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만나던 날
결코 불행해질 수 없는 이유
출산을 위해 설렁탕 한 그릇을 다 먹고 열심을 냈지만 마음처럼 바로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오후 5시에 입원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8시 57분에야 진짜 엄마가 되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안절부절못했지만 엄마는 조용하고 담대하게 나를 지켰다. 오히려 남편을 안심시키고 달래는 모습에서 진짜 어른은 저런 걸까 싶기도 했다. 진통을 하며 너무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나를 향한 남편의 사랑과 엄마의 마음이 다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힘을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뒤처리를 끝내고 병실로 돌아와 잠에서 깨자마자 내 가슴에 우는 아기가 안겨졌다.
내가 출산한 병원은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병원으로
아기가 너무 배고파한다며 바로 젖을 물리라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데려오셨다. 어리둥절했지만 가르쳐 주시는 대로 아기의 입에 젖을 물렸다. 그 첫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기는 젖을 먹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먹는 건지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물론 제대로 물리지 않아서 나중에 젖꼭지가 다 헐고 딱지가 생겼지만 꿀떡꿀떡 모유를 삼키는 아기가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이 느낌은 아마도 아기를 안고 젖을 먹여본 사람만 알 것 같다.
다음 날, 25살의 어린 내 친구들은 007 작전을 펼치며 몰래 나의 병실에 찾아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철없고 어린 나와 내 친구들은 당연히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주 짧게 내 얼굴만 보고 떠났지만 그 또한 넘치고 과분한 사랑이었다. 잠깐이라도 나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와준 나의 친구들은 이후에도 아기에게 최고의 이모들이 돼주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안 되는 일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정말 몰라서 그랬다!^^;)
혈소판 때문인지 출산 후에도 출혈이 많아 고생했지만 며칠 뒤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던 날, 딸처럼 날 대해주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잘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짧은 한 마디에 많은 감정과 마음이 느껴졌고 감사함에 마음이 벅찼다. 37주 동안 병원을 다니며 마음 졸이고 애쓴 모든 순간을 보상받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사히 아기를 지키고 이렇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를 어찌 갚을까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는 나쁜 이력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용기내고 함께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기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감사한 사람들을 품고 살아가면 결코 불행해질 수 없다.
아기를 만나기까지 힘이 되어준 감사한 사람들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고 그래서 난 불행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나와 아이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