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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의 마지막 비밀을 간직해야 해

나의 마지막 비밀은 글을 쓰는 것이고, 이 자체가 내겐 행복이라는 동사다

by 민형 Ma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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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떨 때 행복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2-3일 내내 쉬지 않고 애니나 드라마를 몰아 볼 정도로 TV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도파민 가득한 넷플릭스 속에 허우적 댈 때면 잠시 잠깐은 즐거웠지만 내가 계속 시간을 이렇게 낭비해도 될까 라는 불안함이 들었다. 죄책감에 마음 한구석이 계속 편치 않았고 휴식 등을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밀려오는 공허함에 힘들었다.


   블로그도 한창 열심히 했다.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즐거웠고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사진에서 오는 한계는 비슷하면 티가 난다는 것이라서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매일 옷을 사게 됐다. 그리고 매번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여행지를 떠나와서도 인생샷이 나와야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만든 블로그인데 삶이 블로그 위주로 돌아갔고 큰 짐을 짊어진 기분이었다. 충격을 받아 블로그를 삭제했다.




   또 한동안 회사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정말 즐거웠었다. 신나서 주중 저녁 약속을 잡았고 주말에는 여행 계획을 잡았다. 서로의 생일을 업무 기한보다 중요하게 챙기곤 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친구들은 회사라는 소속이 사라지면 바로 멀어지는 시한부 친구들이다.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울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족이 되어야 더 돈독해졌다.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그때그때 친한 친구들이 달라지는 것을 체감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한시적인 즐거움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냐고 물었을 때의 답은 'NO'였다. (물론 정말 인간적으로 잘 맞아서 오래 친구가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술 마시고 노는 게 즐거워서 모였던 사람들이라면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때마다 멀어졌다.)


   그동안 회사 일에 집중한다는 핑계를 무기 삼아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휴식과 즐거움을 위해 허비했는지 돌아보면 많이 부끄럽다. 회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중 저녁과 주말은 쉬거나 놀면서 보내야 하고,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그러한 모든 시간 속에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내 진정한 행복을 물은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나를 바라보지 않았기에 더더욱 남들이 즐거워하는 방향대로 따라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매료되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울림이 오는 문장들을 작은 노트에 옮겨 적을 때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내가 어떠한 문장에 울림을 느끼는지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정해졌다.


   남모르게 핀 꽃, 소복이 쌓인 눈, 아침 태양이 비추이는 건물, 파릇하게 피어난 잎사귀, 도란도란 거리는 물방울 무늬의 햇살 등의 모습이 길을 걸어가다가도 가끔씩 멈추어 감탄하게 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운명적으로 깨달았다.




   나의 마지막 비밀을 간직하기 위해 그동안 낑낑대며 짊어온 소유들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마자 나를 나로 살지 않게 하는 SNS를 삭제했다. 그리고 퇴근하자마자 넷플릭스에 빠지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긴 출퇴근 시간 동안 책을 펼쳤다. 책을 읽어야지만 내 안에 숨어있는 단어들이 구체화되어 바깥세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가슴속에 들끓던 말들을 매일 글로 정리해 보았다. 매일 30분씩이라도 글을 쓰는 연습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나의 마지막 소유이자 비밀은 글을 쓰는 것이고, 이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라는 동사다. 나의 마지막 비밀을 간직해보려한다. 그리고 소중히 지니고 가보려 한다.






그때 사그라져가는 불등걸 같은 가슴에 껴안아보는
'행복'이란 말속에는 청춘이 벗어놓고 외출한 옷이 걸려 있을 뿐,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을
이미 이해하지 못할 때는 너무 늦었다.
 
행복의 충격, 김화영

그렇다. 우리들이 모든 소유로부터
참으로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지막 소유,
즉 우리의 마지막 비밀은 간직되지 못한다.

행복의 충격,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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