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네오, 그의 트리니티
결혼을 하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그의 생일날.
결혼 전에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었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알뜰하게 생일을 보내자는 아내의 의견을 좇아 퇴근 후 아내와 함께 백화점 지하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사가지고 들어와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물론 작은 생일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가벼운 술 한잔과 함께 거실에서 불을 끄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어 놓고 그는 아내를 안고 춤을 추었습니다. 춤이라고 하지만 그냥 천천히 음악에 몸을 맡기며 움직이는 정도였습니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요? 아내는 기분이 좋은지 나직이 시디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음악을 따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속삭였습니다.
"나도... 신데렐라의 꿈같은 게 있었어.."
"신데렐라..?"
"응....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는 거...."
"세상에 당신이 그런 생각을 했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난 좀 다른 거였어...."
"다르다니.."
"매트릭스 영화 알지?"
"알지... 그게 왜?"
"음... 매트릭스에서 여주인공이 트리니티잖아..."
"그렇지.."
"예언자였던 오라클이.... 트리니티에게 말했었어.... 아니 예언을 한 거지... 트리니티가 사랑하게 될 사람이 바로 그라는 것을..."
"그랬던가... 아....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기다렸던 그가... 바로 네오였지 않아?"
"맞아... 네오였어... 후후.. 우리 남편은 역시 기억력이 좋아... 그래서 말인데.... 난 말이야.... 왕자를 기다린 게 아니라... 네오를 기다렸어. 대학 1학년때... 학교 앞 점집에서 점을 봤는데... 할머니 점쟁이가 내 인생의 귀중한 인연은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거든... 한 칠 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그게 이상하게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
"귀중한 인연이라... 그게 무슨 의미야?"
"무슨 의미긴... 내 평생을 맡길... 남편을 말하는 거지..."
"칠 년이라... 그러니까... 스물일곱 살 때.... 인연을 만난다는 거였어?"
"그렇다고 봐야지... 우리가 처음 만난 게.. 그때였지 아마...."
"세상에.... 그런 일이... 그러면... 그 할머니가 오라클이네..."
"하하... 맞아.... 그 할머니가 오라클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평소의 아내는 낯간지러운 이야기 같은 것은 잘하지 않은 타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의 네오 인 셈이네.."
"맞아... 당신이.. 내 삶을 구원해 줄 네오였어..."
네오... 매력적인 배우.. 키에누 리브스가 열연을 했던 매트릭스의 네오... 트리니티가 기다렸던.....
"흠..... 트리니티가 네오를 간절히 기다린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 네오를 구한 것은 트리니티였잖아... 그렇다면...
나를 구한 것은 당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오호...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럼... 네오는 마지막 편에서... 트리니티와의 사랑을 선택하잖아.... 내가 만일 네오라면... 역시 트리니티를 선택하게 될 거야..."
"역시...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서방님이야..."
"하하.... 지극히 사랑하는 것은 또 뭐야.."
그 순간... 우습게도 그와 그녀는 네오와 트리니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나치고 잊어버렸을...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이 평생 사랑하게 될 사람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믿은 아내. 그냥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문득 아내에게 그 말을 해준... 그 할머니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 일 학년의 그녀를 보면서... 몇 년 뒤... 만나게 될 남자가... 평생의 연인이라는 것을... 말해준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혹시 그 할머니는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운명을 이야기해 주었던 오라클이었을까요?
뭐... 그 할머니가 오라클이건 아니 건간에... 그녀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 되었고..... 이제 그녀는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어 이렇게 그의 품에 안겨 있으니.
그 순간... 그 할머니의 말을 믿고.... 그를 기다려준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귀에 입을 대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나의 트리니티..... 삼위일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