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단편

by 장순혁

똑똑

"저기.."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무선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여자의 테이블을 손끝으로 두드리는 남자.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그, 저번에 연락 받은.."

"아, 아이고, 안녕하세요!"

이어폰을 귀에서 빼네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 여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이 좀 있어가지고.."

"아니요, 아니요.
저도 온 지 얼마 안됐어요.
뭐 드실래요? 아메리카노?"

"뭐.. 아무거나 상관 없습니다."

"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여자는 잽싸게 주문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커피를 남자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아뇨, 이 정도로 뭐..
그보다 바쁘실텐데 인터뷰 빨리 시작할까요?
제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 녹음기 켜놔도 되죠?"

"네."

"자, 그러면.."

"잠시만요, 저기 그..
죄송한데 제가 그쪽에 앉아도 될까요?"

"네? 아.. 네, 그러시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여자는 의아했지만 그가 말한대로 자리를 바꿔앉았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휴.. 감사합니다."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남자.

"메일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작가인데, 이번에 쓰는 소설 주제가 정신병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듣기로는 병을 앓은 지도 오래되셨고,
정신병원에 입원도 하셨었다고..
아, 이런 표현 써도 괜찮으실까요?"

"전 괜찮습니다."

"아, 그러면 다행이네요.
아무튼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류에 관해서
이야기하시는 걸 듣고싶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음..
어떤 얘기를 드려야 할까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신병이라는 주제로,
경험담이든 느낌이든 생각이든
얘기하시고 싶으신대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잘 요약하고 간추려보겠습니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언제 처음 자기가 정상이 아니란 걸,
정신병에 걸렸단 걸 자각하셨나요?
..표현이 조금 무례했나요?"

미소짓는 남자.

"아, 괜찮아요.
다들 그러는 걸요, 뭐.
당장 제 부모님조차 정신병은 나약해서 걸리는 거라고 아직도 제게 말하세요.
수면제 없이 잠에 들지 못한다면 안 자면 되는 거 아니냐,
갑자기 공황장애가 일어나면 심호흡하면 되는 거 아니냐,
다 너가 마음을 굳게 다잡지 않아서 그런 거다, 이런 식으로요.
우선 제가 처음 정신병에 걸렸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냐..
글쎄요.
제가 지금 정신병에 걸린 상태이긴 한걸까요?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이 약 먹고 나은 후에도 그 사람을 코로나 환자라고 부르나요? 아니잖아요.
아직도 저는 정신과 약들을 먹지만 약들을 먹으면 잠시는 나아져요.
그렇다면 저는 정신병에 걸렸다가, 나았다가, 다시 걸렸다가를 반복하는데.
뭔가 이상하잖아요.
정신병 환자였다가,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었다가, 멀쩡한 인간이었다가, 다시, 정신병 환자였다가.. 그런 무한루프를 반복한다는 게."

고개를 갸웃하는 여자.
남자의 말이 점점 두서없어지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왜 그런 말들 있잖아요?
평생을 멀쩡하게 정상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도 정신과 약을 먹다 보면
바보가 되어버린다느니, 그런 말들이요.
그런데 이게 다 과장이거든요.
보통 그런 말하는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약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에요.
자기들도 안 먹어봤으면서, 말들은 참 더럽게도 많아요.
호들갑도 장난 아니고.
듣는 정신병자 짜증나게. 그렇죠?
물론 정신과 약이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창밖에 보이던 공룡이 사라진다던가,
몸을 뒤덮는 개미들이 없어진다던가,
환청이 더는 들리지 않는다던가,
누군가를 죽여버리고싶지 않아진다던가,
그러지는 않는다는 거죠, 제 말은.
개미들 몇 마리가 몸 안으로 들어가면 목이 간지러워요.
눈도, 코도, 귀도. 그것들을 참고 견뎌내다보면 결국 머리가 너무 간지러워져요.
머리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뇌를 마구 긁어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뇌가 문제라서 벌어진 일이니까.
고작 그 작은 전기 자극 때문에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말도 안되잖아요.
아..
그래서 전 손톱을 언제나 짧게 깎아놔요.
언제 참을성이 바닥나서 뇌를 긁어내고 싶어지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원래는 손가락을 아예 잘라내고 싶었는데,
뭐, 어쩔 수 없죠.
인생 산다는게 다 그렇잖아요.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니까.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우니까요.
개같은 연놈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내 몸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아요, 사람들은. 물론 저도 포함해서.
저에게만 보이는 거미나 사마귀가 제 몸을 물어뜯을 때,
저는 실제로 그런 고통을 느껴요.
느끼는 건가?
느끼는 걸까?
하지만 저는 살면서 거미나 사마귀한테 물려본 적 없거든요.
근데 어떻게 그렇다고 단정짓고 있는 걸까요.
겪어보지도 않은 일을 이렇게 절실하게 느낀다니.
..잠시만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약 봉투를 꺼내 약을 입에 털어넣는 남자.

"약은 저한테 딱 이 정도에요.
이렇게 그냥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정도?
아, 약을 먹었으니 잠깐은 괜찮겠다, 그 정도.
안정감.
안정감이 중요해요.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머리가 조금이나마 더 차게 식는 느낌이죠.
냉장고 냉동칸에 대가리를 쳐박고 몇 시간을 있었던 것처럼.
제가요, 정신과 다니면서 약을 지금 십년째 먹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느낀 게,
약을 먹는 건 그냥 금연하는 거랑 같다고 생각해요.
담배를 피우다가 금연을 시작한다고
바로 막 기분이 상쾌해지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그냥 더 나빠지지 않는 정도를 유지해줄 뿐이잖아요.
정신과 약도 그래요, 제가 느끼기에는.
더는 나빠지지 않을 정도. 딱 그 정도를 유지하게 해줘요.
그게 어딥니까, 안 그래요?
더 나빠지면 바로 황천길 직행 편도 티켓 구매하러 갈 텐데. 하하.
다리를 절면 목발을 짚고,
팔이 부러지면 깁스를 하고,
목이 꺾이면 목보호대를 차고.
이빨이 나가면 임플란트를 하고.
인생이 다 그런 거죠.
마음이 복잡해지면 마음을 다른 신체상의 장애를 대할 때처럼 교정한 상태로 고정하면 되는 거예요.
약을 먹든, 팔뚝을 칼로 그어대며 자해를 하든, 뭐..
자기가 선택하면 되는 거죠.
더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다른 누구의 말들도, 행동도 결국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롯이 자기가 결정해야만 해요.
죽든, 살든, 둘 다 아니든간에요.
인생은 짧지만 하루는 긴 법이니까.
모든 게 부질없으면서 동시에 너무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약 한 알에 두통이 사라지고,
두 알에 간지럽지 않아지고,
세 알에 쓰라림이 연해지고,
네 알, 다섯 알, 여섯 알..
내가 내가 아니게 된 기분.
더럽고 추악한 오물 속을 헤엄치는 느낌.
걷잡을 수 없이 구역질을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토해내면 너무 중요하지만 나는 모르는 것이 삐져나올까봐, 그게 무서워 억지로 참아내는 것.
아픔이 아픔이 아니게 될 때,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될 때,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거예요.
필요없는 것을 잘라내는 게 진리라면,
지구는 사람들의 모가지를 전부 잘라낼 거에요.
최대한 아프고 고통스럽게.
그러기 전에 지구에게도 약을 처방해줘야 할텐데.
아프지 않게, 슬프지 않게.
아니, 아픔을 잊게, 슬픔을 잃게.
눈물은 적혈구 없는 피니까.
졸릴 때마다 눈은 피를 흘려댄다는 뜻이니까,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않겠죠?
졸린데 잠을 자지 못하는 것만큼 기분 더러운 건 없어요.
..음. 내가 뭔 말을 하려고 이렇게 장황하게 떠들었더라.. 뭐지?
아, 맞아. 정신과 약은 상태를 호전시켜주지 않아요.
정신병이란 게 나을 수가 없는 거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조현병도 있어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갑자기 저를 죽이려고 달려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일 하면서 살아가요.
그래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면서 다니죠.
언제든지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게.
물론 그쪽도 마찬가지죠.
제가 굳이 왜 문 쪽에 가깝게 앉아있겠어요? 하하.
너무 기분 나쁘게는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전 가족들이랑 있을 때에도 이렇게 앉으니까요.
천성이 이런 걸 어떡합니까?
아무튼 그래서 저는 깨어있을 때는 매일 주변을 경계해요.
잠들어있을 때는 어떡하냐고요?
제가 잠에 들면 그 녀석이 대신 막아주죠.
그 녀석이 잠에 들면 제가 막아주는 거고요.
우리는 궁합이 잘 맞아요. 나이스 콤비가 따로 없죠.
물론 잠에서 깼을 때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건
굉장히 불쾌한 일이기는 해요. 저희도 처음에는 많이 싸웠어요.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하죠.
그건 제 파트너에게도 같은 상황일 테니까요.
서로가 약점을 드러낼 때 서로의 약점을 가려주는 조건으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영위하기로 한 거죠.
서로를 배려하는 것. 이게 참 요즘 사회에서는 중요해요. 그렇죠?
그걸 못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아요.
굳이 뭐, 피를 보거나 그러지는 않더라도 사소한 다툼들은 많이 일어나니까요.
그런 사소함이 모여 중대한 일이 되는 건데.
사람들은 쉽게쉽게 까먹어버린다니까요.
스읍, 후우.
스읍, 후우.
정상인처럼 심호흡하기.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만 정상인 척을 해요.
그러고싶지않다면 파트너를 깨워두세요.
파트너가 속삭여 줄테니까.
메멘토 모리! 하고요. 하하.
물론 저처럼 이런 파트너를 갖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는 마세요.
아직 오지 않은 것일뿐 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아, 내가 정신병자인가? 이런 생각이 들때 전문가랑 상담하고, 병원을 다니기로 결정하면,
꾸준히 병원에 다니면서, 늘 까먹지 않고 약을 챙겨 먹고,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그쪽한테도 찾아올 거예요.
제 파트너처럼 멋지고 환상적인 파트너가!"

윙크하는 남자.
떨떠름한 여자.

"아.. 그렇군요..
하하.."

여자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는 남자.

"저는 그럼 약속이 있어서 이만.."

"그.."

"네?"

"어.. 아니에요,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남자는 뒤돌아 카페를 나가려다,
여자에게 말한다.

"아, 파트너 말인데요.
그쪽도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이미 알고 계시려나?
난 보이는데."

남자는 떠나가고
카페에 홀로 남겨진 여자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노트북만 멍하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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