀거니 하늘을 바라본다.
저 언덕 위에 작은 점이 보인다.
점점 커진다.
점이 청년에게 가까워진다.
작은 점은 늙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어깨에 짊어진 빈 포대들을
청년의 앞에 내려놓는다.
청년 옆의 부러진 삽을 보는 노인.
삽이 부러지기 전에 청년이 채워 놓은
모래 포대를 어깨에 짊어진다.
노인의 온몸도 땀으로 젖어있다.
이제 뒤돌아 가려다가 잠시 멈추고 청년에게 말한다.

"..오는 길에 삽 가져올게.
좀 쉬고 있어."

떠나려는 노인을 청년이 불러세운다.

"담배 있어?"

노인이 잠시 걸음을 멈춘다.
모래 포대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새 담뱃갑을 꺼낸다.
청년에게 건네준다.
청년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피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
다시 모래 포대를 들어 올린다.
멍하니 담배를 태우던 청년이 노인에게 묻는다.

"아빠."

"..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돼?"

"..."

"이 모래들 다 퍼내서 옮기면,
다음은 저 언덕이야?
저 언덕도 여기서 파낸 모래들로 만든 거 아니야?
씨X. 영원히 이 지랄을 해야 된다고?
우리가 왜?
왜 이래야 되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죄를 지어서."

"누가?"

"옛날에, 누군가가.."

"그 새끼는 지금 어디 있는데?"

노인은 하늘을 바라본다.

"..모르겠다, 아빠도.
잘 모르겠다."

"씨X...
개X발!"

미친 듯이 욕을 해대는 청년을 두고
노인은 짊어진 모래 포대를
들기 쉽게 약간 들어 올린 후 걸음을 옮긴다.
점점 작아지다 다시 작은 점이 되는 노인.
청년은 그 모습을 보다 새 담배를 꺼내 태우기 시작한다.
해는 지고, 하늘은 점점 까매지기 시작한다,
담뱃불은 점점 더 밝아지고.
청년의 담뱃불만이 빛을 잃지 않는다.

[...]

"반갑다?"

"..언제 봤다고?"

"언제 봤든 뭔 상관이야."

석상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석상의 원숭이를 꼭 닮은 형상이 튀어나와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청년은 놀랐지만 아닌 척 여유를 부렸고.
길거리 노점상 할아버지가 제발 물건 좀 팔아달라길래
기부하는 셈 치고 지폐 몇 장 꺼내 주었더니
억지로 청년의 품에 석상을 안기는 것이 아닌가.
차마 그 할아버지의 눈앞에서 버려 버릴 수도 없고,
집에 가지고 와 먼지나마 털었더니 벌어진 이 상황.

"뭐,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 이런 거야?"

"똑똑하네. 비슷해, 그거랑."

"그럼 너도 소원 들어주냐?"

"음.. 그것도 비슷하지."

"옘X. 뭐 다 비슷하대.
창의성 없는 새X."

"비슷한 걸 비슷한 거라 하지 뭐라 해?
소원 들어준대도 지X하는 놈은 처음이네."

겉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청년의 속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론 티 내지 않으며 굳은 목소리로 묻기를,

"너는 소원 몇 개 들어주는데.
드래곤볼 신룡처럼 한 개? 알라딘 지니처럼 세 개?"

"나?
나는 원하는 만큼 들어줘."

"..응?"

"원하는 만큼 다 들어줘야 그게 소원이지. 안 그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로또에 당첨돼도 세금을 안 뗀대잖아.
뭐라더라? 누군가의 꿈에 값을 매길 수 없다, 라고 그랬었나?
그거랑 비슷한 거지, 뭐."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아,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뿌듯해하는 얼굴이 좋다니까.
빨리 말해봐. 무슨 소원을 원하니?"

"내 첫 번째 소원은."

"첫 번째 소원은?"

"날 부자로 만들어줘."

"어느 정도로?"

"어?"

"부자는 상대적인 거잖아.
너가 만원을 벌면 너는 만원도 없는 사람이 볼 때 부자야.
너가 백만 원을 벌면 너는 백만 원도 없는 사람이 볼 때 부자고.
어느 정도의 부자가 되길 바라는데?"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 부자로 느끼기를 원해."

"오케이!"

"..."

쉬이익.

퍼펑!

집 밖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의 신음과 절규도 섞여 들려온다.
당황하는 청년.
급히 창밖을 살펴본다.
창밖에서는 폐허가 된 건물과 온몸이 폭탄에 터져 죽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원숭이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따른 놈들보다 부자가 되길 원한다매.
핵전쟁을 터뜨렸어.
다른 부자들은 모두 벙커에 숨었지만..
곧있으면 그 새끼들도 모두 뒤질 거야.
자, 이제 넌 부자다.
다른 놈들은 널 보고 부러워할 거야.
돈뿐만 아니라 너가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까지도.
어때?"

"이런 미친 새끼..
이런것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고!"

원숭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면 제대로 소원을 빌었어야지..
난 뭐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이런 씨..
다음 소원! 다음 소원을 빌게!"

"그래. 이번엔 어떤 소원이야?"

"방금 내가 빈 소원을 취소해줘!"

"소원 취소라.."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매!"

"알았어. 자, 소원 취~소!"

밖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덮은 커튼을 펼치는 청년.
창밖은 평화롭다.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때 테레비가 켜지고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나온다.

"..갑작스러운 핵 공격과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종전 협상을 맺었으며
남겨진 전쟁의 흉터들을 복구하기 위해 각자의 노력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리포터 연결해 보겠습니다. 리포터?"

"예, 현장에 나와 있는 리포터입니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핵미사일과 군인들은 모두 철수했으나, 아직 그 흔적들은 이곳저곳에 방치된 채 남아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전쟁으로 인해 인류 문명이 500년은 퇴화했을 거라 예견했는데요, 복구 사업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이곳은 아직.."

테레비를 보던 청년.
원숭이에게 말을 한다.

"뭐야, 취소했잖아!"

원숭이는 이죽거린다.

"취소는 했지.
너가 소원을 빈 건 없었던 일이 됐어.
근데 이미 벌어진 일을 취소하진 않았잖아.
네 소원으로 너가 소원을 빈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벌어진 일은 네 손에서 떨어진 일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청년은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는다.
원숭이는 기지개를 켜며

"그러니 잘 알아보고 빌었어야지.
이건 다 너 잘못이다?"

청년은 붉게 물든 눈으로 원숭이를 노려본다.

"..아직 소원 남았지."

"그럼~ 차고도 넘치지."

"..모든 게 없었던 일로 만들어줘."

"모든 게?"

"..어."

"오케이!"

원숭이가 손바닥을 마주친다.

짝-!

모든 게 사라지고 어둠 속에 청년과 원숭이만 남아있다.
당황하는 청년.

"뭐, 뭐야?!"

"모든 게 없었던 일로 만들어 달라매?
모든 것이 없어졌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아니, 그러면.."

"그러면, 뭐? 또 소원 빌게?"

청년은 입을 앙다문다.
어떠한 말도 감히 내뱉을 수 없다.
어떤 결과가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 그래. 천천히 생각해 봐.
전처럼 생각 없이 말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청년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청년의 정신도 멍해진다.
우주의 고독이 청년을 감싼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청년은 입을 연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를 데려와줘.."

"니 아빠?"

"응.."

청년의 고개가 꺾인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

펑-!

연기와 함께 노인이 나타난다.

[...]

"와 오랜만에 엄청 재밌었다.
이런 개빡대가리가 소원을 빈게 얼마만인지.. 음..
에이 기분이다! 너가 이 새끼 아빠라고 했지?
내친김에 너도 소원 하나 들어줄게!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다?
너한테만 들어주는 거야?
자, 말해봐. 얼른!
나 마음 바뀌기 전에!"

청년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던 노인.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들을 복구해낼테니
제 아들이 당신과 소원,
이 모든 것들을 잊었으면 합니다.."

"음? 그러면 얘가 책임을 지지 못하는데?
지 잘못도 모르고 평생 남을 원망할 거야.
어쩌면 너를 원망할지도 모르지."

"괜찮습니다..
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죄입니다.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이렇게 빕니다.."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던 석상의 형상.
사악하게 웃고는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근데 하나 약속을 해줘야겠어.
만약 니 아들놈이 다시 같은 소원을 빌면,
그때는 이 소원이 무효가 된다. 어때?"

"..상관없습니다."

"오케이, 약속한거다?"

"..네."

펑!

소리와 함께 도로 석상으로 들어가 버리는 연기.
석상은 이리저리 흔들대더니 저 언덕 너머로 날아가 버린다.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노인.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게.."

하늘엔 새빨갛던 해가 지고 있다.

[...]

청년이 파내던 모래 속에서 원숭이 형상의 석상이 보인다.
청년은 석상을 꺼내본다.
땀이 묻은 웃옷으로 석상을 닦는다.
연기와 함께 석상을 닮은 원숭이 형상이 튀어나온다.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자, 나는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어떤 소원을 빌래?"

"..소원?"

"응!"

저 멀리에서 작은 점이 다가온다.
노인이다.

"..안돼. 안돼!"

노인이 이를 악물고 뛰어오며 소리친다.
청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한다.

"내 소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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