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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못한 편지, 그럼에도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by 늘 담담하게

오늘 새벽, 꿈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꿈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10대 소년도 아니고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우습기만 한 일이지만 너무도 생생한 모습의 당신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래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날의 모습, 너무도 선명해서 꿈에서 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끔씩 당신을 떠올리면 항상 안타까운 후회뿐이었고, 시간이 흐른 만큼 새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처지에서 꿈이었지만 처음으로 당신을 다시 만난 것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물론 꿈이란 것은 꿈일 뿐, 깨고 나면 차가운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였기에, 그 허망함에 오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잘 지내고 있나요? 뒤늦게 다시 안부를 묻습니다. 이런 안부를 묻는 것조차 허망한 일이지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몇 번을 만났던가요? 아마 한 손에 꼽을 만큼일 텐데, 그 몇 번 안 되는 만남에서도 당신 앞에 서면 항상 횡설 수설,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리 허둥대기만 했을까? 왜 자신 넘치게 하지 못했을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이상스럽게 당황하는 내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인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를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듯합니다. 머뭇거리기만 하고, 그리고 연락도 다시 하지 않은.. 결국은 내 어리석음 때문이지요.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일 뿐,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고 이해될 리가 없는 것이죠. 나 또한 처음에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며 당신의 기억을 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러 많은 날들이 지나갔음에도 당신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수시로 떠올라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고, 고백해 본 적도 없는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말해도 달리 할 말이 없는, 그저 살아가다가 한 두 번 마주친 그런 사람일 뿐일 텐데, 왜 그렇게 몇 십 년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처럼 잊히지 않는 것인지...


맥주 몇 잔에 취해 예전에 이런 사람이 있었노라고 말한들, 그것은 공허한 이야기할 뿐인데..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신과 만난 그 몇 번이 참 좋았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내가 다 좋아했던 것들이고, 당신의 여행과 취미조차도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났더라면 그것이 꼭 결혼이라는 최종 형태가 아니라고 해도, 나름의 행복했을 텐데...


물론 이런 생각조차 다 일방적인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꼭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넋두리처럼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어이없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도 알지만.. 이 아름다운 계절, 안타깝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보내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이렇게 써두려 합니다.


당신과 만났던, 신촌에서, 헤어지던 날, 지하철을 타러 돌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의 창고에 남아 있고, 어찌 되었건 한때 아주 짧은 몇 번의 만남에, 좋아했던 그 감정은 바래졌다고 해도, 소중한 것이었음을...


이렇게 좋은 날이면 당신과 고궁을 함께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워지지 않은 당신의 기억을 곱게 소중하게 계속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삿포로와 교토, 그곳에서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이곳을 참 좋아했노라고, 쓸쓸하게 말하게 될 날이 올 테지요.


다시 한번 당신을 안부를 묻습니다. 대답이 있을 리 없을 테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5년 늦가을, 북쪽에 사는 당신에게 남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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