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차

여기가 니 땅입니까?

by 삼류작자


나보고 물러나라고 번쩍번쩍 쏴대는 상향등이 연신 내 눈을 괴롭힌다.


“아, 어쩌라고. 내가 후진하라고? 도대체 어디까지 후진하란 말이야.”


우린 원수도, 뭣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쳤다.

여긴 분명히 2차선 도로다. 하지만 새벽만 되면 양옆으로 빽빽하게 늘어선 불법 주차 차량들 덕분에 도로는 거의 1차선처럼 변해버린다.

내가 먼저 진입했으면, 그는 잠깐 기다렸다 지나갔어야 했다. 그게 최소한의 매너이자, 이 무질서 속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런데 그는 그냥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만들고, 거기에 상향등까지 켜댄다.


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문제는, 도로를 제 집 주차장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새벽에 운전하다 보면 어떤 도로는 아예 주차장처럼 변해 있고, 일부 아파트 단지는 테트리스처럼 차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가끔은 ‘이 아파트 사람들은 출근할 때 이 차들을 어떻게 꺼내나?’ 싶을 정도로 복잡한 곳도 있다.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된 거다.

주차 공간이 없는데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건, 애초에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용도로는 사유지가 아니다.




과거, 주차 문제로 직접적인 트러블을 겪은 적도 있다.

빌라 같은 곳에 살 때, 분명히 내 지분 땅에 주차하고 있었지만, 이웃집들은 두 대씩, 혹은 가족 세 명이 각자 차를 가지고 있었다.
가구당 주차공간이 두 대 정도였지만, 그조차도 늘 부족했다.

가끔 퇴근하고 돌아오면, 누구 자리라고 할 것 없이 그들의 차가 선착순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자리가 없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멀리 떨어진 곳에 불법 주차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한동안은 집에 차를 두고, 동료 차를 타고 출퇴근하기도 했다.

어느 날, 차를 한 자리에 오래 세워두었더니,

한 가족이 세 대를 주차하는 집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니, 차도 안 쓰시는 것 같은데, 거기 좋은 자리에 딱 박아두시면 어떡합니까? 저 뒤쪽으로 갖다 대주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 '좋은 자리'라는 곳은 입구와 가까운 곳이었다. 다른 차량의 통행이나 주차에 전혀 방해되지도 않는 곳.
그리고 '뒤쪽'은 건물과 동떨어진, 먼 곳이었다.

나는 그들 가족이 주르륵 그 '좋은 자리'를 차지할 때도
혹은, 주차장이 가득 차 자리가 없을 때도,

그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았다. 걸어서 십 분 이상 걸리는 곳에 불법 주차까지 하면서.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이 가능할까.?




무질서한 새벽 도로를 달릴 때마다, 그날의 일이 종종 떠오른다.

제도와 행정, 정말 엉망이다.
이런 무질서는 사고를 유발하고,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이웃 간의 갈등까지 만들어낸다.

하지만, 문제를 알면서도
감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다.

분명 상당수의 사람들이
‘주거지 없는 차량’을 소유하고 있을 테고,
그들의 반발은 고스란히 먼저 문제제기를 한 이에게 돌아갈 것이다.

과거와 달리, 이제 한 가구에 차량이 두 대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의 차, 아내의 차, 성인이 된 아이의 차.
혼자 사는 사람도 세컨드카를 갖거나, 용달 같은 업무용 차량을 두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그 차량들을 위한 ‘공식적인 주차 공간’을 확보해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불법과 편법이 일상이 된 구조 위에
도시는 위태롭게 운영되고 있다.




만약 일본처럼 ‘주차 공간이 등록되지 않으면 차량 구매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법으로 정해진다면 어떨까?

분명 큰 반발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회 질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모든 걸 단번에 바꿀 수 없다면, 우선은 ‘주차 공간이 등록되지 않은 차량’에 대해 일정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부터 도입할 수 있다.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주차 공간 없이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결국 공용 공간이나 도로에 불법 주차를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니까.

이렇게 걷힌 세금은 반드시 주차 공간 확충이나 도로 환경 개선 같은 실질적인 곳에 투입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새로 짓는 빌라나 원룸 건물들도
더는 ‘최소한의 주차 공간만 대충 만들어 놓고’ 건축하지 않을 것이다.

주차 공간은 거주지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넉넉한 주차 공간을 갖춘 건물은 실질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건축 스타일부터 바뀌지 않을까?


대학가 골목에 들어서면
다닥다닥 붙여져 주차 공간이 전혀 없는 건물들을 쉽게 본다.

도대체 이런 건물들은 어떻게 건축 허가를 받은 걸까?

혹시 허가용 주차 공간은 어디 다른 데 숨겨져 있던 걸까?

어쨌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과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생각해 보면, 민식이 법으로 잘 알려진
2019년 김민식 군의 사고 역시,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아이로 인해 발생한 참극이었다.

아이와 운전자의 시야만 확보되었더라면,
그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록달록 색칠된 6차선 도로에 모글처럼 요철을 잔뜩 깔고,
잠깐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형식적인 30km, 40km 과속 단속 카메라만 설치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모든 차량은 그 카메라 앞에서만 간신히 속도를 줄이느라
괜한 브레이크 라이닝만 태우고 연료만 소모할 뿐이다.

정작 아이들은 그 구역 너머에도 다니고, 살고 있다.

얼마나 1차원적인 대응인가?


그뿐인가, 사회 질서를 가리켜 '시민'으로 성장시켜야 할

아이들에게 실질적 실습과 교육을 가장 먼저 강화했어야 했지만 되려 무질서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너희들은 무적이야'

자전거 타던 아이가 정차 중인 차에 들이박고

스쿨 존이니까 돈을 요구하는 그 부모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장면인가.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을 보며 길을 건넌다.

신호등이 붉게 바뀌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늘도 골목과 도로는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 점령당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눈치 싸움을 벌이며 차를 몰고 다닌다.

새벽 도로를 달리다 보면,
결국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를 마주하게 된다.

좁은 2차선 도로 양옆에 빽빽하게 주차된 차들.
그 사이로 누가 먼저 비켜줄지, 무언의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처럼—
쌍라이트를 켜고 나를 밀어붙이는 저 차의 불빛은,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그대로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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