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길을 나선 얼마 후 세 갈래 길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왼쪽은 황토재를 넘는 길이고, 가운데 길은 무려 1.4km 황치산터널을 지나야 한다. 오른쪽은 4km나 돌아가는 길이다. 황토재 길을 택했다. 작년에 충청북도, 경상북도, 강원도 내륙을 관통하며 경사가 급한 재를 많이 넘었기에 재를 넘는 건 부담이 없었다. 황토재 자락에서 경서대로를 버리고 시멘트로 포장한 마을 길로 내려갔다. 비탈을 따라 밭과 가옥이 산재해 있다. 규모가 작지 않은 방화리 마을이다.
황토재와 경서대로는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다. 관직을 박탈당한 장군이 도원수 권율을 찾아 한양~전주~남원~구례~순천~통영으로 간 길이다. 북천면 사평리에서 백의종군 표지석이 안내한다. 남도에는 곳곳에서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성 정체성>
전라남도 광양을 떠나 섬진강을 건너며 경상남도 하동 땅에 들어섰다. 하동은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로 잘 알려져 있으니 더 이상의 언급은 필요치 않다.
하동 출신 대학병원 성형외과 K교수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연예인 H 씨의 성전환 수술을 집도하였다. 수백 회 성전환 수술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다. 성형외과 하면 보통은 미용을 위한 얼굴 성형을 떠올린다. 미용성형은 일부분일 뿐 본질은 선천성 기형이나 화상 또는 사고로 변형된 신체 외형을 복원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돕는 의술이다. K 교수님은 이 부분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서예, 수묵화는 물론 수필도 쓰신다. 모 수필문예지에 2년 넘게 의료 수필을 연재하며 독자들에게서 큰 반응을 얻었다. 그중에는 성전환 수술에 관한 글도 여럿 있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 사이에 동성애에 관한 설전이 오간다. 모 후보는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엄벌해야 한다”라고 열을 올린다. 어떤 후보는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한 표가 아쉬운 입장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왜 이성애자가 되지 않았을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염색체 이상의 유전적 요인과 그로 인한 성 정체성 혼란 즉 선천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동성애는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여자로 태어나야 할 사람이 남자의 신체를 타고났으면 그가 아닌 그녀는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동물은 오로지 종족보존을 위해서만 짝을 찾지만, 사람에게 사랑이란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이다. 누구도 이것을 막을 권리는 없다. 동성애 금지야말로 하늘의 뜻에 반하는 것 아닐까? 그들에게 누구도 수도승이나 성직자와 같은 생활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특히 기독교계에서 동성애를 강하게 반대한다. 천주교,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창조론을 보자. 조물주는 만물을 창조하였고, 창조 마지막 날에 조물주 즉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쓰여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모든 인간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양인들이 노예에게 그들의 신앙을 주입하면서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인종 차별을 일삼는 모습에서 그들의 이중성을 볼 수 있다. 동성애자 또한 그들의 논리로는 조물주의 창조물이 아닌가.
성 소수자 문제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가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와 인권 보호에 있다. 사회적 약자의 차별금지 법률에 포함된 항목은 성별, 인종, 장애, 외모, 출신지, 국적, 가족 형태, 성적 지향, 성 정체성, 학력, 종교 등 매우 광범위하다. 시력이 나쁘다고 차별을 받지 않는 것처럼 성 소수자도 어떠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차별금지법의 요체이다.
동성애 차별금지 관련 법은 선진국에서 이미 20~30년 전에 입법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금지를 권고하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2007년 법안 발의되었으나 반대 목소리가 커서 폐기되었고 현재까지 표류 중이다.
성 소수자 차별금지는 정파적 논쟁 대상이 아니다. 성 소수자 차별금지 찬성 측과 반대 측에게 만약 자신의 자식이 염색체 이상 성 소수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면? 어려운 문제임은 틀림없다.
K 교수님은 수많은 성 소수자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주었다. 그의 글 「백강이 엄마의 선택」은 모 수필지에서 작품상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