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물고 있던 세부 막탄에는 커다란 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그 앞에는 최신식 버스가 서 있곤 했는데 나는 이 버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버스 앞을 보니 IT PARK라고 크게 쓰여 있었고 그곳에 앉아서 버스를 관리하시는 아저씨에게 여쭤보고 나서 버스를 타고 IT파크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우리가 있는 막탄 신도시에서 IT파크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는 정보를 찾았다. 혼자면 버스를 타보기 망설였겠지만 지인들이 선뜻 같이 가겠다고 하니 버스를 타볼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오후에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 버스를 타고 IT파크에 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나섰다. 정류장에서 버스들을 관리하는 아저씨께 여쭤보니 비용은 버스를 타서 내면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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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올라탔는데 안에 시설도 역시나 좋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저씨가 다가오셔서 어디까지 가는지 여쭤보셨다. IT파크까지 간다고 하자 51페소(우리나라 돈으로 1275원)라고 하더니 비용을 걷어가시고 이런 표를 주셨다. 표 값을 찍어주신 것 같은데 41페소라고 뚫려있는데 아저씨는 우리에게 51페소를 받아가셨다. 외국인이라 더 받으시는건지... 아저씨 인건비 명복으로 수수료를 붙여서 받으시는 건지... 알 길이 없었지만 우리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이것까지 물어보는 것은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저씨가 내라는대로 비용을 지불했다. 필리핀에는 인건비가 저렴해서인지 이렇게 버스비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80년대 우리나라의 버스 안내양들이 버스비용을 받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창 밖으로는 세부의 멋진 하늘이 펼쳐진다. 우리가 이 곳에 머무는 동안은 거의 날씨가 좋았다. 한 번씩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금방 비는 그쳤고 멋진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는 멍때리며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세부의 맑은 하늘이 좋았다. 파란 물감물에 하얀 솜사탕이 뿌려져 있는 세부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현실을 종종 잊을 때가 많았다.
창밖으로 날 것의 필리핀이 펼쳐진다. 버스에 앉아서 필리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필리핀은 거리 주변으로 조그마한 식당, 슈퍼 등이 많은데 대부분 집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라 이런 소일거리라도 해야해서 생겨난건지 궁금증도 생겼다.
그리고 필리핀 아저씨들은 낮 시간에도 집이나 가게 앞에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식당이나 슈퍼는 주로 아주머니들이 운영하고 있고 아저씨들은 밖에서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필리핀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가 안 사실이지만 필리핀의 40-50대 남자들은 상당히 가부장적이여서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남자들도 가사 및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필리핀 남자들은 가부장적이고 육아 및 집안일은 여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필리핀은 도로 곳곳에 인도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곳들이 상당히 많다. 가끔은 아이들끼리만 도로를 겁없이 걸어가는 경우가 자주 보였다. 차들도 용케 아이들을 피해서 간다. 차도를 당연하게 걷는 아이들이 용감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엄마의 마음으로 걱정하게 된다. 또 매연을 맡으면서 걸어가는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게 버스는 1시간을 달려서 it파크에 도착했다. it파크는 비즈니스 단지로 쇼핑몰과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막탄 신도시도 깔끔했는데 it파크는 막탄 신도시의 5-6배 규모에 아얄라몰이라는 쇼핑몰까지 있어서 멋진 곳이였다. 우리는 마치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처럼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여 있고 맛집이 즐비한 it파크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깔끔하게 잘 갖추어진 거리에 최신식 건물들과 고급 쇼핑몰까지. it파크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필리핀 내에서 밤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몇 없는데 이곳 it파크는 밤에 다녀도 비교적 안전한 편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얄라몰 쇼핑몰 구경을 하고 막탄 신도시로 돌아오는 버스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버스터미널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막탄 신도시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서는 긴 줄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우리는 버스타는 것을 포기하고 그랩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의 교통체증은 상당히 심각한 정도이다. 처음에는 차도 많지 않은 이곳에 왠 교통체증인가 했었는데 필리핀의 도로는 1차선 아니면 2차선이 대부분이라서 많은 차들을 소화할 수가 없다. 또한 오토바이 이용자가 많아서 오토바이들도 도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는 1시간 걸려서 갔던 거리를 돌아올때는 1시간 30분 걸려서 돌아왔다. 버스를 탔으면 2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지 않고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