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내 행복을 찾을 때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사귀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렵다.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항상 눈치를 보고 친구가 좋아할 것 같은 언행을 골라서 했다. (예를 들면 입에 발린 칭찬이다.) 친구가 나를 좋아해야 이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다 내가 먼저 지쳐서 등을 돌릴 때도 있었고, 나의 행동에서 진심을 느끼지 못했던 친구들이 나를 불편해해서 피한 적도 있다.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모여서 놀 때는 즐겁게 어울리지만 단 둘이 되었을 때 항상 심각한 부담감을 느꼈다. 재밌어야 할 것 같고 말이 끊기면 안 될 것 같고 나와 있는 시간이 즐거워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다. 친구가 즐거워야 내가 즐겁다니. 그래서 나는 이렇다 할 친구가 없고 지인들과만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분리할 줄 알라.
따라서 자기 기질에 따라 자유롭게 살며
선택한 것에 열중하되,
자신의 좋은 취향을 거스르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친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했고 남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내가 잘하고 있구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 상사들에게 집착을 많이 했다. 최대한 솔선수범하고 시킨 것 이상을 해내려는 태도로 임했다. 상사의 칭찬과 인정만이 내 회사생활의 지표였다.
하지만 얼마 전에 팀장님도 그랬듯이 상사는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해득실관계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1화 프롤로그 술자리 인사 참조) 이전 팀에서도 본부장님과 팀장님께서 꼭 승진을 시켜주시겠다고 호언장담하셨었는데, 손실이 크게 나서 본부 전체가 사라지자마자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나가셨다. 본부나 팀에 소속되지 못한 채 혼자 남겨졌기에 내 승진은 1년 늦춰졌다. 남의 인정을 바라며 산다는 것은 남에게 내 자신의 인생을 맡긴다는 것이고 그 최후는 이렇다. 그 자명한 사실을 직접 경험해야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오, 나의 정신이여,
너는 네 자신을 학대하고 또 학대하고 있구나.
그것은 네 자신을 존귀하게 할 기회를
스스로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나는 다른 사람이 보게 될 내 모습에도 집착했다. 잘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속에 살았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내용의 업무 문의가 올 때나 새로운 업무가 주어질 때 잘 해내지 못할까 봐 미리 스트레스를 받았다. 점점 예민하고 공격적인 사람이 됐다. 그냥 내가 모르고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텐데 인정하지 못했다. 남들이 나를 잘 모르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두려웠다.
오늘도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업무 요청이 왔었는데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공격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차근차근 처리하다 보니 결국 완수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을 하나 깨달은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부족함을 받아들이면 남의 평가에 목매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이미 나의 부족함을 알고 있는데 남이 이렇다 평가하는 것이 어떻단 말인가.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그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써 무엇하리!
내 뒤를 따르라!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바람이 불어 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여라!
사람이란 생각에 생각을 겹쳐 놓다 보면
원래의 목표를 잃게 마련이니,
힘이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신곡, 단테알리기에리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지는 마.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나는 친구들을 웃길 수 없는 재미없는 인간이고,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상사들의 입맛대로 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생각보다 유능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함을 인정하니 나를 그동안 옥죄어 왔던 속박과 굴레, 부담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잘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대로 평범하게 살아보는 거다.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많을수록
더 큰 속박을 당하게 된다.
크게 바랄수록
자유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인정을 바라지 않으려 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나 자신의 템포대로 살아보려 한다. 나의 모습으로만 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덧붙여 좋아하던 향수도 뿌리지 않게 됐다. 향수만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치품이 없다고 생각한다. 향수는 나에게는 향기가 느껴지지 않고 남에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이 비싸다. (물론 향수를 좋아하시는 분은 존중한다.) 항상 내 향기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더더욱 의식적으로 뿌리고 다녔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나 스스로의 내면의 향기를 내가 맡으면 되는 거니까. 그걸로 향기는 충분하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언행심사를 바르게 하고
의롭게 하는데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여유가 넘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검은 마음을
곁눈질로 훔쳐보는 일을 그만두고,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선한 자가 해야 할 일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