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단편

by 장순혁

시골의 한적한 전원주택.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려면 십분은 걸어야하는 대현의 집에서
대현과 친구인 현수는 해가 한가운데에 뜬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시골에서 사는 대현의 집에 다른 곳에서 살고있는 고등학교 동창 현수가 오랜만에 놀러온 것.
오징어다리를 입에 물고 질겅거리는 현수와
맥주캔만 들이켜는 대현.
시시껄렁한 대화만 주고받던 차에 대현은 문득 말을 꺼냈다.

"야, 너 그거 알아?"

귀찮은 얼굴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던 현수가 대답했다.

"뭐?"

"그.."

대현은 말하다말고 뜸을 들였고,
답답한 현수는 되물었다.

"아, 뭐?"

"그, 요새 뉴스에서 나오는 거 있잖아.
연쇄.. 연쇄 실종.."

"아, 그 뭐더라..
연쇄 실종 사건?
알지. 왜?"

"아니, 아직 뉴스에는 안나왔는데,
우리 옆 집 아저씨도 실종됐대서.
혹시나 하고."

"걸어서 십분은 넘게 가야되는 집을 옆집이라 부를 수가 있나?
그리고, 실종 사건은 서울에서만 일어난다더만.
이 깡촌까지 납치범이 내려오겠어?
여기 너 빼면 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인데."

"..그렇지?"

"그 옆 집 아저씨는 실종된건지 오랜만에 아들내미인지 딸내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자식들 보러 서울이라도 간 건지 모르잖아.
근데 너 그 아저씨랑 친했나?
몇 번 술마신게 다 아니야?
아무튼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마, 새끼야."

"..일단 술이나 더 먹자."

"좋지요~"

*

얼큰하게 취한 둘.
현수는 텅 빈 맥주캔을 흔들어본다.
다른 맥주들은 없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이미 다 마셔버려 텅 빈 캔들만 굴러다닐 뿐이었다.

"야.. 대현아, 대현아.
술 떨어졌다."

자리에 앉아 꾸벅거리던 대현.
눈을 꿈뻑거리며

"음..?"

"술 떨어졌다고, 임마
아씨, 술 살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되는 거 아니야?
후.. 거기까지 또 언제 나가.
야, 대현아. 집에 꽁쳐둔 술 같은 거 없냐?"

"술..
음..
잠깐만.."

대현은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장농을 열고 깊숙한 곳에 숨겨둔 듯한 담금주통을 꺼낸다.

"이거, 마가목주인데 이거라도 먹을래?"

"오.. 너 술도 담그냐?"

"아니..
옆집 아저씨 건데."

"그걸 왜 너가 가지고 있는데? 받았어?"

"가져왔지."

"..아까, 옆 집 아저씨 실종됐다매."

"..응?"

"어떻게 그걸 너가 가지고 있냐?"

"아니, 그.. 음.."

"너 설마.."

침을 꿀꺽 삼키는 대현이다.

"한참 전에 선물로 받아놓고 까먹고 있던 거지?
새끼야, 이런 게 있으면 미리미리 말을 해야지.
음흠, 빨리 이 형님께 한잔 따라보거라!
마가목주는 또 처음이네."

"어, 응.."

마가목주를 컵에 따라주는 대현.
현수는 원샷해버린다.
그러다 목을 부여잡고,

"어, 이거..?"

"응?"

"개맛있네."

신나게 마가목주를 퍼마시는 현수와
그런 현수를 불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대현.
어쨌든 술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대현과 현수 모두 고주망태가 된 밤.
대현이 말을 꺼냈다.

"야, 현수야."

"..응."

"이 마가목주.. 옆집 아저씨한테 받은 거 아니야."

"그럼 뭔데, 걍 가져왔다고?"

"옆집 아저씨.. 내가 죽였다.
죽이고 가져온거야."

"뭐래.."

"연쇄실종사건들도 다 내가 한 거야.
전부 다.
내가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 다 죽었어."

기지개를 켜는 현수.

"술 처먹을 거면 곱게 처먹어..
졸리다. 이불 어딨냐?"

"현수야. 진짜야."

피식, 웃는 현수.

"그래, 그래.
그러면 왜, 왜 그랬는데?"

"나한테 비밀이 하나 있거든?
그 비밀 때문에 죽은 거야."

"무슨 비밀?
뭐 무슨 노트에 이름 적으면 그 사람이 죽어?
야, 그거 데스노트 표절이야."

"나한테 괴물이 있어.
정확히는 내 안에."

"그건 헐크 표절이고."

"진짜라니까!"

"네, 네.."

"내가 내 팔을 자르지?
그럼 팔이 다시 자라나.
두, 세개 정도로?
목을 자르면 목도 많게 다시 자라나고."

"음.. 거 참 편리하네."

"진짜야.
내 몸을 잘라내면 내 안의 괴물이 뿜어져 나와서,
내 주변의 사람들을 잡아먹어.
뼈 하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래서 실종됐다고 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나도 이런 내가 무섭다고."

"어, 나도 지금 그런 너가 무섭다.
그래서 이불 어딨다고?
좀, 나 올거 알았으면 미리미리 꺼내놔라.
손님 대접이 영 꽝이구만."

"..이불, 방에 장농 안에."

"오케이~"

비틀대며 장농에서 이불을 꺼내와 바닥에 까는 현수.
배게에 머리를 베고 눕는다.

*

"너도 자라. 난 그럼 꿈나라로 이만."

"..너 내가 말한 비밀 지킬 수 있지?"

"어."

"진짜지?"

"그렇다니까.."

"진짜, 진짜 정말이지?"

"에이씨, 진짜!"

대현에게 베개를 집어던지는 현수.

"적당히 하고 자라.
짜증내기 전에."

"..진짜라니까."

현수는 한숨을 푸욱 내쉰다.

"그래, 알았다.
그러면 한 번 보여줘봐, 나한테도."

"어?"

"니 말이 진짜라면 나한테도 보여 달라고.
못하겠지? 그치?"

"안돼. 너무 위험해."

"위험하긴 지랄이..
아, 빨리 보여줘 봐! 보고 자게!
뭐, 칼이라도 가져다줘? 어?"

"..아니야."

"그래, 헛소리도 이제 그만치 했으면 많이 한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제 꿈나라 입국 심사를 받으러.."

대현은 현수의 말을 끊으며

"내가 가져올게."

집 밖으로 나서는 대현.
비장한 표정이다.
현수는 그제야 뭔가 이상했는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대현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커다랗고 날이 선 커다란 정글도를 가져온다.
현수가 침을 꿀꺽 삼킨다.

"야, 대현아."

"..응."

대현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현수.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더니

딱-!

대현의 이마에 딱밤을 때린다.

"야밤에 지랄도 적당히 해라.
내 고운 피부 미용을 생각하면 널 이 자리에서 때려눕혀야하지만
자애로운 내가 이정도로 봐줄 테니까 잠 좀 자자."

"아니야, 현수야. 진짜 보여줄게.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아름다운 보름달이 내리쬐는 밤에
진짜 별 지랄을 다하네..
내 앞에서 뭐 하나 자르게?"

"잠깐만. 긴장되네. 후.."

"대현아, 이 시발 대현아!
뭘 하든 일단 자고 내일 하면 안되냐?
니 그 괴물한테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졸려죽겠다. 응?
나 내일 약속도 있다고.."

"아니야. 마음먹은 김에 해야지.
나도 왠지 확신이 들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제일 친한 친구니까."

"감동적이네.
눈물 나온다, 야."

"..눈물만 나오면 다행인데."

"대현아, 여기 처박혀있는 것도 좋은데,
가끔 읍내라도 나가서 사람들 좀 만나봐.
뭐, 아르바이트를 하던지,
누구한테 고백을 하던지.
얼마나 혼자 살았으면 이딴 짓거리들을 하는 거야.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내일은 나 약속 가기 전에 읍내 카페라도 같이 가자.
알겠지?"

"..너가 살아남는다면."

현수는 완전 질렸다는 듯

"..그래, 니 하고싶은대로 다 해라."

한참을 정글도를 들고 망설이던 대현.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현수에게 비장하게 말을 건다.

"좋아. 현수야 준비됐지?"

어디 한 번, 지켜나보자, 하는 뚱한 표정으로 대현을 바라보는 현수.

"그래, 준비됐다. 백 번 됐다."

"정말 준비됐지?"

"어."

"너는 귀찮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몇번이고 이렇게 다짐을 받아내야 해.
말뿐인 다짐 때문에
그동안 수없이 많이 실패를 겪었거든.
난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랄 뿐이야."

"어."

"자, 규칙은 간단해.
우선 비명 지르지 마.
비명을 질렀다면 일어서지 마.
일어섰다면 도망가지 마.
간단하지?
이것들만 지키면 돼."

"알았어. 난 지킬 수 있어."

"규칙이 뭐라고?"

"하..
비명 지르지 말 것.
비명을 질렀다면 일어서지 말 것.
일어섰다면 도망가지 말 것.
간단하니 이것들만은 지킬 것.
됐냐?"

"이번에는 다르겠지? 다를 거야, 그렇지?"

성의없게 고개를 끄덕이는 현수.

"응, 응."

"우선 심호흡 해."

"그렇게 호들갑 떨 것까지 있냐?
에휴.. 정 그렇다면 심호흡할게.
자, 스읍 후우, 스읍 후우. 됐지?
비명지르지도, 일어서지도, 도망가지도 않을 게.
이것들을 까먹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 만약 이게 다 장난이면 넌 내 손에 뒤진다."

"좋아.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

현수는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니가 헛소리 꺼낼 때부터 준비는 되어있었다고.
아, 할 거면 빨리 해! 좀 자자!"

"그래, 이번에는 믿어도 될 거야. 응.
그런 말도 있잖아.
믿음을 주지 않으면 평안은 없으리니.
자, 시작할게?"

현수가 정글도로 왼쪽 팔을 자르자,
두 개의 팔이 돋아났다.
두 개의 왼쪽 팔로 고정시킨 채
오른팔로 목을 자르자
네 개의 목이 다시 자라났다.

현수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은
비명을 지르고,
저리에서 일어나,
뒷모습을 보이며,
도망쳤고,
대현은 두 번째 팔로 그의 목을 잡고
네 번째 입으로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의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대현은 분개했다.

"제대로 규칙 좀 명심하라니까!
이러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잖아!"

축 늘어진 현수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현의 다른 세 개의 입이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고,
대현은 말했다.

"에휴, 먹어."

쭉 늘어나는 입들이 현수의 시체부터 바닥에 고인 피까지 먹어대기 시작했다.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깔끔해진 집 안.
대현은 바알간 피가 튄 이불과 베개의 커버를 벗기고,
직접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뭘 할 때마다 빨래를 해야 되니, 원..
넌 깔끔하게는 못먹니?"

'..으르릉'

주눅 든 듯한 소리가 대현의 머리에서 울렸다.

"하긴 너가 뭔 잘못이겠니.
규칙을 못지킨 사람들 잘못이지..
현수는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더니,
에이.. 쯧쯧.
됐다. 너도 좀 자."

'..끼잉'

"왜, 아직 배고파?"

'으르렁!'

"흠.."

대현은 이불과 베개 커버들을 빨랫줄에 널어놓고는
집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현수의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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