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전해줄 아비투스
10년 전만 해도 택배기사님은 늘 벨을 눌러 직접 물건을 전해주셨었다.
우리 집은 앞집과 서로 마주 보고 있어 늘 기사님은 양쪽 벨을 누르고 물건을 나눠주셨다.
우리 앞집 아주머니는 고생하는 택배 기사님께 밥 먹었냐고 물으며 컵라면을
대접하기도 하고 늘 간식거리와 물을 건네주셨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나는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앞집 아주머니가 들어오라고 해도 마다하고 계단에 앉아 후루룩 컵라면을 드시고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고
가시던 기사님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런 모습을 몇 차례본 뒤 나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이면 택배와 냉장고에 넣어뒀던 차가운 물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기사님을 뵐 일이 많지 않지만 나는 우연히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꼭 인사를 드리고 물 드릴까요 여쭤보고 전해드린다. 기사님의 고맙습니다라는 그 한 마디는 내 자신을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도 물을 가져다 드리라고 부탁했다. 나누는 기쁨을 느껴보길 바랐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나눔들이 내 삶을 더 충만하고 따듯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가 그 집을 유독 따듯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곳에서 받은 마음들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주머니는 내 아이가 어린것을 보고는 간식거리를 가져다주시기도 했고
내가 바쁠 때면 아이를 봐주시기도 했다. 밑에 집 아주머니는 떡집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날이면 아이는 뛰면서 크는 거라며,
자기네는 새벽에 나가고 밤에 늦게 들어오니 낮에 아이가 실컷 뛰어놀게 두라는 말씀을 연신하시곤 했다.
배려해 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해 더 조심하며 키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마운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5년간 살았던 따듯한 집에서
우리는 8년 전에 이사했다. 간식거리와 작은 선물을 사서 경비아저씨와 주변 이웃분들께 전해드렸다.
덕분에 정말 행복하고 따듯하게 잘 살았다고 다음에 이사 올 분도 잘 부탁드린다고 메모를 모두 써서 붙였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하나씩 전해드리도록 부탁했다.
나누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보여줄 수는 있고, 그것은 아이의 성품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피에르 브리디 외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으로 아비투스를 설명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8살쯤 되자 스스로 무언가 선택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이는 자신이 느낀 감정과 느낌을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그런 행동이 좋은 행동을 더
강화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아이의 글을 본 적은 없다. 직접 보여줬을 때 빼고는,
아이의 일기장에 얼마나 많은 우주가 담겨있을까 궁금하지만 아이의 행동을 통해 예상할 수는 있을 것 같다.
14살 때는 상추가 가득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길에 할머니가 너무 추워 보여서 자기가 다 사 왔다며, 그날 우리 가족은 즐겁게 삼겹살 파티를 했다.
16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길에서 채소 파는 할머니를 보면 내 팔을 잡아 끈다. 저거 사가서
맛있는 거 해 먹자고
나는 아이의 이런 성품이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부모에게서 전해받은 아비투스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복이 많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나도 아이도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좋은 아비투스를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붕어빵은 두 봉지를 사는 아이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