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6살 된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아이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 안에 담긴 슬픔과 기쁨과 행복,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올라오다 갑자기 섬찟해진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느낀 행복이 나만의 것은 아닐까?
어리고 부족한 내가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많을까?
늘 생각에서 멈췄던 그 순간들을 밖으로 꺼내 아이에게 물었다. 나에게는 마주하기 힘든 그래서 아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릴 때 엄마 때문에 슬펐던 적이나 화났던 적 있어?"
당연히 있겠지만
아이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그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라 생각해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나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나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인격적이지 못하게 대했거나 감정적으로 대했거나 그런 것을 상상했는데,
아이는 공포스러웠던 순간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일은 과거임에도 아이의 말에서 그때 느꼈던 아이의 그 공포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왜 내가 말 안 들으면 엄마가 도깨비한테 전화했잖아.
그때 진짜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막 밤에도 도깨비가 올까 봐 생각나고, 계속 도깨비 생각나고 무섭고"
도깨비라니,
아이는 이제 더는 도깨비를 무서워하지 않지만 그때 느낀 정서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겪은 부정적 일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과 정서는 몸과 마음이 계속 기억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는 동안 여러 모양새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가 4살쯤 되었을 때였다.
미친 4살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 마음대로 입히고 먹이고 재우던 시간을 지나자
자기주장이 생긴 아이는 모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다.
나는 그걸 통제하고 싶었고 내 힘으로 안 돼서 도깨비의 힘을 빌렸다.
궁극에는 자기 몫을 해내는 성인으로 잘 자라길 바라면서도
늘 아기처럼 내가 시키는 대로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옳지 않다. 그래서 육아는 기다림이고 인내인가 보다.
내 기준으로 이건 가짜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가 아이에게 공포를 선물했다.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는 그때 그 순간이 정말 너무너무 싫었다고 했다.
살면서도 그렇다.
일을 하고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내가 느꼈던 것은
상대방을 불안하거나 두렵게 만들어서 편한 대로 부리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이렇게 하시면 나중에 문제 돼서 책임지셔야 할 수 있어요." 말에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나의 결정을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때로 내가 맞다고 생각되는 일들조차도, 물론 그래서 휘둘리지 않으려 마음의 힘을 키우려 애쓰지만
아이는 아직 그렇지 못한 너무 작고 여린 존재인데 나는 그런 아이를 좀 더 편하게 키우고자
도깨비의 힘을 빌린 거다.
아이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엄마가 잘 몰라서, 너무 힘들어서 너를 협박한 거라고, 그건 아주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지금 정말로 후회하고 있다고, 그래서 아주 아주 미안하다고
도깨비 전화는 아직도 있다.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여전히 도깨비 전화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때로 그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도 표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