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쿠찌에 가서 라떼를 한 잔 시켰다. 그리곤 컵의 모양에 감동받았다. 파스쿠찌 컵은 아래에서 위로 점점 넓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커피를 마시기에 편했다. 일반 컵은 일자 또는 원만한 모양의 컵을 기울여 먹어야 하기 때문에 벌컥하고 음료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 컵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급격하게 넓어지는 모습이라 주둥이가 넓어 살짝만 기울인 채 홀짝 마시는 것이 가능했다. 또 컵은 무겁지 않았으며 가볍지도 않아서 제자리에서 커피를 안전히 담고 있는 기능과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손잡이가 너무나 경탄스러웠다. 손잡이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평평한 지지대를 만들어 손가락이 굴곡을 따라 꺾이지 않게 하고 지지대에 손가락을 편하게 걸칠 수 있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힘을 조금만 주어도 쉽게 컵을 들 수 있었다.
이런 디테일은 보통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본질적인 요소이다. 정제된 디자인과 절제된 기능. 퇴계가 떠올랐다.
정제하다 : 정돈되어 가지런하다, 격에 맞아 매무새가 바르다
절제하다 :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삼가다.
퇴계는 자리에 앉을 때 벽에 기대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았고, 날마다 소학의 글대로 살았다.
수저 부딪는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반찬은 끼니마다 세 가지를 넘기지 않았고
다만 가지와 무와 미역만으로 찬을 삼을 때도 있었다. 언제나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갓을 쓰고
서재로 나가 정좌하였고, 제자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할 때는 마치 귀한 손님을 대하듯 했다.
그 가르침은 자상하고 다정하였으나 제자들은 감히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진실로 예와 의가 아니면 남으로부터 조그마한 물건도 받지 않았으며,
예로써 받은 물건이라 할지라도 이웃이나 친척이나 또는 배우러 오는 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한 점도 집에 쌓아두지 않았다. 제자들을 '너'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제자가 자리에 앉으면
반드시 그 부모의 안부부터 물었다.
(김훈, 자전거여행 2)
파스쿠찌의 컵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퇴계와 같이 살고 싶다. 정제되고 절제된 삶을 살기 위해서 매일 같이 수양하는 듯 살아야겠다.
퇴계는 자리에 앉을 때 벽에 기대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았다.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지 않고서는 집중을 할 수가 없고 다리를 왼쪽으로 꼬았다 오른쪽으로 꼬았다 참으로 정신 사납다. 하지만 정말로 집중했을 때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한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정제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의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데에도 집중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정제되어가지 않을까?
그리고 절제해야 한다. 절제는 어떠한 정도에 넘지 않는 것이다. 정도에 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음식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식욕을 다스려야 한다. 부지런히 살기 위해서는 나의 게으름을 버려야 한다. 남을 돕기 위해서는 나의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가진 것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나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가차 없이 버려보려 한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는 이런 재밌는 표현이 있다. 걱정과 근심을 똥과 오줌 누듯 가차 없이 버리라는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욕심을 배설물로 여겨보려 한다.
시냇가에 비로소 살 곳을 마련하니
흐르는 물가에서 날로 새롭게 반성함이 있으리
(김훈, 자전거여행 2)
퇴계가 지은 시다. 흐르는 시냇물처럼 날로 새롭게 반성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나도 마침 집 앞에 냇가가 있다. 그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며 나의 욕심은 깨끗이 씻기어 흘려보내고 그 자리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것만을 집중하는 정제된 모습의 사람이 되겠다고 항상 다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