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으로 애매하게 살아보겠습니다.
각자 애매한 재능 1, 2개씩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내 애매한 재능은 글쓰기와 청음이다. 어렸을 때는 가진 재능을 무조건 키워서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청음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다. (청음은 음악을 들으면 멜로디가 계이름으로 들리는 걸 말한다.) 하지만 연주가 빨라지거나 동시에 여러개가 더해지는 음들은 잘 못 듣는 애매한 재능이었다.
그리고 피아노 실력 또한 애매했다. 남들처럼 7살에 시작해서 콩쿠르에서 상 한번 받아본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한 달간 매일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해보라는 엄마의 특명을 단 3일도 이행하지 못한 채 피아니스트의 꿈은 접었다.
그다음 재능은 글쓰기다. 글쓰기라는 재능은 재능이라고 부르기에 상당히 모호하고 또 천차만별인 것 같다. 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깊은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일기를 막힘 없이 쓸 수 있고, 자소서를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며, 교내 대회에서 작은 상을 타는 수준이었다. 참 보잘것없고 애매한 재능이다.
애매한 재능만큼이나 공부도 애매하게 잘했다. 내신은 1등이지만 모의고사나 토익 등 본실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처참한 그런 중학생이어서 도저히 수능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냥 뛰어날 자신이 없는 학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침 집안 형편이 유복하지 않아 빠르게 취업을 해야겠다는 핑계로 상업고등학교에 갔다. 내가 입학했을 때의 합격 내신 평균은 11% 정도였던 것 같다. 다들 공부 나름 잘한다는 학생들이 모인 곳에서 경쟁하다 보니 내가 정말 어디 한 곳 특출 난 데 없이 평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기본 국어, 수학, 영어 등의 과목 외에도 금융, 회계, 무역 등 새롭게 배우는 과목들이 많았는데, 컴퓨터나 회계나 무역 등에 소질이 많이 없어 금융권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전교생 필수 취득 자격증이라는 전산회계 1급도 따지 못한 채 졸업했다. 성인이 된 후에 취득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1월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3-40 곳의 회사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자소서는 잘 쓰지만 취업은 못해서 친구들 자소서 작성을 도와주는 학생으로 1년 동안 자리 잡아 있었다. 그쯤 되니 내가 진짜 글을 잘 쓰는 게 맞나라는 회의감까지 몰려왔다.
19살 11월까지 취업을 못한 학생이 전교에 많지 않아서 20명 정도가 한 반에 모여 다 같이 불안에 떨었다. 졸업식 전까지 취업을 못하는 건 그때 우리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았고, 매일매일 친구의 취업 합격 소식을 들으면서 졸업식까지 버텨야 하는 생존게임 같았다. 그렇게 19살을 마치고 졸업을 하고 나서야 20살 2월 뒤늦게 작은 증권사에 취업했다.
재능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취업도 못하는 자존감이 바닥이 된 20살에게 첫 회사는 너무 소중했다. 회사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전부였고, 나에게는 이 길만이 허락된 길이라 믿으며 악착같이 6년을 일했다. 그리고 그 사이 대학을 나오기 위해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퇴근 후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더 잘 나가기 위해서 선택한 길인데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그 시간만 되면 몸이 배배 꼬이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 젊은 나날을 이렇게 낭비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렇게 3년을 버티다 학사경고를 받게 됐다. 솔직히 학교의 학사경고를 받았다는 점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그 학사경고가 내 인생에 경고가 내려진 것 같았다. 이제 포기할 때가 됐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장면이 추성훈 선수와 아오키 신야 선수의 경기다. 승률이 4%라고 모두가 말리던 경기를 추성훈 선수는 48세의 나이에 어려운 길로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좌우명 삼아 경기에 나갔고 승리했다. 어려운 길을 갔기 때문에 그런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거다.
고심한 끝에 남들 다 가는 길 말고 나도 나만의 길을 가보기로 했다. 애써 외면한 내 작고 애매한 재능에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나는 아직 어리니까. 내 청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도전했다. 그래서 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에 편입했고 지금은 27살, 회사 8년 차, 문예창작과 3학년이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이직하기 힘든 이탈자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만이 재능을 영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애매한 재능을 갈고닦으면서 애매하게 살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