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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더 아프게 하는 말

by Ahnyoung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은 시간들이 있다.

병원에서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말은

"네가 뭐가 부족해서"였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뭐가 부족해서 아프냐는 것이었다.

마음의 병은 뭐가 없어서 걸리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깊은 한숨과 함께 던져진 그 말은

아픈 마음 까지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게 했다. 엄마 앞에서 야단을 맞는 아이처럼 나는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자리를 피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말에는 사용되는 언어뿐만 아니라 표정, 분위기, 말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있다.

나를 답답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를 다시 작아지게 했다. 요즘은 자꾸 원인을 찾고 해결방법을 알려주려는 상대방의 태도에 "너 T야?" 하면서 일깨워주기라도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틀리고 타인의 모든 것이 맞다고 생각됐다. 깊은 우울감은 나를 똑바로 볼 수 없게 한다. 차갑고 잔인하게 던져진 그 말은 나를 자책하게 했다. 나는 왜 이럴까 정말 나는 뭐가 부족해서 아픈 걸까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엄마의 말을 듣자 정말 아픈 내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말에는 정말 힘이 있다.

특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에는 아주 큰 힘이 있다. 어딘가에서 더 어렵고 힘든 삶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나의 아픔이 복에 겨운 어린아이 투정인 것처럼, 엄마는 끝까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나를 이해해줘야 할 사람이 때로는 나를 가장 외면한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이가 불안을 호소하거나 두려움을 얘기할 때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안아준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함부로 괜찮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불안한 아이의 감정을 내가 내 기준으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러냐고 질문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유를 묻기보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인정해 주려 노력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고 싶었던, 나에게 필요했던 사랑이다.

가난 때문에 괴로웠던 엄마의 삶은 엄마가 생각하는 삶의 어려움을 가난으로 한정 짓게 한다.

내가 그때의 엄마처럼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참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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