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듯 살자> 25화
장마는 사라지고 우기가 된 걸 실감한 여름이었다. 중요한 날 직전마다 비가 한 바가지 쏟아졌다.
<한강크로스스위밍챌린지>라 불린 행사는 6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웻슈트도 미리 빌려두었지만 폭우 덕분에 써보지도 못한 채 반납했다. 4만 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후회가 몰려왔다. 괜히 한다고 했나. 주변에서 만류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7월이 되었다. 이번에도 직전 날 따가운 비가 내렸다. 다시 한 달 뒤로 연기되었다. 두 번이나 미뤄지니 수질과 안전 걱정이 싹 사라졌다. 피부염이 생기든 기생충에 감염되든 상관없으니 그냥 제발 건너게만 해달라고 목에 힘을 주었다.
8월이 되어선 매일 아침 날씨 사이트에 들낙거렸다. 비 안 올 거지? 올 거면 지금 와야 해. 하늘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을 기싸움을 했다. 간절하면 통하긴 하나보다. 8월 셋째 주 당일, 먹구름 낀 흐린 날이 밝았다. 야외수영을 하기엔 되려 탁월한 날씨였다.
함께 출전하기로 한 사람들과 잠실역 7번 출구에서 만났다. 수영장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대화는 처음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도 별난 짓을 함께하기로 한 리율은 지각이었다. 그 대신 든든하게도 친언니가 응원 목적으로 동행했다. 덕분에 수영을 하기도 전 낯가림에 얹히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잠실대교로 향했다. 차도를 따라 걷자 강이 보였다. 다리 아래에 “한크스”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한강 중앙에는 우리가 헤엄칠 구역이 부표로 나뉘었고, 형광 조끼와 빨간 모자를 착용한 라이프가드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바람을 빳빳하게 넣은 아치형 풍선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실망하지 않으려 무장해 둔 심드렁이 금세 녹았다.
수영복은 외출복 안에 미리 입고 왔다. 그럼에도 야외에서 탈의를 하려니 새삼 민망했다. 모여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초보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참 어색했는데. 어느새 끔뻑 지나버린 옛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시절을 함께한 또 다른 주인공이 뒤늦게 도착했다.
“리율이다!”
반가움에 서로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리율의 회사가 바빠진 탓에, 올해 들어서는 처음 같이 수영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 인생에 재밌는 콘텐츠를 남기기 위한 필수 관례였다.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캐노피 구석 통로를 발견했다. 얕은 내리막길이 보였고 그 끝에 강물이 출렁이는 계단이 있었다. 한강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양 발을 담가보거나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도 물온도를 체크해 보자. 리율과 나는 신이 나 오리발을 흔들며 걸어갔다. 밑물이 들어오는 곳에 발 한 짝을 담갔다. 바닥에 슬쩍 비치는 물빛이 누랬다. 확실히 불투명하군. 주변이들에게 한강에 건넌다고 말했을 때, 그 똥물에서?라고 호들갑 떨었던 이의 목소리가 스쳤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을 가리는 피부는 아니었기에 문제없을 거라 다독였다. 한 계단을 더 내려가보았다. 바닥에 살짝 물컹하고 미끌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진짜 괜히 왔나. 겁이 나려 할 때, 옆에 있던 리율은 허리까지 풀썩 담갔다.
“우와 시원해!”
해맑게 웃곤 망설임 없이 자유형을 했다. 팔을 몇 번 능숙하게 젓더니 다시 계단 쪽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정말 단 하나도 안 보여, 낫띵!”
그의 대범함 덕분에 호기심이 솟아났다. 강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수면과 가까운 쪽은 뿌연 녹색안개가 껴있었고 그 아래로는 온통 짙은 갈색, 어둠뿐이었다. 팔을 휘젓는 시늉을 하다가 곧바로 계단 쪽으로 몸을 틀었다. 와하하. 리율을 보며 억지로 웃음을 터트렸지만 몸이 조금 뻣뻣해졌다. 이 시야로 2,000 미터를 횡단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우리는 다시 캐노피로 돌아왔다. 중앙 행사무대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소 형식적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 오늘 오신 분들 중 내가 가장 어리다! 있나요? 11살! 부모님이랑 같이 왔어요. 그러면 반대로 내가 제일 고령자다! 오, 어머니 7학년 8반!”
내 생애주기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이 함께 한강을 건널 예정이었다.
마지막 식순으로는 다 함께 체조를 했다. 수영장에서부터 몸에 익은 체조였다. 몇 동작을 한 뒤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길게 울렸다. 사회자가 말했다. 오전 첫 반 이동합니다! 나는 서둘러 안내데스크에서 받은 파란 수모를 썼다. 파란 수모를 쓴 사람들이 한 곳에 뭉쳐 까끌한 흙바닥을 걸었다.
강물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보였다. 양 옆 그물막에는 부이가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탄탄해 보이는 걸로 하나 골랐다. 이제 정말 입수할 시간이다. 매듭을 푸는 손이 떨렸다. 리율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다 됐어?”
그는 벌써 준비를 끝내고 기다렸다. 이리 줘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대신해 허리에 부이를 채워주었다. 평소에 덤벙이던 그를 챙기는 건 내쪽이었건만, 오늘은 되려 큰 의지가 되었다.
함께 온 일행과 설레발을 떨고, 언덕 위 울타리에서 잘 다녀오라는 친언니의 격려에 손을 흔들며 앞으로 걸었다. 어느새 강물이 육지로 밀려오는 곳에 다다랐다. 오리발을 신고 조심히 걸었다. 발목에서 종아리, 허리까지 수심이 깊어졌다. 최신 유행하는 대중가요가 심장을 두드릴 만큼 크게 울렸다. 덕분에 긴장한 건지 신이 난 건지 분간이 안 되었다.
앞을 보았다. 흐릿한 회색 하늘 아래에 파란 수모를 쓴 이들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먼저 앞서간 이들이 있다.
그 모습을 상상할 때면 조급해져 몸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직된 몸에 힘이 풀렸다. 그들의 뒷모습을 따라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어떤 이가 구호를 외쳤다. 모두 그 목소리를 따라 손에 주먹을 쥐고 외쳤다.
“파이팅!”
리율과도 눈을 맞췄다. 우리는 빙글 웃으며 주먹으로 툭 하이파이브를 했다.
첫 야외수영. 한강 수영은 처음. 처음, 처음 수영했던 날, 가장 먼저 배웠던 호흡을 가다듬었다.
음-
한강에 입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