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의 기간 동안 우리는 세부에 머물렀다. 다들 처음에 세부에 와서 한국과 다른 급격한 기온 변화로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거나 물갈이로 배가 아파서 고생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우리는 아프지 않고 3주를 잘 보내왔었다. 아프지 않고 이곳 생활을 잘 해준 아이들에게 종종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나와 아이들 모두 목이 꽉 막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더운 날씨 때문에 에어컨 바람이 강한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가벼운 감기에 걸린 거겠거니 생각했다. 한국에서 챙겨갔던 감기약을 챙겨먹고 감기가 낫기만을 바랬다.
수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작은 아이가 몸이 힘들다고 했다. 얼굴빛과 입술을 보니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이는 점심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서둘러 숙소로 데려갔다. 가지고 있던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38.5도가 나왔다. 나는 급한대로 해열제를 찾아서 먹였다. 아이는 해열제를 먹고 힘없이 쓰러지더니 잠이 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열이 떨어지니 아이가 조금 괜찮아졌다고 이야기를 했다. '열만 다시 안 나면 다행이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점심을 먹지 못했던 나와 딸을 위해서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꼬치와 밥을 사와서 먹었다. 먹을때 살짝 비린 맛이 느껴졌지만 유명한 프랜차이즈이고 그나마 필리핀 식당치고 위생적인 곳이라서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그 음식이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전부터 아팠던게 잠복기를 지나서 아팠던 걸까. 그 날 밤부터 나와 아이는 설사로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딸은 38도와 39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식은 땀을 흘려댔다. 내가 이 곳에서 해줄 수 있는 거라곤 한국에서 가져간 해열제를 먹여주고 패치를 붙여서 열이 내리는 걸 도와주고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나 역시 한 밤중에 온몸이 경직되고 추워지는게 느껴졌다. 에어컨을 키지 않았는데도 나는 추위에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토할 것처럼 속이 미식거려서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잡고 토를 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서 설사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한대로 해열제를 찾아보았다. 내 해열제가 보이지 않았다. 내 해열제를 챙긴 줄 알았는데 아이들 해열제만 잔뜩 챙겨왔었나보다. 나는 급한대로 아이 해열제를 먹었다. 하지만 딸기맛이 나는 해열제는 지금 속이 민간한 나에게 너무 역했다. 나는 헛구역질을 했지만 열을 내리기 위해서 억지로 해열제를 입안에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딸은 자다 깨서 배가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급한대로 가져갔었던 백초약과 어린이가스활명수를 번갈아서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약을 챙겨주고 배를 문질러주며 '엄마 손은 약손 00배는 똥배' 노래를 불러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나까지 열이 나면서 내 몸도 만신창이인데 아이까지 아프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목요일 오후가 되자 나는 열이 내려가면서 조금 괜찮아졌다. 하지만 둘째딸은 여전히 열이 났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우리는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4주의 어학연수를 기념하는 수료식 행사는 빠질 수 없어서 참가했다. 맛있는 음식이 준비된 만찬도 있었지만 우리는 과일 조금을 제외하면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다.
금요일쯤 되어서 딸의 열은 조금 좋아졌지만 여전히 배는 여전히 아파했다. 나는 가벼운 장염이겠거니 생각을 했었다. 금방 좋아지겠거니 생각하고 한국에서 챙겨 갔던 약을 계속 먹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토요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딸은 배가 조금 괜찮아졌다가 다시 아팠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무사히 비행기를 잘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딸의 장염이 단순 장염일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장염을 찾아보니 일주일 이상 배가 아픈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였다. 한국에 도착한 당일은 늦은 시간때문에 아이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다는 즐거움에 아이는 배가 안 아프다고 했다. 이제 딸의 장염이 좋아지나보다 생각을 하고 공항과 가까운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 엄마는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우리를 위해서 진수성찬을 차려놓으셨고 아이는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 음식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날 밤 딸은 다시 배가 아프다며 배를 부여잡고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덕분에 신랑과 나도 밤을 꼬박 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일요일에 문을 여는 어린이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보았다. 증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X레이를 찍고 대변검사를 하기로 했다. 대변 검사는 결과가 다음 날 나온다고 해서 우리는 약을 처방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약을 먹고도 딸은 배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오후에 딸이 혈변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바로 응급실로 갔다. 가서 딸은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를 했다. 소장과 대장이 많이 부어있다고 하셨다. 다시 또 혈변 검사를 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EAEC(장응집성대장균),ETEC(장독소형대장균),Campylobacter(캄필로박터)에서 양성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3박 4일을 입원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필리핀에 있는데 아이가 이렇게 아팠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했을지 아찔 했다. 예전 글에 썼던 것처럼 가서 최대한 음식을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장염이 걸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한국에 돌아와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였다. 여행가서 아프면 고생이다. 여행가서는 아프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