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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땅에서 피어난 꽃처럼

by 오분레터

어느덧 두 해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가족은 같은 단지 안의 다른 동으로 이사했다. 오래된 투룸에서 시작해 임대와 전세를 거쳐 드디어 처음으로 마련한 우리 집이었다. 낡았지만 햇살이 잘 드는 집이었다. 창가엔 따스한 빛이 오래 머물렀고 오후가 되면 나무 그림자가 벽에 드리웠다. 그 모든 사소한 풍경들이 우리에겐 새로움이었다.


이삿날 아침 손끝에 먼지가 묻은 박스를 옮기며 웃던 아내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낡은 소파를 들여놓고 커튼을 걸며 어디에 무엇을 둘지 함께 이야기했다. 작은 식탁 위에 올린 컵 두 개와 아이들의 장난감이 쌓인 거실, 그 모든 장면이 우리 삶의 조각처럼 소중했다.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우리의 시간이 묻어갔다.


새 터전에서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바람은 매서웠고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냉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집 안은 따뜻했다. 온도 때문이 아니었다. 새 터전에는 ‘시작’이라는 이름의 온기가 있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벽에도 어설픈 가구 배치에도 묘하게 살아 있는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겨울의 끝자락에서 예상치 못한 그림자가 아내에게 다시 드리워졌다.

“나, 다시 그 감정이 찾아온 것 같아.”
아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내 안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것은 여러 번 겪었음에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두려움이었다. 그렇게 아내의 네 번째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우울증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지독히도 끈질긴 녀석이었다. 그 원인을 찾기란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엔 이상하게도 더 깊고 더 조용했다. 마치 겨울바람처럼 소리 없이 아무 인기척 없이 스며들었다.


둘째는 겨우 두 살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엄마의 품을 찾는 아이 앞에서 아내는 점점 지쳐갔다. 식탁에 앉아 밥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었다.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아내는 공허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나는 며칠의 고민 끝에 네 번째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입사 후 얼마되지 않았기에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도 아내와 아이들 곁에는 내가 있어야 했다.


아이들의 식사 준비부터 청소, 빨래, 장보기, 그리고 아내 곁을 지키는 일까지 모든 것이 다시 나의 몫이 되었다. 겨울 햇살이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올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질끈 감은 눈은 잠시의 평온을 품고 있었지만 다시 뜬 눈에는 어딘가 짙은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그 시간들을 조용히 견디며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 겨울도 과연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작은 화분 하나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이 아이, 예쁘지?”

아내는 다육이의 통통한 잎을 손끝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 손끝에는 아주 미세한 행복이 있었다. 그날 이후 집 안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초록이 놓였고 아침마다 아내는 잎사귀에 물을 주었다. 물방울이 잎 끝에 맺혀 투명하게 반짝였다. 그 빛이 점점 아내의 눈에도 스며들었다. 아내의 눈빛엔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마치 잎사귀 위의 물방울처럼 작고 투명한 희망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아내는 아파트에 장이 서는 날이면 찾아오는 꽃집 트럭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는 우연히 한 이웃을 만났다. 그분은 아내보다 훨씬 연세가 있었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장모님과 같은 나이셨다. 날이 유난히 추운 날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 한 그릇을 손에 들려 보내주곤 했다. 그 따뜻한 온기가 문틈 사이로 스며들 듯 조금씩 아내의 마음에도 닿았다. 어느 날 그분이 성경책 한 권을 내밀며 말했다.

“이 안에 네 마음을 위로해 줄 문장이 있을 거야. 읽어도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냥 읽어봐. 밑져야 본전이잖아.”


아내는 처음엔 망설였다. 아내에게 종교는 낯설기만 했고 마음을 열기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밤마다 아이들을 재운 뒤 거실 조명을 낮게 켜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성경 말씀이 아내의 눈을 따라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문장들이 아내의 깊은 곳에 닿을 때마다 오래 굳어 있던 얼음이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내의 눈빛에도 다시 따스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이 말들이 내 마음에 위로가 되네.”
아내는 그렇게 성경을 읽고 기도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아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질 수 있다면 반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안도했다. 아내가 다시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우리의 시간은 느리지만 분명히 흘렀다. 아내의 말수가 점점 늘었고 표정 또한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이들과 함께 웃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아침 식탁 위에 식빵이 구워지고 커피 향이 퍼지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돌아오고 있구나.’

아내에게 우울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아내가 그 그림자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지 않았다. 그건 확실한 기적이었다. 나는 여전히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를 살려준 하나님께 감사한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꽃을 가꾸면서 알게 됐어. 어떤 꽃은 겨울에도 피더라. 눈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면서 피어나.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겨울을 건너고 있었다.


벚나무 가지마다 연둣빛 새순이 오르고 아내가 가꾼 화분에서도 생명의 기운이 피어났다. 물을 주는 아내의 손길은 부드럽고 단단했다. 그 손끝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견뎌온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겨울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가족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의 힘든 계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계절은 너무 길고 어떤 계절은 너무 짧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계절에도 반드시 ‘다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다음’을 살고 있다. 나는 믿는다. 우리의 봄은 계속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봄은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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