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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다, 4] 잔영에 잔영을 겹치면

by 검은개 Mar 18. 2025

자리에 빛이 쏟아졌다. 눈 뜨기 위해선 미간을 찌푸려야 한다. 그러자 번진 빛 가운데 동그란, 저렇게나 동그랄 수 있나 싶은 해가 보였다. 너무 보면 눈이 나빠질까 눈 깔고 아래를 보니, 바닥에 해가 보인다. 잔영. 눈 감으니 감은 어둠에서도 보인다. 내가 너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니 네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니, 잊지 마세요. 잊을 건가요. 동그라미 따라 눈을 굴리자 짧은 통증과 함께 깜박거리다 사라졌다.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쏟아졌다. 걷던 길 멈추고 올려다보니, 마른 몸이 보인다. 마른 몸은 언제 풍만한 몸으로 살았었나. 눈 감고 소리에 힘을 주었다. 샤샤샤. 그들의 은밀한 부위에서 희미하게 나온 뼈가 서로를 비비고. 가지 말라는 듯 우주의 질서를 어기자는 듯 맹렬하게 섬세하게 껴안기를 반복하고. 곧 봄이 올 텐데. 갈라지고 부서지는 죽음의 감각이 잎맥 타고 뻗쳐 줄기 끝마다 사이렌 소리 요란하고. 샤샤샤 잊지 마세요. 샤샤샤 잊을 건가요. 눈꺼풀 할퀴는 바람 따라 무수한 빛이 흩날렸다.     


한번은 악몽을 꾸었는데

여럿 아니, 두세 명이

앙칼진 소리로 나를 할퀴어 댔어    

 

부르르 떨며

감은 눈에 미간 찌푸리고 사라진

빛 찾아 눈알을 굴렸는데 빛은

보일 기미가 없고      


잊지 마세요 잊을 건가요   

  

소리가 나를

심폐 소생술 하듯 누르고

마른 몸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얇은 가지가 보이고      


굴리던 눈알에 힘을 주고

잔영에 잔영이 겹치면 짙어지는 것을

알아차렸지

빛이 곧 잔영인 것을   

   

모로 누워 습관처럼

몸을 웅크리고

습관은 무서운 거라

잊을 수 없다고      


깜박이는 빛 따라 눈알을 굴렸어

선명해지자

웅크린 몸에

온기가 도는 것도 같고      


아침에 일어나면

잊지 말고

마른 몸에 가볍게

분무기로 물을 주자고

소리 내어

말해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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