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별자의 삶의 무게를
내가 짊어지고 가는 밥과
내가 뱉어내는 똥의 무게로 판단한다.
매일 같이 채우고 비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점점 더 채우는 양은 줄어들고
비워내는 양은 많아지겠지.
언젠가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을 비워낼 날이 왔을 때
잘 살았다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요즘 도시락을 싸서 들고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아침과 점심, 간식을 싸 오는데 아침은 보통 요거트에 바나나와 블루베리를 담고, 점심은 밥과 반찬 2-3가지를 챙긴다. 반찬은 주로 치킨너겟과 엄마가 싸준 멸치볶음이나 우엉조림 같은 걸 챙긴다. 간식은 바나나나 찐 단호박이다. 이렇게 챙기다 보니 아침에 들고 나오는 도시락통의 무게가 상당히 무겁다. 내가 하루 종일 먹는 음식의 무게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아침을 먹고 오전을 살고 점심을 먹고 오후를 살고 간식을 먹으며 남은 오후를 버틴다.
먹고사는 일의 무거움을 느끼며 최근에 읽은 책 '칼의 노래'가 떠올랐다. 가난한 나라의 전시상황에서 장졸들을 먹이고 살려야 하는 이순신의 부담감은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매일매일 80되의 쌀이 줄어들었던 그 박진감과 속도감을 김훈 작가는 속수무책으로 밀려오는 밀물에 표현했다. 밀려오는 밀물 앞에서 이순신 장군은 인간의 보잘것없고 무력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새삼 내가 매일매일의 밀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묵직한 밥을 하루하루 장만하여 먹는 일에 걱정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매일을 먹고산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벅차오르게 기뻤다.
이렇게 매일을 채웠다면 채운만큼 비워내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인다. 밥을 먹은 만큼 비워내야 하고, 외부로부터 받은 걱정과 근심, 상념도 배설하듯 비워내야 한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라는 존재에 부가적으로 얻어진 것들을 비워내야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 비워내기 위해서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의식하고 돌아와야 잘 비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쁜 일에 잠식되어 버리려는 찰나에 나 자신을 의식하고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루가 불행해지려는 순간에 지금 이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을 의식하고 되돌아오는 것이다. 절제 없이 더 많이 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나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이 계속해서 있다면 나는 잘 살아갈 수 있다.
먹고 산다는 일은 비우는 것도 수반되는 일이고, 나 자신을 비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의식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