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2

민트색 수유 받침대

by 오얄

아마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쓰던 작은 물건이나 옷가지들,

버려야지 마음먹었다가도

끝내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국 추억 상자의 한켠에 고이 간직해 두는

몇 가지가 있다

시간은 흘러도, 그 안에 담긴 기억만은

쉽게 흘려보낼 수 없으니까..


내가 간직해 온 것들 중 하나는

산후조리원을 나설 때 받았던

민트색 수유 받침대였다(줄임말로 '민수'.,)


그 작은 받침대 민수는 묘하게도 내게

어두컴컴했던 시간들과 함께

아기 작생이의 모든 순간을 떠올리게 해주는

특별한 친구였다


작쟁이가 분유를 먹던 시절

밤 수유는 내 몫이었는데

해가 지면 아이를 씻기고 포근한 잠옷으로

갈아입힌 뒤 한 손엔 젖병과 민수,

다른 한 손엔 작생이를 조심스레 안고서

잠연관을 위해 세팅된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 조용한 걸음마다

사랑과 고단함이 나란히 따라붙던 밤이었다



작은 잠자리 준비는 늘 정성스러웠다

암막 커튼으로 빛을 막은 창,

은은하게 켜 둔 수유등,

조용히 돌아가는 무소음 선풍기,

마지막으로 수유를 위한 간이 의자까지..


내가 아이를 안고 방에 들어서면

문 너머 아내도 조심히 움직이며

소음을 최소화해줬다


말없이 함께 맞춰가던 조용하고 따뜻한

협력의 순간들이었다



은은하게 어둠에 잠긴 방 안,

나는 간이 의자에 앉아

민수 위에 작생이를 조심스레 눕히고

젖병을 물린다


분유는 좀처럼 줄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 문득 고요히 비워지고 있었다

늘 그랬다, 변화는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항상 분유는 다 비워졌다



그렇게 천천히 상체를 흔들며 수유를 하다 보면

어제도 스쳐 보았던 토끼 인형,

가습기, 옷장 위 거북이 장난감,

그리고 작은 실로폰이 아무 생각 없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천장에 붙여 둔 야광 별빛들이

조금씩 심히 해저 갈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얘도 말을 하고

사랑을 하고, 어른이 되어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날이 오겠지?


조용한 밤에 먼 기억 속 따뜻한

한 장면이 되겠구나..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그녀의 깜빡이는 눈동자에 홀리듯 빠져든다

이어지는 건 꼼지락거리는 작은 손가락들

자꾸만 시선이 머문다


안쪽으로 말하진 오동통한 다리,

한없이 작고 동그란 발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사랑스러움이란,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일까?



보드라운 베넷 머리칼에

얼굴을 갖다 대어보기도 했다가

젖병에 분유가 거의 다 사라질 때쯤

머리를 옆으로 돌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털어낸다



이내에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는 민수를 안은 채 거실 소파에 기대어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밤들이 참 많았다

지금도 추억 상자 속 민수를 꺼내 들면

작생이의 포근한 아기 냄새와

그 밤 내내 젖어 있던 나의 땀 냄새가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감축과 온도는 여전히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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