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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아 정신 (한강 수영 2)

<수영하듯 살자> 26화

by 박바림


누군가 수영으로 한강을 건너겠다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주어진 길에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몰랐다. 이색 도전에 격려를 보내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행사를 축제처럼 여기었던 나와 달리, 비장한 대회처럼 인지하는 이들의 말이 조금 가시처럼 따가웠다.


“한강? 물 더럽잖아.”

“그걸 왜 해?”

“2천 미터? 완주 못 하면 어쩌려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머뭇거렸다. 도전하는 이의 마음가짐을 궁금해하기보다는 ‘그거 해봤자’라고 결론짓는 경우가 잦았다. 그 모습에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뭐든 해보는 쪽이 더 좋지 않나. 변한 모습에 만족했건만 쌀쌀맞은 주변 반응에 위축됐다. 겨우 피워낸 불씨에 흙이 덮인 기분이었다.




한강에 막 입수했을 때였다. 우와 떴다. 헤엄친다. 발이 안 닿는 곳에서. 도중에 멈춰 설 수 없는 수영이 시작됐다. 두려움을 잊기 위한 회피인지 수심에 겁을 먹기보다는 다른 생각이 물살처럼 튀었다. 괜히 한 거면 어쩌지. 아니, 어떻게든 완주해서 보란 듯이 좋았다고 해야지.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시작부터 리율을 잃어버렸다. 출발하자마자 자유형을 몇 번 했더니 보이지 않았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모두 똑같은 수모에 비슷한 수경을 써 구별하기 어려웠다. 발차기를 멈추기엔 무서웠다. 하릴없이 두리번거리자 낯선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이쪽은 고인 물이라 저 앞에서 수영하는 게 좋아요. 이렇게 부이에 매달려서 가봐요.”


그는 부이를 턱 밑에 괴고 양팔로 안은 채 발장구를 쳤다. 명함 없이도 낯선 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물속 세상. 그건 한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머니의 친절함 덕분에 불안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를 따라 부이를 가슴 앞으로 끌어왔다. 오리발 덕분에 튜브를 타고 수영하는 기분이었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이를 잡고 옆사람과 대화하는 사람과, 홀로 선수처럼 쉼 없이 헤엄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입꼬리는 내려갈 줄을 몰랐다. 아무래도 내가 맞았다. 이건 대회가 아닌 축제였다.


음- 숨을 뱉었다. 부이를 허리 뒤로 던지고 다시 강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짙은 초록이었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괜찮았다. 25m 정도의 간격으로 라이프가드분들이 보트 위를 지켰고, 고개를 들 때마다 함께 수영하는 이들이 보였다. 자유형을 하다가 지루하면 평영을 했다. 조금 지치면 다시 부이를 잡고 발장구를 쳤다.

그러다 용기가 솟았다. 고개를 바깥으로 고정만 잘해두면 괜찮지 않을까, 슬쩍 수경을 들었다. 눈앞에 흐릿한 무지갯빛 투명 필름이 벗겨졌다. 대신 하얀 실낱같은 구름과 푸르게 갠 하늘, 건너편 도심이 보였다. 한강은 지겹도록 왔다. 그러나 강 안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건 처음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낮은 댐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바람결을 따라 물살이 너울거렸다. 강 전체가 은비늘처럼 꿈틀거렸다.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모두 한강물이 조금 익숙해졌는지 다양한 영법을 시도했다. 옆 사람을 따라 접영을 했다. 아뿔싸. 오버를 하다가 강물을 삼켰다. 물 맛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혀가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목 안으로 들어갔다. 젠장, 나가서 챙겨 온 구충제를 먹어야지. 벌벌 떨던 겁쟁이가 누구였는지 모를 만큼 담대해졌다.


점점 출발선에 다가갔다. 자유형으로 쉬지 않고 가볼까. 부이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넣었다. 한 번 세 번 일곱 번. 대중가요 음악과 사람들의 환호성이 점점 커졌다. 열 번 스무 번, 팔이 땅에 부딪힐 만큼 얕은 지면에 다다랐다. 도착한 이들은 다리를 땅에 딛자마자 비틀거렸다. 몸을 가누기 바빠 완주를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을 대신하듯, 언덕 위에서 누군가의 도전을 기다린 사람들이 환호해 주었다. 누구야, 여기야! 멋지다, 축하해. 그들 사이에 함께 왔던 친언니가 보였다. 휴대폰 카메라로 나를 찍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를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


완주하고 난 뒤에는 누구나 아는 절차로 정신이 혼미했다. 기념품을 차례로 받고, 같이 온 이들과 사진을 찍고 분주히 뒷정리를 했다. 흐릿하던 아침 햇살이 뜨겁게 선명해질 때쯤 함께 온 일행들과도 헤어졌다.

배가 고팠다. 행사 전에는 먹고 싶은 걸 길게도 나열했으나, 끝난 뒤에는 오로지 세 마디만 되뇌었다. 아무거나. 고열량. 배부른 거.

리율과 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먹었다. 음식이 나온 뒤 리율이 말했다.


“우리 첫 수영 끝나고도 여기 햄버거 먹었잖아.”

“맞네, 데자뷔네. 오늘은 첫 야외수영이니까.”


집에 돌아와선 곧장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다. 이를 겨우 악물고 짐부터 정리했다. 수영복에서 구정물이 끝도 없이 나왔다. 내가 여길 들어갔다니. 이 똥물에. 대단한 놈. 혼자 세면대 앞에서 낄낄거렸다.

물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메웠다. 그 사이로 어떤 희미한 목소리가 같이 쏟아졌다. 내가 도전하고자 하는 일이 별로일 거라고, 후회하거나 어려울 거라며, 너무 사실적으로 말해서 믿을 뻔했던 말들이었다. 그러나 청개구리처럼 듣지 않고 다녀왔다. 소심한 반항이었지만 덕분에 그들의 말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묘한 쾌감이 일었다.

침대에 누워 기념품으로 받은 메달을 만지작거렸다. 나조차도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그거 해서 뭐 해, 미래에 도움이 될 것도 아닌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나무랐다. 그러나 직접 발을 담가본 뒤에야 발견한 것들이 있었다. 수영을 했다. 예상과 달리 물이 좋아졌다. 명함 없이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깊은 강물에 뛰어들 모험심이, 나보다 먼저 앞서나가 용기를 북돋아줄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누군가의 만류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 나는 해볼래.”

반항아 정신으로 발견했던 행운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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