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27화
사실을 고할 것이 있다. 직장인이 된 후 첫회를 집필했다. 수영을 시작한 건 무직일 때가 맞지만, 연재 중반부 시점에 이미 취업을 해냈었다.
학원을 수료한 뒤였다. 한동안 지하철을 탈 일이 없어져 수영장을 동네 근처로 옮겼고, 마침 새벽반을 등록한 시기에 중소기업에 합격했다. 인사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땐 어쩔 줄 몰랐다. 앉아서 들어야 할지 서서 들어야 할지. 어떤 자세든 몸이 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허리를 굽히고 몸을 겨우 붙들었다. 신입치고 연봉이 높았다. 복지나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과 축하 파티를 하기도 전에 옷부터 사러 나섰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떨림을 지하철 진동에 기대어 느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 소식을 전하는 데에 한 회차를 쓸 마음이 들진 않았다. 취업 성공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어떤 목표든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지’라고 흘렸다.
무직일 때는 먼저 취업한 친구를 만나는 게 힘들었다. 말이 안 통하는 팀장 이야기도, SNS에 야근하기 싫다며 사무실 책상 사진을 올리는 것도 모두 자랑처럼 보였다. 현대는 여유로운 삶보다 정신없고 피곤한 삶이 더 가치 있으니까. 그 삶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시기엔 그랬다.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의 간극이 버거웠다. 나만 빼고 앞서나가버려서, 무심히 툭 밀쳐진 사이 살점이라도 뜯긴 것만 같았다. 이제는 그 원망이 부질없음을 안다. 두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 앞으로도 어디를 향해야 할지 끊임없이 방황하는 모습은 비슷했다.
그때는 뭐가 그리 억울했을까. 왜 누군가 나보다 앞서버린다고 여겼을까. 작년 플래너를 정리하던 중 앞 장에 쓴 문구를 발견했다.
‘난 할 수 있어. 그러니 해내야 해.’
수영을 시작하기 전, 홀로 있는 시간이 길었을 때 자주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 나를 좋아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늘 기대를 걸었다. 이런 믿음을 키웠다.
‘난 특별해. 그래야만 해.’
그는 현대에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해,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고 다그쳤다. 목소리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멈추게도 했다.
그 목소리가 담긴 문장은 뒷 페이지로 갈수록 듬성듬성 새겨졌다. 최근에 개시한 새 플래너를 펼쳤다. 여전히 촘촘한 일정을 새겨두었다. 그러나 하루가 끝난 곳에 빨간 펜으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고생했어.’
어떤 출발선과 도착선이 보이지 않는 간단한 말이었다.
목소리가 사라졌다. 혹시 이미 특별해져서 성불이라도 한 건 아닐까? 지금의 나를 돌이켜보았다. 전국 80% 이상이 근무한다는 중소기업을 다니고, 학력도 어쩌다 인서울. 도시로 겨우 상경한 지방사람. 스펙으로는 특별까지 못 미치는 듯했다. 생각의 흐름을 바꿨다. 타고난 환경이 아주 뛰어나지 않다면, 반대로 타고나길 아주 각박해서 유별난 인물은 아닐지 생각했다. 부족함 없는 경력으로도 근 2년을 백수로 지냈다. 불성실한 적이 없지만 ‘합격’이라는 자격을 얻진 못했다. 이것만으로 특별하기엔 불충분했다. 전국 40만 명이 겪는 하나의 유사 사례일 뿐이었다. 다른 건 없을까. 가장 근래에 우울증을 앓았다. 그리고 그걸 수영으로 이겨냈다. 이것만으로 특별할 자격이 있을까? 수영과 극복, 인생 서사에 관한 단어를 머릿속에서 굴렸다. 그러자 기억의 굴렁쇠가 한 장면에 닿았다. 수영장에서 만난 이가 떠올랐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해맑다’였다. 수달 같은 동근 얼굴에 어머님들과 아버님들,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했다. 팔을 앞으로 뻗어 빠르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어린 인상을 더했다. 낯선 이에게 반가움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 역시 현대에는 귀한 재능이다. 그의 너스레는 누구에게나 관대하여 나와도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수영장 바깥에서 만난 건 첫 회식날이었다. 이름은 민경이었다. 보글보글한 단발펌에 분홍색 멜빵바지를 입었다. 말 한마디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른 후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는 고량주를 마시는 할머니들의 유일한 젊은 술친구가 되어주었다. 자리를 옮겨 그의 옆에 앉았을 때 내가 말했다. 요 근래에 본 사람 중 가장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민경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회원끼리 발걸음을 모았다. 나는 민경언니와 함께 걸었다. 언니의 설레발이 말의 속도에서 느껴졌다.
“오늘 정말 재밌지 않았어? 사람들 성격 너무 좋더라.”
이런 질문도 주고받았다. ‘수영은 언제부터, 어쩌다가 시작한 거야?’ 낯선 이에게 나를 드러내는 건 여전히 어색했기에, 그저 ‘건강이 안 좋아져서’라고 얼버무렸다. 첫 만남부터 우울했다느니 무직일 때 힘들었다느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기엔 겸연쩍었다. 그러나 민경언니는 달랐다.
“나랑 비슷하다. 나는 약간 우울증이 있었어. 몸이라도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거든. 그런데 진짜 재밌어서 하길 잘한 것 같아.”
민경언니는 공무원 시험을 오래 준비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데도 계속 떨어졌다. 움직이질 않은 탓에 살이 붙었고 허리에 무게가 실리더니 결국 디스크가 터졌다고 했다.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에 무언갈 이룬 것도, 내세울 것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우울증에 걸렸다고 묵묵히 이야기했다. 햇살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이에게도 몰래 밤을 버텨온 시절이 있었다. 그의 첫마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랑 비슷하다.’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시기가 있었던 것이,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애써본 순간이.
민경언니와의 대화 이후로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샤워실에서 마주친 이들의 몸에는 여러 흉터가 있었다. 제왕절개를 한 듯한 복부 흉터와, 척추뼈에 갈색으로 물든 수술 흔적, 혹은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씻는 이들이 모였다. 그들의 웃음 사이에 숨겨졌을 그늘을 상상했다. 어쩌면 저들도 특별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겠다. 알고 보면 나와 비슷해서 말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이야기를.
어쩌면 수식어를 갖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업적을 이룬 이에 반해 평범한 삶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불명확하다. 그건 불명예와 다름없다. 그래서 그토록 계단을 그려내고 위를 오르려 했을 테다. 그 끝에 희원하던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이제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소문과 달리 계단 위에만 존재하진 않았다. 카페에서 일을 하려다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 날, 돌연 친구와 피크닉을 떠나버리는 하루에도 숨겨져 있었다. 혹은 한 번도 제대로 발 들인 적 없는 물속에, 그곳에 먼저 몸담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도 있었다. 항상 내가 중심에 서 있는 상상 속 미래가 아닌, 무수한 사람들 사이 흐릿하게 뒤섞여있는 현재에 깊이 녹아있었다.
이번 시리즈 첫 편의 주어는 ‘나’였다.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인 만큼 가까우면서도, 거울을 빌리지 않는 한 생이 다하는 날까지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먼 주어. 마지막은 그보다 더 넓고 풍족한 단어를 꺼내오고 싶다. 하루를 끝내고 잠들기 전, 특별함에 못 미친 나를 다그치는 대신 우리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평범한 인사말과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당분간은 허한 마음에 뒤척이지 않겠다. ‘나’라는 한 단어 대신 ‘우리’라는 두 음절을 곱씹은 덕에 배가 부르니 말이다.
특별한 나, 만나면 비슷한 우리.
그런 우리는 내일도 만난다.
수영장에서, 나를 벗어난 어느 바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