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
"치매입니다."
요즘 들어
물건도 어디다 놓아두셨는지 모르시고,
자주 깜빡깜빡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간 병원에서 들은 소리다.
"뭐, 치매가 젊은 분들에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아닌, 내가.
"너무 청천벽력 같은 소리도 아닙니다.
다른 고연령층 환자들에 비해 고쳐질 가능성도 높고요.
병원 다니시면서 약 꾸준히 드시고,
본인이 노력만 하신다면 금방 치료 될 겁니다.
힘내세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드는 생각이라고는
'치매? 내가? 벌써?
금방 치료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 딸은? 내 와이프는?'
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잡으시고는
쓸쓸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하셨다.
"아가, 괜찮을 거야. 선생님께서 금방 고쳐진다고 하시잖니."
그날,
병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길고도 멀었고,
대리기사님이 운전하시는 차 보조석에 앉아
창밖만 멍하니 바라봤다.
약 봉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건지, 아닌지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나는 공허함에 휩싸여
잡아먹히지 않기를 기도했다.
[2]
내 소식을 듣고 아내는 울었다.
"괜찮아. 금방 낫는데.
아직 나도 젊잖아.
약만 잘 먹으면 된다니까, 그렇게 울지 마."
아내를 달래며 했던 말.
실은, 나에게 했던 말.
그렇게 한참을 울던 아내는 내게 말했다.
"여보. 괜찮아.
내가 당신 뒷바라지 다 해줄게.
벽에 똥칠을 해도 내가 다 치워줄게.
우리는 괜찮아. 괜찮을 거야."
평생을 가족 뒷바라지만 하시다가
인생 말년에 치매에 걸리신 후
병원에 갇히시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아버지께,
아내가 내게 한 말과 같은 말을 하셨었다.
하지만 그 결심은 머지않아 깨져 버렸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던 날,
어머니는 후련한 표정으로 병원 밖으로 나오셨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와서야 아버지께 묻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같은 처지가 되어버리고 나서야.
아버지, 당신께서도
이제 가족에게 아무런 것도 해주지 못하고
받기만 해야 된다는 것에
이렇게 참담한 심정을 가지셨었나요.
병이 더 심해지기 전에 해줘야 할 말들이 많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리도 묵묵하게 가만히 있던 것이셨나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질 것 없고,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뒤바뀔 리 없는 현실에 절망하셨나요.
아니, 절규하셨나요.
이제 조금은 그 기분을 알 것 같네요.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이 정도면 호상이라고 중얼거리던 제게
서운함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나요.
괜히 머리가 지끈히 아파오는 것 같네요.
이 아픔도 가짜인 걸까요.
이젠 저조차도 저를 믿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다 제 잘못이겠죠.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진작 아버지와 소주 한 잔 마시지 못한 제가 후회됩니다.
못난 아들내미, 참 이기적이죠?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아버지처럼 보는 법을 알게 되었네요.
끝없는 자기를 향한 원망과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그것들이 뒤섞여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말들에
대신 내쉬어보는 끈적한 한숨.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3]
이제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가 문자 메시지로 치매 예방법 등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빠는 예방법이 아니라 치료법이 필요한데?"
딸아이가 울었다.
농담이었는데.
그렇게 좋은 농담은 아니었나 보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테레비를 보는 내 품에 안겨 아이는 울었고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아내도 몰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난 울지 않았다.
아버지의 치매 소식에 울지 않았던 나는 자격이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가분해 했던 나에게는 자격이 없었던 것이니까.
난 멍하니 앉아
딸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아내에게 울지 말라고 말하면서,
테레비 속 야구 경기를 보며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김치찌개 냄새가 참 좋다, 라는 생각에 잠겼다.
신혼 초에, 자기가 김치찌개 하나는 잘 끓인다며
풋풋하게 웃던 아내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언젠간 그것도 잊게 될까.
잊고 싶지는 않은데.
[4]
의사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약을 꾸준히 먹었지만
나의 기억은 사라져만 갔다.
리모컨을 까먹고 테레비 앞에 서서
이 테레비에는 왜 버튼이 없을까?
테레비 보고 싶은데.. 라며 혼자 중얼거리거나
식사 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먹기 싫다며
소세지를 구워 달라고 투정 부리는 일이 많아졌다.
아내는 내가 그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으로 갔다.
두 손을 모아 힘껏 숨죽여 울었다.
아내의 눈물은 마를 줄 몰랐고,
딸아이는 나를 잠시 쏘아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아내를 위로했다.
그 냉담한 눈빛을 마주하면 가끔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오면, 나는 부서져 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그러나 나까지 울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가 내 몫까지 울고 있으니까.
나는 그저..
음..
그저..
잘 모르겠다.
내가 무슨 생각 중이었지?
[5]
다행히 집에 돈은 많았다.
아버지가 뼈 빠지게 일하시고 받은 돈과
내가 그전까지 벌어놓은 돈을 합치면 꽤나 큰 액수였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간병인을 써도,
그러다 결국 쓰러져도,
아내와 딸아이가 남은 생을 걱정 없이 살만한 돈이다.
그거 하나는 다행이었다.
[6]
오늘은 이사를 가는 날이다.
"그 집에는 내 방 있어?"
나는 순진하게 웃으며 물어봤고
아내는 지치고 피곤한 얼굴로
"응.. 당신 방도 있고, 친구들도 많아."
"진짜?"
나는 차 안에서 좋아서 방방 뛰었다.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야지!"
"..."
아내는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늘었다.
그래서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내가 새 친구들이랑
자기보다 친하게 지낼까 봐 질투하는 걸 거야.
헤, 유치하기는.'
나는 씨익 웃으며
차 창문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바람이 시원했다.
뒷좌석의 딸아이가 가만히 좀 있으라며 화를 냈다.
나는 금세 시무룩해져 창문을 닫고 두 손을 모아 배꼽 위에 얹었다.
"짜증나.."
내 중얼거림은 분명 모두에게 닿았을 테지만,
아무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차 안에서 홀로 메아리치며
엑셀, 기어, 운전석, 뒷좌석, 백미러 등등에 부딪혀 깨져 갈 뿐.
나는 이내 다시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웃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그 집에는 내 방 있어?"
"..."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거 하나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나는 뾰로통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7]
여기서는 모두가 같은 옷을 입는다.
그래도 내가 제일 잘생겼다.
태가 난다.
내 옆자리 아저씨는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
저번에 크레파스 빌려 달라 했는데 안 빌려줬다.
그래서 싸웠다.
아저씨도 나도 울었다.
선생님이 사탕을 줬다.
달콤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아저씨랑 악수했다.
둘이서 같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꽃을 그렸고, 아저씨는 자동차를 그렸다.
아저씨는 그림을 참 잘 그린다.
아빠가 가르쳐줬다고 했다.
나도 나중에 아빠보고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8]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창밖을 본다, 하염없이.
창밖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달라지기에
나는 질리지도 않고 창밖을 내다본다.
그래서 아내도 그렇게 창밖을 바라봤었나.
아, 어제는 아내와 딸아이가 왔었다.
둘 다 나를 껴안고 다시 펑펑 울었다.
울면 안 되는데.
내 가족들에게 나는 이제
귀찮고, 없어져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가슴 한쪽이 시큰해져서 나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아내와 딸아이를 안고 나도 펑펑 울었다.
우린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했다.
[9]
오늘은 아저씨가 신기한 걸 나한테 보여줬다.
컴..컴포스?
비슷한 거였는데..
아무튼, 거기다가 연필을 끼우고
둥글게 돌리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아저씨 엄마가 줬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안 사주는데..
나는 심술이 났다.
그래서 아저씨가 잘 때
선생님들 몰래 숨겨둔 컴.. 아, 컴패스를
내가 훔쳤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나도 가지고 싶은데 어떡해.
몰래 나만의 비밀 공간에다가 숨겨 놨다.
이제 내꺼지롱. 히히.
[10]
오늘은 말 그대로 벽에 똥칠을 했다.
간호사들은 구역질을 참으며 모조리 치웠고,
벌로 나를 속옷만 입고 복도로 내쫓았다.
난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게 내 생의 결말이라니.
더럽고, 추하고, 병신 같네. 하하.'
..아마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적어도 내가 나를 죽이고 싶다.
맨정신으로 내 삶을 끝내고 싶다.
일그러지고 부서지다, 먼지 덮인 문을 닫고 싶지 않다.
그게 내 최후의 존엄이라고 생각되기에.
모두가 잠든 밤,
나는 몰래 컴퍼스를 꺼내 손에 쥐고는
달이 밝게 빛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보름달이었다.
남은 가족들이 너무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멀리 떠나는 것이니.
"..보고 싶다."
봄의 벚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났으면.
컴퍼스의 뾰족한 철심 부분을 목에 서서히 가져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