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어떠한 형태로든 갑작스레 인생을 덮치곤 한다. 갑작스레 다가온 다는 것이 불행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가장 무서운 점이다. 이번 내 불행은 4년째 지속되는 연봉 동결과 성과급 미지급이다.
일단 물가는 점점 오르는데 연봉은 동결이라 실제 소득이 줄어든 것이기 때문에 소비를 줄이는 등의 금전적인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하는 일은 더 많아지는데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니 열심히 일할 이유가 사라졌다. 뒤이어 종합적으로 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고 또 그럼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에 대한 부차적인 고민이 생겼다. 덩달아 이 업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걱정까지.
이러한 고민들은 밤낮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머릿속을 떠다니다가 어느새 내 머릿속을 점령해 버렸고 심지어 기분과 행동까지 영향을 미치곤 했다. 이렇게 갑자기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하고 또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까?
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약간을 닮을 필요가 있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첫째로 융통성이 없고 갑작스러우며 비현실적인 이 불행의 추상적인 성격을 조금 닮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융통성 없이 바로 내 현실로써 불행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단 다가와버린 불행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회피하려고 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고민 속에서 나는 지쳐갔다. 우리 회사는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성과급을 주지 않는다는 소문을 회피하면서 스스로의 희망고문과 걱정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불행을 일단 겪으며 내 현실 속 책무에 충실해야 한다.
회사를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를지언정 일단은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이 상황 속에서 겸허히 일해 나가는 것에 습관을 붙여야 한다. 매일을 충실히 살아나가는 것이다. 금전적으로 어렵다면 그에 맞춰 소비를 줄이면 된다. 그렇다면 내게 지금 이 불행이 어떠한 위해도 가할 일이 없다.
이처럼 큰 범위의 불행이 아닐 때도 대응법은 동일하다. 내가 하기 싫었던 또는 곤란한 일을 해야 할 때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단 받아들이고 하다 보면 생각만큼 불행이 아니었을 때도 있고 어떻게든 일이 해결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매일의 노동을 습관으로 만들어 불행을 이겨나갈 하나의 확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란 일단 습관을 붙이고 나면
그날그날을 힘들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법이다.
저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무의미한 실오라기와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멎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자기의 재력에 맞추어서
분수껏 지출을 하면 되는 것이므로
자신의 물질생활은 충분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습관을 통해서 깨달았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그리고 이러한 불행에 맞서는 두 번째 방법은 나 자신이 불행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로운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믿을 구석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내가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없을 때였다.
당장 회사를 그만 두면 살아갈 돈이 없거나, 경력이 부족해 이직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나는 두 가지 이유 외에도 내가 마음 편히 적응해서 틈틈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의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도 있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회사를 자유롭게 그만두고 싶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믿을 구석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먼저 그만두어도 6개월은 아무런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를 따로 모아야겠다 생각했다. 두 번째로는 이직이 가능할 만큼의 경력이 될 때까지는 겸허히 불행을 받아들인 채 많이 배우고 일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그 기한을 지금 팀의 경력 5년이라고 정해 놓았다.
그럴 때면 그는 말을 탄 여인 생각도 잊어버리고,
오직 필요한 일만 해내려고
고지식하게 애쓰는 것이었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그리고 최대한 훨씬 괜찮은 회사가 아니면 이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더욱더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했다. 업무가 끝나면 단 1분의 사사로운 눈치도 보지 않고 빠르게 퇴근하기, 점심시간은 확실히 사수하기, 빈번한 번개 회식자리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바쁜 시간대에는 확실히 업무에 집중하고 여유로운 시간대에는 글쓰기에 집중하기 등이다. (여유로운 시간대에는 각자 알아서 핸드폰을 하는 등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시니 나도 눈치를 보지 말아야겠다.)
참으로 회사 모든 사람들이 한탄 중인 불행이지만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지금 남들이 행복하다고 인정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라 단순히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거니까.
불행이 닥쳐오면 대응하고, 돈이 부족하면 소비를 줄이면 된다. 아 만사가 이리도 단순하다!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아! 만사가 이렇게 단순하면 좋으련만!
페스트,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