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을 팔다 2

단편

by 장순혁

#6

시간이 꽤 많이 흐른다.
여의 형은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여의 아빠와 엄마는 장례식장을 큰 곳을 빌린다.
관도 좋은 것을 쓰고, 음식도 잘하는 곳을 부른다.
여의 통장 속 돈으로.
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쁘다.
애초에 가족을 위해 쓰려고 받은 돈이었으니까.
그러나 여에게 문제는
그 돈을 죽은 가족을 위해 쓰려고
받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에게 형은 죽었다.
그건 여의 아빠나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에게는 그 의미가 달랐다.
커다란 장례식장.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텅 빈 조문실.
육개장과 전들은 차갑게 식는다.
여의 아빠와 엄마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운다.
여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여는 형의 영정사진 앞에서도 슬프거나 아픈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여의 아빠와 엄마가 울다 혼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여는 그 둘에게 물을 한잔씩 떠다주며 말한다.

"형은 어차피 죽을 거였어.
아빠도, 엄마도 알고 있었잖아.
왜 호들갑이야?
그리고 이런 장례식 할 돈 있으면
그 돈 아껴서 차라리
산 사람들끼리 밥이나 먹는 게 맞지 않아?
이런다고 형이 살아 돌아와?
살아 돌아온대도 병신마냥 링겔 달고 숨만 쉬고 있을 텐데?"

여의 아빠가 손에 쥔 종이컵이 찌그러진다.
종이컵의 물이 넘쳐흐른다.

"하긴 정상적인 게 아니지.
애미, 애비는 일부러 차에 치여서 합의금을 뜯어내는데
그 아들은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 게.
차라리 형한테 차에 안 아프게 치이는 법을
알려주지 그랬어?
부모 자격 실격이야. 여러모로.
그래놓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척 하고 있네?
뭘 잘했다고 질질 짜는 건지.."

여의 아빠는 분개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의 멱살을 잡는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아니.."

여는 말을 하려다가 만다.
여의 엄마가 여와 아빠를 말리며 울고 있는 얼굴이
여에게는 참을 수 없이 웃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는 웃는다.

"푸흡, 푸하하!"

여의 아빠는 주먹으로 여를 후려치고,
발로 걷어차며 말한다.

"당장.. 당장 나가.. 꺼져! 두 번 다시는 나타나지마!"

여는 그대로 장례식장을 나간다.
여의 아빠가 한 말대로,
여와 여의 아빠, 여의 엄마가 다시 만날 일은 없다.

형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음주운전차량에 치여 두 명 다 즉사했기 때문이다.

여는 또 웃는다.

"아빠 말대로 됐네? 우리 아빠는 진짜 똑똑하다니까!"


#7

형이 죽은 장례식장과 같은 식장의 지하,
차가운 고기저장 냉동고 같은 곳에서 여는 아빠, 엄마의 시체를 확인한다.
부모님이 맞느냐는 질문에
여는 그렇다는 뜻으로 대충 끄덕인다.
장례는 어떻게 치를지 물어보는 말에
여는 웃으며 답한다.

"그냥 버리세요. 어차피 이제 고깃덩어리인데."

여는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온다.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날이 좋았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과 적당히 따스한 햇살.

"와, 놀러가기 좋은 날이네."

그런 여의 곁으로 남자 둘이 머뭇거리며 다가온다.
딱 봐도 음주운전자와 변호사다.
운전자는 꽤나 부잣집 자제님인 듯하다.
쭈뼛거리며

"정말 죄송합니다. 제 실수로..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말.."

여는 그런 남자를 보며

"죄송하신 만큼 돈이나 주고가시죠.
죄송해하신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는 피식, 웃으며 마저 담배를 피운다.

운전자가 변호사를 난감하게 쳐다본다.
변호사는 대충 눈짓한다.
이런 조건이면 받아들이자는 말인 것 같다.
변호사는 여에게 합의서를 내민다.
합의금을 받는 대신 그 어떤 민, 형사상의 법적 조치나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여는 망설이지 않고 싸인 한다.

변호사는 들고 있던 까만 서류가방을 여에게 건네준다.
서류가방을 열어보면 돈다발로 가득 차있다.

"와.. 이런 건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신기하네요. 안 그래요? 하하"

운전자와 변호사는 여에게 질려버렸다는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대충 인사를 하고 가버린다.

여는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침을 뱉은 뒤,
서류가방과 함께 털레털레 집으로 향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8

사람에게 평생 먹고살 걱정 없을 정도의 돈과
무한한 시간이 있다면 사람은 과연 무엇을 하게 될까.
아마 적당하고 평범한 집에 틀어박혀서
주구장창 술과 담배나 하다가,
가끔 출장마사지를 불러서 성욕해소,
그리고 다시 술, 담배나 하다 죽을 것이다. 어이없게.

요즘 들어 여는 생각에 잠겨 있다.
"재미가 없다. 인생이." 라는 생각에.
문득 예술가에 대한 생각도 난다.
예술가를 만나면 묻고 싶은 것도 생겼다.

"아저씨.
아저씨는 사는 게 재밌어요?"

예술가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럼요. 당연히 재밌죠.
얼마 전에 즐거움을 샀거든요." 라고.

여는 피식, 하고 웃는다.

여는 그길로 밖에 나가
초록색의 커다란 등산 가방을 하나 사서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인출해서 넣고
집에 가져온다.

그날부터 성매매 아가씨들을 부르면,
그 돈을 가방에서 직접 꺼내가게 한다.
여도 알고 있다.
아가씨들은 항상 정해진 돈의 몇 배나
몰래 더 챙겨 간다는 걸.
그런데도 뭐, 달라질건 없다.
돈은 많으니까.
쓸 일도 딱히 없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는 아가씨를 불러
성욕을 해소하고 돈은 가방에서 알아서 가져가게 한다.
그 아가씨는 묻는다.

"오빠 뭐야? 로또 당첨됐어?
근데 돈도 존나 많으면서 왜 이런데서 살아?"

"몰라."

그날, 그 아가씨는 돈을 가져가지 않는다.
그냥 여의 스마트폰으로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간다.
그 아가씨가 돈이 담긴 가방을 바라볼 때
눈에 묘한 광채가 돌았던 것을 여는 놓치지 않았다.

그 아가씨가 가고 난 그 다음부터,
여는 베게 밑에 식칼 한 자루를 두고 자기 시작한다.

낮이면 칼을 숫돌에 벼리고,
밤이면 베게 밑에 두고 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9

어느 날, 그 아가씨가 온다.
술을 잔뜩 사들고.
외롭다며 전화 하길래 오라고 그랬다.
그냥 같이 마셔준다.
여는 술이라면 이미 이골이 나서,
아가씨가 먼저 취한다.
곯아떨어진다.
뭐야 이 여자, 여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여자 엄지를 가져다대고 잠금을 푼다.
'양아치1'이라는 이름과 주고받은 텔레그램이 보인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이 새끼 술에 꼴으면 문자 보낼 테니
올라와서 돈 챙겨가자.

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여는 여자의 스마트폰으로 '양아치1'에게 문자를 보낸다.

올라와.


#10

양아치들 2명이 여의 집에 들어온다.
침대에는 여와 여자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
서로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누워있다.

"이 씨발년은 그새 떡치다 기절했나?
하여간 걸레년. 쯧.
야, 집 좀 뒤져봐.
돈 초록색 등산 가방에 있대.
난 쟤 좀 깨워야겠다."

양아치 한명은 방을 뒤지고
다른 한명은 침대로 온다.

"야, 이년아 일어나."

양아치는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여자 손을 잡아당긴다.
여자 손이 쑤욱 빠져나온다.
그 끝이 잘린 채로.

양아치가 놀라서 넘어진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양아치를 덮치고 식칼로 난도질을 한다.
양아치는 반항 한번 못하고 죽어버린다.
술 취한 여자처럼.

털썩, 하고 뒤에서 넘어지는 소리가 난다.
다른 양아치가 벌벌 떨면서
등산가방을 품에 안은 채, 울고 있다.

"너가 양아치1이냐, 아니면 양아치2냐?"

"저..저가.. 아니, 제가.. 야..양아치2요.."

"아, 그래.
넌 가봐. 가방은 두고.
아, 그 안에서 한주먹은 꺼내가라.
팁이야."

양아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오 만원 뭉치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집밖으로 도망친다.

"더 챙겨가지."

여는 돈 가방 위에 앉아 하품을 하며
칼 손잡이 끝으로 뒷통수를 벅벅 긁는다.

여는 가방을 들고 침대로 간다.
조각난 여자 몸들을 집어서
죽은 양아치 몸 위로 대충 집어던진다.
여자의 머리까지 다 집어던지고 나서야
침대에 자리가 생긴다.
여는 침대 안에 들어가 가방을 끌어안고 잔다.
칼은 다시 베게 밑에 두고서.


#11

여가 자고 일어난다.
여의 집, 방안을 가득 채운 남자들.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놈은 익숙한 얼굴이다.
여의 집에 사채를 떠안긴 사채업자 놈.

"뭐, 필요한 거라도?"

"킥킥, 아 이 새끼 이거 골 때리네?
저거랑 저거 니가 한 거라매?"

사채업자가 턱짓으로 시체들을 가리킨다.
사채업자의 뒤에는
어제 도망친 그 양아치2가 벌벌 떨며 서있다.

"저 뒤진 년이랑 놈이 내 직속은 아닌데..
뭐 소속 직원 같은 거거든?
근데 너가 죽여버렸네?
어떡할 거야?"

"왜, 돈 달라고?
가져가. 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사채업자가 뒤에 양아치2에게 가방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양아치2가 벌벌 떨면서 다가온다.
여는 양아치2가 가방에 손을 대는 순간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양아치2의 머리를 확 숙이게 하고
목에 식칼을 쑤셔버린다.
양아치2의 피가 목에서 분수처럼 솟아나온다.
여는 양아치2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목에 계속 칼을 쑤셔넣는다.
양아치2의 몸이 축 늘어진다.

여가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주위를 둘러싼 남자들이 어느새
제각기 다 사시미나 야구방망이를 꺼내
긴장한 채 서있다.

여는 웃으며 말한다.

"가져가라니까?"

당황하지 않는 건 사채업자와 여, 둘뿐.

"킥킥킥, 아 이 새끼 진짜 골 때리네.
야, 담배 한대 줘봐."

옆의 덩치가 담배를 꺼내
사채업자의 입에 물려주고 불도 붙여준다.

사채업자가 담배를 피우며 말한다.

"자, 내가 이 담배 한 까치 다 피울 때까지
돈 가방이 내 앞에 없으면 너네 다 뒤진다?"

주춤거리는 남자들.

"뭐해? 이미 시작했어."

가장 가까운 남자 한명이 여에게 달려든다.
여는 배를 찔린다.
여는 왼손으로 칼날을 잡고
배에 더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곤 오른손에 든 식칼로 남자의 등을 계속 찌른다.
미친놈처럼.
조금씩 떨던 남자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여는 미친놈처럼 식칼을 휘둘러댄다.
남자들의 허벅지, 팔, 발등이 여의 칼에 찍힌다.


#12

시간이 흐른다.
끔찍하게 난도질당한 여.
각자 어느 한 부위는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채업자.
사채업자의 앞에는 피 묻은 돈 가방이 있다.

"와. 뭐, 미친 개새끼가 따로 없네.
근데 얘들아."

남자들이 사채업자를 일제히 쳐다본다.

"나 이거 두 까치 째야."

사채업자는 자기 옆에서 담배를 준 덩치에게
손을 까딱까딱 한다.
덩치가 사채업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사채업자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의자를 들고 덩치를 후려친다.
의자가 부서질 때까지 계속.
의자가 부서진다.
쓰러져있는 덩치에게 사채업자가 말한다.

"일어나."

덩치가 숨을 몰아쉬며 일어난다.
사채업자는 덩치의 뺨을 후려치고는 말한다.

"애들 관리 똑바로 시켜.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에휴..
여기 다 치워.
저 뒤진 것들은 그냥 두고.
지들끼리 떡치다 강도 들어서 죽은 걸로 해.
얘기 새나가면.. 재미없어. 진짜로."

"네."

남자는 담배를 집어던지며

"가자. 돈 챙겨."

사채업자는 밖으로 나간다.

덩치는 근처의 야구방망이를 손에 든다.

"치워. 이 씨발새끼들아."

남자들이 각자 절뚝거리며 현장을 치우기 시작하고,

덩치는 그런 남자들을 야구방망이로
한명씩 후려갈기기 시작한다.


#13

덩치가 말한다.

"다 치웠으면 가자."

남자들이 절룩거리며 덩치를 따라 우르르 나간다.

텅 빈 집에 남은 것은
죽은 아가씨 조각들과 양아치1, 2.
그리고 여뿐.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사뿐사뿐 들어온다.
예술가다.
예술가가 여에게 말한다.

"이제 당신은 죽었으니, 우리 계약도 끝이네요.
당신의 슬픔. 잘 썼습니다.
아직 조금 남기는 했는데..
돌려드릴게요. 서비스에요."

멍한 채로 죽어있는 여의 표정을 보며

"오. 이것도 나름대로 재밌는 소재가 되겠는데요?"

예술가는 품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내려 간다.
다 적었는지, 노트를 덮고 품에 도로 집어넣는다.
예술가는 다시 사뿐사뿐 걸어 집밖으로 나간다.
여의 집 문이 닫힌다.
닫힘과 동시에 죽은 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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