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출근이 싫었다. 잠깐 이직을 고민하면서 회사에 정이 털려버렸기 때문이다. 싫지만 별수 있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다짐해도 싫은 기분에 잠식되어 가는 건 막을 수 없다. 조금 축 쳐진 채로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출근길에 보통 2가지 일을 한다. 먼저 매일의 말씀을 묵상하고 남은 시간 동안 챙겨 온 책을 읽는다.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은 내겐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매일의 운세를 뽑듯이 말씀을 묵상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이렇게 힘든 시기에는 매일의 말씀에 의지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은 이사야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이다.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신다는 말씀은 도대체 얼마나 큰 평안함일까? 주님께 간구하고 믿음으로 심지를 견고하게 하는 자만이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내게 다가왔다.
믿음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믿음은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믿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믿는다 하더라도 그 사이로 침투하는 수많은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주님께서 평안케 하실 것이라 믿고 또 수시로 믿기 위해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전날 설교시간의 말씀 구절이 떠올랐다. 마태복음 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그렇다. 믿지 않는데 어떻게 평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모든 문제의 열쇠는 믿는 것이다. 나는 내가 평안할 것이라 믿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는 나는 평안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가진 채로 걱정을 내려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날 동생과 엄마가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서 아침에 챙겨 출근했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전향해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이야기였다. 그중에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진심을 다해 물었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과 습관이 바뀌었다.
이연, 매일을 헤엄치는 법
이 간단한 문장이 내게 주는 힘은 커다랬다.
사실 고민은 내가 싫어하는 일에 얽매어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으로 일을 하고, 그나마 나은 방법일까 싶은 이직을 고민한다. 퇴근만 하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넷플릭스를 의무적으로 들여다보는 이유도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시간이 필요해서라고 생각한다. 싫어하는 일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소비한 거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인 글쓰기 만을 할 수는 없다.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가기엔 나는 너무 나약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싫어하는 일에 뺏기는 에너지를 아껴서 좋아하는 일에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 걱정 근심으로 에너지를 까먹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하던지 평안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들은 소식은 최근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신규 상품 도입과 관련한 개발이 많이 미뤄져서 올해 말에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불과 오전 6시 30분부터 오전 9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감사가 샘솟아 올랐다. 잘 선택했다 위로받는 것 같았다.
행복해질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을 수 있게 된 그날부터
내 마음속에 행복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된 그날부터
나는 나의 행복을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오늘 아침 모든 것을 사랑한다.
백지화. 나는 과거를 일소해 버렸다.
앙드레지드, 지상의 양식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행복해질 필요 없이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싫어하는 일도 일부 병행하는 것이다. 또한 병행하기 위해 최소한 싫어하는 일과 관련된 걱정으로 에너지를 잡아먹지는 않아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2월 10일 탁상위 말씀 달력을 펼쳤다. 시편 118:24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