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북쪽의 역
일본 최북단의 도시 왓카나이를 처음으로 여행한 것은 한 여름이었다. 첫 번째 여름 여행에서는 삿포로에서 지금은 폐지된 야간열차 리시리를 타고 왓카나이까지 밤새 달려가 다음날 새벽에 열차에서 내려, 리시리와 레분섬을 여행했고 그 다음 해 여름에는 왓카나이 시가지, 일본 최북단 소야미사키 그리고 노샷푸미사키를 돌아보았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 일본 최북단역 왓카나이역은 소야본선( 宗谷本線, 일본어 소야혼센 )의 종착역으로 소야 본선은 JR아사히카와역에서 시작되어 JR왓카나이역까지 총길이 259.4KM, 노선에 있는 역수는 화물역 1개를 포함하여 총 54개의 역이 있다.
노선도를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 나무위키
이 소야 본선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당시 일본령이었던 사할린 섬 남부와의 연락철도를 목적으로 건설된 노선으로 지방교통선으로는 가장 긴 노선이다. 1898년 아사히카와- 나가야마 구간이 개통된 것을 시작으로 1922년에 왓카나이역(현재의 미나미왓카나이역)까지 개통했다. 태평양 전쟁 전에는 사할린을 가려면 왓카나이역까지는 철도로 간 뒤, 왓카나이항에서 사할린의 오오도마리大泊(현재는 러시아 코르샤코프항)까지는 연락선을 타고 갔다.
이 노선에는 지금은 폐선이 되어 사라진 몇 개의 지선이 있었는데 오토이넷푸와 왓카나이역까지 오호츠크해안쪽으로 우회하는 덴포쿠선이 있었으며 1922년부터 26년까지는 호로노베역을 경유하는 데시오선이 건설되었다. 하지만 데시오선은 1930년에 소야본선에 편입되었고 덴포쿠선도 1989년에 폐선이 되어 현재는 홋카이도 중앙부에서 북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철도 노선이 되었다. 사할린과의 연결을 위해 건설된 철도노선이었지만 연선을 따라 흐르는 데시오강에서 배로 운송하는 방법 대신 여러 지역으로 연결되는 각 지선과 함께 홋카이도 북부 지방에서 생산된 목재 나 석탄 등의 광물, 수산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화물 운송 노선이었다.
하지만 이 노선을 관할하고 있는 JR홋카이도의 지속된 적자 때문에 결국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현재도 JR홋카이도와 관련 지자체들이 협의를 계속하고 있는데, 아사히카와- 나요로 구간은 고속화 공사를 끝내서 당분간은 유지하는 구간으로 정리되는 것 같으나, 나요로- 왓카나이 구간은 향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
*덴포쿠선
덴포쿠선은 소야본선의 원래 노선이었다. 왼쪽으로 단축된 노선이 현재의 소야 본선이다. 1914년 11월 7일에 개통된, 소야본선 상의 오토이넷푸역에서 분기하여 다시 소야본선의 미나미왓카나이역까지 이어지던 일본 JR홋카이도의 노선으로 처음에는 소야 본선의 일부였으나, 거리가 짧은 테시오선(天塩線)이 완성된 후 별도의 노선으로 분리되었다. 노선의 유래는 테시오 국과 키타미 국을 잇는다는 의미이다.
일본국유철도시대 말기에 특정지방교통선에 선정되었고, 이후 JR 홋카이도로 이관은 되었으나 이관 2년 후인 1989년 5월 1일에 폐선되었다. 폐선에 이른 특정지방교통선 중에서는 유일무이하게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하는 열차가 다녔는데, 이는 급행 텐포쿠(天北)였다. 삿포로에서 왓카나이까지 이 노선을 경유하던 급행열차였으며 이 노선이 폐지될 때에도 잘 살아서 다녔으나, 노선 폐지 이후 소야본선 전 구간 경유로 바뀌고 특급 소야로 편입되어 지금에 이른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처음 소야 본선이 개통되었던 1922년에는 종점역이 지금의 미나미 왓카나이역이었다. 이듬해인 1923년 5월 1일에 당시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사할린으로 연락선 항로가 개설되자 왓카나이항구에 대합실이 1924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 왓카나이역(미나미 왓카나이역)은 항구에서 남쪽으로 2km쯤 떨어져 있어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사할린으로 가는 연락선을 타기 위해서는 항구까지 걸어가야 했다. 이후 왓카나이역에서 내려 항구까지 걸어가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철로를 더 연장하여 왓카나이 항역이 1928년 12월 26일에 개설되었고 1938년 6월 30일에 목조 단층의 역사가 세워졌다. 그 한해 전인 1937년에는 철도연장공사를 해서 왓카나이 부두역이 1938년 10월 1일부터 사용되었다.
1945년 이전에 촬영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진, 이 사진을 보면 왓카나이 항 부근의 북방파제 앞에 사할린으로 가는 연락선이 정박해 있다. 저 연락선이 정박해 있는 부분은 이제는 매립되어 있다. 당시 연락선으로 환승하던 임시역은 저 배 앞쪽에 있었다.
현재 방파제 앞부분은 매립되어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1939년 2월 1일에 기존의 왓카나이역은 미나미 왓카나이역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왓카나이항역이 왓카나이역이 되었다. 왓카나이 부두역은 1945년 8월 24일에 사할린에서 피난민을 싣고 돌아온 배가 마지막으로 항로가 폐지되어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이제 왓카나이역에 대해서 살펴보자. 왓카나이역의 변천사이다.
이 사진이 처음 건설되었던 왓카나이역이다. 당시에는 왓카나이항역이었다. 왓카나이라는 역명은 아이누어로 차가워진 물의 늪이라는 야무- 왓카- 나이에서 유래되었다.
두 번째 왓카나이역사이다. 1965년 9월에 개축한 건물인데 이 건물은 2011년 4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초창기 왓카나이 여행때 이 역에서 내리곤 했다. 역을 등지고 오른편에 늦은 밤까지 영업하는 라멘가게가 있었다. 야간열차를 타기 전 그 가게에서 먹는 라멘은 정말 최고였다.
역구내에 있었던 JR일본 최북단의 역 표지판이다. 참고로 JR 최서단역은 나가사키현의 사세보역, JR최동단역은 홋카이도 히가시 네무로역, JR 최남단역은 규슈의 가고시마현에 있는 니시오야마역이다.
이 사진이 2012년 4월에 전면 개통된 3번째 왓카나이역이다. 이 역 안에는 도로휴게소, 철도역, 버스터미널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앞서의 최북단임을 표시하는 표지는 구 왓카나이역 북쪽에 있었지만 현재는 이렇게 남쪽으로 옮겨져 있다. 이 지점이 예전 왓카나이항역 시대 최북단지점이었고 역사를 개축한 이후 원래의 자리로 복원한 것이다.
2007년 촬영한 사진, 하코다테역에서 703.3km라고 쓰여 있다.
구 왓카나이역에 있었던 최북단의 노선이라는 표지판
구 역사 철거와 더불어 이 표지판도 철거되었다가 다시 새롭게 설치되어 있다. 새 역사에는 영화관도 있다.
사실 왓카나이의 중심지는 왓카나이역부근이 아니라, 미나미 왓카나이역 일대이다. 그래서 사할린으로 혹은 리시리나 레분섬으로 가는 페리가 떠나는 시간이나 특급열차의 출도착 시간 외에는 왓카나이역 부근은 한산하다. 이 때문에 왓카나이역 부근을 재개발할 계획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2005년 첫 번째 일본 철도 여행을 시작한 이후, 최북단, 최동단, 최서단, 최남단의 역을 모두 찾아갔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철도여행이 인생과 별다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삶이 영원할 수 없고 언제간은 끝이 있게 마련인데, 철도 여행도 결국은 종착역에서 내려야 한다. 철도 여행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국토 내에 수많은 철도 노선들이 이어지는데, 마지막역까지 가본 그 경험은 뭐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