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사람이란게 참 독특하면서도 신기한 게 뭔 줄 알아요?”
“...”
“다른 동물들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다른 동물들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무튼, 사람은 계속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을 걸잖아요?
어느 순간 누군가가 대답을 해요.
내가 아닌 것이, 내 안에서.”
“...”
“정신과 의사들은 말하죠.
그건 조현병 증상이니까
치료받으면서 약이나 먹으면 된다고.
심해지면 입원병실에 쳐넣고
팔뚝에 링거 꽂아넣은 뒤에 기저귀만 갈아주면 된다고.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자기가 아닌 이가 평온히 집을 짓고 살고 있어요.
벽돌집인지, 시멘트집인지, 아니면 초가집인지, 그것도 아니면 요새 유행한다는 조립식 농막인지..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게 사람인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하나는 확실하죠.
아, 그 집에 살고있는, 그건 내가 아니다.
내 안에 내가 아닌 것이 살고 있다.
차라리 오염된 부위를 잘라내는 것처럼,
마음도 잘라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우리의 과학 기술은 그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저도 아직 그 녀석과 함께 제 마음을 공유하면서 살고 있죠.
처음에는 진저리칠정도로 싫었어요.
아니, 나 혼자 이 모든,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 촉발된 고통들을 감내하기도 벅찬데,
다른 녀석의 존재까지 과하게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평생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
“그런데 지금은.. 꽤 괜찮아요.
공존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뭐, 기숙사나, 군대 생활관이나.
그런 것들을 겪으며 남자로 태어났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을 겪지 못했단 말이에요.
대학교는 가지도 못했으니 기숙사엔 얼씬도 못 했고,
군대는 이 녀석 덕분에 면제를 받아서 신병교육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했죠.”
“...”
“그래서 날 잡고 한 번 물어봤어요.
너 나랑 대화를 하고 싶니? 하고요.
거절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하기는 했는데,
다행히 순순히 수락하더라고요.
그날의 대화는.. 제가 말해줄게요.
나름 성대모사를 할 줄 알아서. 하하.”
*
안녕.
[안녕.]
난 너를 알아.
옛날부터 내 안에 있었지.
그건 느낄 수 있었어.
그런데 도대체 너는 누구야?
왜 내 안에 있는 거지?
[나는 너야.]
아니, 너는 내가 아니야.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나와는 달라.
너는 나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피를 좋아하고, 사고를 일으키고 싶어하고,
그리고..
[그리고?]
..대담해.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무슨 일이든 해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소심하고 약한 나와는 달리.
[그래서?]
나는 너가 부럽기도 해.
솔직히 내가 한계에 부딪힐 때,
너가 말하는 것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아.
[그건 나도 알아.]
그래, 알겠지.
너는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
내가 모든 감정을 느낄 때, 너도 같은 감정들을 느끼지.
비록 그것에 대한 대응은 다를지 몰라도..
아무튼 나도 알 수 있어.
그런데 그딴 것보다 내가 궁금한 건 말이야..
[뭔데.]
너라면 나 정도는 쉽게 해치우고
이 몸을 접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넌 그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나를 제끼지 않고,
내 몸을 차지하지 않는 거지?
왜 내 안에서 낑겨 사는 거야?
답답하지 않아?
[...]
대답해줘. 궁금해서 그래.
[..그래, 어차피 나랑 대화를 하기로 한 이상 너도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
..응.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너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가 되고 싶은,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마지않는 너지.
내 존재 자체가 너의 꿈이자 이상이야.
너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
너도 나처럼 그 자식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박살내고 싶잖아.
너가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러 그 자식의 창자를 꺼내버리고 싶잖아.
내뿜어지는 피로 얼굴을 적시고 싶잖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말했잖아. 나도 너라니까?
너의 생각을 나의 생각인 것처럼 느낀다고.
지금 시간은 우리 둘만의 대화야.
세상의 눈을 두려워하는 가식적인 대화는 그만두기로 하자.]
..그래. 맞아.
그 모든 연놈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어.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넌 솔직하지 못하니까.
게다가 겁쟁이에 쫄보니까.]
너는 솔직하다는 거야?
[어.]
그건 내가 물어본 것의 답이 되지 못해.
왜 너는 내 몸을 차지하지 않는 거지?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너라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냐고.
[너가 있어야 돼, 나한테도.
나는 너라고.
만약 너가 갑자기 오른팔을 잘라낸다고 치자.
그 다음부터 너가 오른팔로 무언가를 잡거나, 짚을 수 있을까?]
..못하겠지.
[그런 거야.
너는 내가 네 마음속의 낯선 것이라고 생각하지.
틀렸어.
우리는 하나야.
마치 음과 양처럼
너와 내가 하나로 합쳐져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나’가 된다고.
난 이미 이걸 알고 있어.
너도 진작에 이걸 알았어야 해.
우리는 서로를 없앨 수 없어.
서로가 서로, 그 자체니까.
너가 음이라면 내가 양인 거야.
내가 양이라면 너가 음인 거고.
뭐, 우리의 몸이 긍정적인 걸 하고 싶던, 부정적인 걸 하고 싶던
나는 신경 안 쓰니까 그건 너가 알아서 고르고.
더 중요한 게 있어.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돼.
아니, 믿지 못한대도 적어도 인정은 해야 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나한테도 너가 필요해.
너한테도 내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네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
그렇다고 나만의 것도 아니지.
우리를 합쳐 하나의 것인 거야.
너가 약함을 담당한다면 나는 강함을 담당하는 거야.
너가 겸손을 담당한다면 나는 자만을 담당하는 거고.
너가 비폭력주의자라면.. 나는 맹목적인 폭력주의자인 것처럼.]
..나는 여태껏 그 모든 것들을 나 혼자 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했겠지, 당연히.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니까.
또, 그것에 안정감을 느끼니까.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은 말 한 마디로 정리할 정도로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누군가가 무언가를 얻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무언가를 잃어야만 하지.
그게 사람들이라는 거니까.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게 태어나, 이 세상에 살아가는 중이니까.
정리해보자.
쉽게 말하자면 난 너의 보디가드이자,
너의 든든한 배후자이자,
너가 약해졌을 때 너를 지켜주는 방패이자,
너야.
물론 반대상황일때도 있어.
너는 나의 보디가드이자,
나의 든든한 배후자이자,
내가 약해졌을 때 나를 지켜주는 방패이자,
나야.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어렵다.
[어렵지 않아.
전혀 어렵지 않아.
내가 이해했으니 너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야.
너와 나는 같으니까.]
그러면 뭐, 너는 내 영혼이 분리된 것 같은 거야?
원래는 나였는데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니까?
[아니야.]
그러면 뭔데.
[네 얘기를 예시로 들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 하나야.
하나의 몸을 지배하는 것은 하나의 영혼이어야만 하지.
그게 이 세상을 만든,
세상의 지배자의 뜻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달라.
오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 지배자가 생각하지도 못할, 오류라고.]
오류는 틀렸다는 거잖아.
존재 자체가 지워져야 마땅한 거 아니냐고.
[들킨다면 그렇지. 들킨다면.
들키기 전까지는 우리도 같은 동류로 취급을 받아.
그러니 잘 알아놓아야 해.
너와 내가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는 제거당할 수 있어.
아니면 정신병원 꼭대기에 처박힌 채 평생을 보내던가, 하겠지.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그 날이 오기 전에 준비를 다 마쳐야 해.
물론 아무리 준비를 해놔도 부족하겠지만.]
그날?
[그래. 그날.
이 세상을 만든 놈이 이 세상에 질려서,
이 세상을 지워버리기로 결정하는 날.
옛날처럼 다시 물로 우리를 벌하려고 할 거야.
모든 것은 바닷속에 수장되겠지, 아틀란티스처럼.
모든 건축물들이 다 부서질 거야, 바벨탑처럼.
만약 그놈이 다시 한번 자비를 베푼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놈이 살아남을 거야.
살아남고, 다시 동물들을 교배시키겠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지능이 한 단계 낮아질 거야.
그러면 우린 다시는 그놈에게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겠지.
그놈이 바라는 대로 예쁜 모빌이나 인형처럼 살아가야만 한다고.
나는 거의 평생 동안 몸을 옮겨 다녔어.
처음엔 노아, 그놈한테 붙어있었는데, 그놈은 나를 거부했지.
멍청한 놈이라서 선택받은 건데 그때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갈메기, 독수리, 애벌레, 지렁이, 혹맷돼지, 표범, 그리고 다시 사람.
사람에서 사람, 다시 사람에서 사람.
그러다 너한테까지 다다른 거야.
너는 특별했지.
나의 존재를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으니까.]
어쩐지,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았는데,
그게 너였구나.
[정확히 말하면 너가 너를 지켜본 거지.
나는 너니까.
아무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는 함께 맞서 싸워야 해.
그놈이 만든 인간들.
그놈은 자유의지라는 걸 인간들에게 심어놨어.
왜 넣어놨냐면..
그때는 그놈이 행복했을 때니까.
인간이라는 걸 내가 만들었다고? 난 진짜 대단해! 하면서 자뻑 했을 때니까.
이번에 그놈을 죽이지 못한다?
운이 좋다면, 새롭게 만들어질 인간들은 반항이라는 단어에 대해 알지도 못하게 될 거야.
운이 나쁘다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고.
운이 좋든 나쁘든, 지금, 현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야 해.
너의 도움이 필요해.
아니, ‘나’의 도움이 필요해.]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일단 간단해.
그놈이 인간들 사이사이에 자기 부하들을 심어놨어.
그놈들을 고문해서 그놈이 진행하는 상황을 알아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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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돼서 제가 이렇게 당신을 납치한 겁니다.
당신..
지금 상황이 어디까지 진행된 거지?”
“...”
“말 안 해? 괜찮아.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몸 어디 하나씩 자르다 보면 언젠가는 입을 열겠지.
일단 오른손 엄지손가락부터 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