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불안과 슬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얼룩진 시간
반복되는 일상이 길어질수록 움츠러들고, 웅크리게 되는 날들도 늘어갔다.
자신을 돌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제야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느낀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이 서글프고 몸이 힘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나를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나 마음 상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느라 순간순간 느낀 감정들을 전부라 여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랬다.
내 젖을 물고 있는 아기가 예뻤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괜찮은지 알았다.
하지만 우울증이 깊어질수록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볼 수 있는 힘도 잃어갔다.
자꾸만 웅크리고 무릎에 고개를 기댄 채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길어졌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아기가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나는 먹지 못했고
제대로 입지 못했고, 씻지 못했고, 불면증이 심해져 잠도 잘 수 없었다.
더는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고 느낄 때쯤 동네의 병원을 찾았다. 여러 검사를 하고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하지만 크게 차도가 없었다. 살고 싶은 날들보다 죽고 싶은 날들이 더 많아질 때쯤
다른 병원을 찾았고 이후에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진료를 보기 전 예진을 했는데, 나는 나의 증상을 얘기하다가 울음이 터져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나에 대해 얘기하는 나 자신이 낯설고, 슬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린 것은 아니다. 살면서 다루지 못하고 지나간 어려움들이 내 몸이 가장 약하고 마음이 가장 취약할 때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멈춰 서서 나를 돌보게 했고 켜켜이 묵혀둔 내 안의 상처들을 들여다볼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쉽지는 않았다. 턱까지 차오른 숨과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은 여러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밤을 좋아했다.
깊은 밤은 나의 무기력함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정당해지는 시간이었고 약을 먹고 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꿈속에서 다른 세상을 살 수 있었다. 현실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세상을 열망했던 것도, 열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약은 쉽게 끊지 못했다. 아프고 힘들었으나 시간은 여전히 잘도 흘러갔다.
그 사이 아기도 자랐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은 아기에게 그대로 투사됐다.
나의 불안을 아기의 불안으로 느끼고 통제하려고 했다. 아픈 엄마가 아기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심리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내 딸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배우고 알아가는 만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차가운 말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생각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야단치고 나면 뒤돌아서 후회하고, 욱하고 나서 내 머리를 때리는, 하지만 이런 모습조차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러나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