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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도가 지나간 자리

마음속 그림자

by 하성운

일정한 무늬가 반복하다 약간의 기형이 생겨났다. 똑같은 문양과 일직선으로 쭉 뻗은 하나로 통합된 길에 혼자만 다를 이유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깨지고 색도 거무튀튀한 것은 블록을 깔 때 작업자가 실수로 다른 종류를 섞어 놓았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한 종류는 별것도 아닌데 괜히 눈에 가시이다. 도로 위에 반사된 자동차의 불빛이 시야 전체를 감싸다 천천히 사라지길 반복할 때마다 고개를 꺾을 듯이 바닥을 바라봤다. 차주가 본인의 모습을 보고 일시적으로 생긴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앞길을 멈추기라도 할까 봐서이다. 지나가는 차주들은 계속해서 본인과 가까워질수록 일정한 간격이 아닌 간헐적으로 감속했다. 묵직한 저음이 길게 이어지는 도중, 타이어와 바닥이 맞닿는 소리가 거칠게 폭발했다. 폭발음은 미세하게 대중가요를 싣고 있었는데, 본인과 다른 차들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소리에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야유했다. 서로 맞추기라도 한 듯 지나치게 단조로운 모습과 행동들은 세상이 맞춘 기준이었다. 호기심과 불편함으로 가득 찬 시선이 느껴지면 재빠르게 도망가야 했다. 누군가가 바라지도 않는 관심을 너무나 쉽게 주기 때문이다. 시원한 싱그러움 속 날씨와 맞는 열기가 스쳐 지나갔다. 산뜻한 바람을 천천히 즐기던 사람들은 그 열기를 지나칠 때마다 걸음을 빨리했다. 원래 즐기던 그 싱그러움으로 다시 돌아가길, 두 번 다시 원치 않는 불쾌감이 오질 않길 바라며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주변 건물은 휑했고 끊이지 않는 싱그러움 속 가끔 열기가 흘러나올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열기는 문을 열었고 이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자애는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 애가 태어난 곳의 모국어는 ‘침묵’이었다. 보통 내뱉는 말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들 하지만 여자애는 마음의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좋고 편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일순간 본능에 사로잡혀 본인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토해내기도 한다. 여자애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쓸데없는 소음을 만들 때마다 항상 울화가 치밀어 보는 이가 눈이 아프도록 더 밝게 빛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일반 사람과 있을 때 미친 듯이 어색했던 정적이 여자애와 있을 땐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애는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고, 굳이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 같이 있는 그 순간을 가치 있게 여겼다. 저곳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인파였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였지만 이제껏 겪어온 모든 좋은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여자애는 그 모습이 흥미로워 다가가려 했지만, 더 이상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었다. 새롭게 생긴 책임감, 성실함이 조금이라도 사라지면 여기서 상황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자애는 잘 따라오는지 돌아볼 필요 없는 듯, 청하의 졸래졸래 따라갔다. 그리곤 뒤에 바싹 붙어 아까 하던 것을 마저 했다. 가는 길의 생김새를 들여다보고, 일정한 듯 불안정한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생경한 변화에 집중했다. 이러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과 동시에 무료함이 사라졌다. 공동현관문을 열어 둔탁한 소음을 내며 들어갔다. 한 층, 한 층 높아질수록 긴장감이 숨을 조여왔다. 점점 땀이 맺히고 속이 안 좋았다. 근데 겉이 더 안 좋았다. 청하가 문 앞까지 온 상황에서 손을 뻗지 않고 머뭇거리자, 여자애가 단호하게 여기냐고 물었다. 비밀번호를 맞게 입력한 지가 한참인데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벌컥-하고 순식간에 문이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안에서 걸쇠를 푸는 것 같았다. 아까 있었던 자리에 머물렀다면 몇 곳은 부어올랐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심 소름이 돋았다. 여러 잡음이 사방을 돌아다니다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셋 중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청하는 상황을 주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앞에 있는 사람은 멀뚱멀뚱 둘을 쳐다보기만 했다. 여자애는 그냥 졸리기만 했다. 소지품이라곤 액정이 나간 휴대폰에 여기저기 찢어진 그들의 몰골은 상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끼익- 철문 열리는 소리가 다시 주변을 울렸다. 내부가 어두워서 아까까지 머리카락 끝만 살짝 보이던 실루엣의 맨발이 나타났다. 귀신같이 새하얗게 혈관이 드러나 있었고, 발목 부근은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청하는 순간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여자애는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우리 들어간다~?"

"싫은데. 다시 그대로 나가."


여자애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주소가 분명히 맞을 텐데 생판 모르는 남이 문을 열어 줬다. 상대는 너네 아주 모양새가 가관이라며 그 꼬락서니가 된 이유를 설명해서 본인을 설득하지 못하면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아직 놀랄 일이 더 남았는지 청하는 제멋대로 나가려는 정신을 부여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눈앞에 사람은 대충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저 여자애의 특이한 생김새는 뭐냐고 물었다. 여자애의 존재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뭐가 있나 고민하다 여자애가 먼저 본인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존재라며, 지금 들여보내지 않으면 남은 일생을 후회하며 살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여자애에게 침을 뱉으며 꺼지라 했다. 순식간에 여자애의 손이 상대의 머리를 붙잡았고 곧이어 기이한 소음으로 귀를 어지럽혔다. 두려움이 몸을 굳게 하기 전에 필사적으로 여자애를 제지했다.

"그러지 마, 죽이면 안 돼!"


상대가 움찔거리며 이제야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자애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불쾌감을 보이자, 여자애는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청하에게 물었다. 머리 위 센서등이 계속해서 깜빡였다. 닫힐 듯 말 듯 한 철문은 아까부터 거슬리는 소음을 냈고, 계단을 내려가는 이들 몇몇이 이쪽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신경을 긁었다.


"내가 이러는 게 싫어?"

"미안해. 날 위해 행동해 주는 건 백번 천 번 고맙지만, 널 위해서라도 이제 이러면 안 돼."

미세하게 남아있던 웃음기와 장난기가 사라졌다. 누군가 몸을 송곳으로 천 번은 넘게 찌른 듯 공허하고 불쾌하다. 여자애가 머리를 기울여 청하를 가만히 바라봤다. 눈을 비비고 봐도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청하는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묘한 기류가 서로를 더 자극하기 전에 눈앞에 상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야 너네, 사고 칠 생각이면 이 집에 발 들일 생각 하덜덜 말아라."



***



자동차 경적이 시끄럽게 울리자,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떠졌다. 몇 번 숨을 헐떡이다 힘겹게 눈의 초점을 맞추었다. 뒤이어 유백색 천장과 특유의 가정집 냄새가 정신을 일깨웠다. 소리가 울리는 복층이었다. 청하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곧바로 울타리를 잡고 아래를 보자,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이질감이 들었다. 여자애가 어제 만난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

"그래서... 넌 외계인 같은 거야?"

"지구에서 태어났으니, 지구인이야!"

"야이씨, 네 생김새가 어딜 봐서 지구인이야? 양심이 있어야지, 네가 살던 곳은 어딘데? 누가 널 사회에 방생해 놓은 거야?"

"난 바다에서 살고 있어! 난 내 의지대로 행동할 뿐이야!"

"아니 외계수달인어 아가씨, 여기가 바다만큼 멋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빨리 너희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아얏, 아얏!"


상대가 여자애의 양쪽 볼을 잡고 쭈욱 쭈욱 늘렸다. 여자애는 인과력 때문인지 상대에게 해를 끼칠 수 없었다. 그저 놓아주길 기다리며 노려볼 뿐이었다.


"싫어! 여기에 지낼 수 있게 해 달란 말이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애초에 넌 왜 지구에 온 거야?"

여자애의 설명은 장황하게 펼쳐졌다. 오래전 외계 종족 두 명이 지구를 방문했다. 단순히 여행이 목적이었던 그들은 지구의 아름다움에 점점 녹아들더니 이내 완전히 정착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찾기 힘든 바다로 가 몇 년간 자유로이 지내다 세월이 흘러 더럽고, 지저분하고, 혼란스럽고 위험한 것들로 인해 육체가 점점 부식되어 갔다. 그것을 잔재물이라 불렀다. 그것은 가진 힘을 전부 써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은 짧지만 아름다운 생을 끝내고 어리고 튼튼한 새로운 육신을 만들어 자식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본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물려주고 소멸했다. 새로운 영혼들은 둘이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폭풍우가 일어난 날 이후로 잔재물이 먼바다까지 떠밀려 오기 시작했다. 반려는 새로운 거처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나머지 한 명은 자신의 반려를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그럴 듯 하긴 한데."

"혼자는 외로우니까, 반려랑 꼭 같이 있어야 해!"

"난 너네가 있으면 불편한데, 계속 있겠단 거네."

"너 싫다!"

"그렇게 면전에다 말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 줄이야. 왜 싫은데?"

"못되게 굴어서 싫고, 담배 냄새 나서 싫어!"

"싫으면 내 집에서 나가."

"언니 집이잖아!"

여자애가 윽박지르는 소리에 놀라 청하는 원래 있던 자리로 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일이 더 커질 것 같아,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바닥을 짚으며 휴대폰을 찾았다. 휴대폰은 액정이 깨지고 여기저기 흠집이 나 이미 수명을 다한 것 같았다. 충전기 옆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오밀조밀한 언니의 글씨체였다. '혼자서 참아내고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평소에 너를 잘 챙겼어야 하는데 언니로서 면목이 없다. 저 애는 같이 지내는 언니 친구인데 너랑 같은 나이고, 나래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어. 입이 좀 험하지만 이름만큼 성격도 예쁜 친구라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 많이 늦었지만 도와주고 싶어.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렴.'

"야야, 처맞은 곳 자꾸 긁지 마 덧나잖아. 밴드 새로 붙여. 저기 구급상자 떡하니 놓여있잖아.“

"난 저게 뭔지 몰라, 생전 처음 보는 걸!"

"뭐야, 그래서 어제 쟤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준 거구나? 나참, 애기도 아니고."

청하는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애가 나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나래는 잠시 생각하더니 여자애의 어깨를 툭, 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래, 이따구로 말해서 싫은 거지? 알았어, 표정 풀어."


자연광이 창살 너머로 흘러들어와 둘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아플 법도 한데 둘 중 그 누구도 자리를 먼저 뜨지 않았다. 나래는 두 다리를 자연스레 뻗어 얇은 연기를 창문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여자애는 비눗방울을 손에 쥐고 나래를 향해 후 불고 있었다. 저리 가라는 신호였지만 나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짝짝, 나는 나래."

"이름 없어!"

"이 세상 다 구라야. 이건 말도 안 돼."


한순간에 풀린 긴장이 수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밖은 새벽이 아니라 저녁이었다. 청하는 순간 손이 미끄러져 쿵, 소리를 냈고 저 밑에 둘은 동시에 위를 쳐다봤다. 반사적으로 몸을 말아 바닥에 달라붙었다. 아래에선 청하의 위치가 보이지 않았다. 나래는 일부러 숨은 사람을 굳이 아래로 부르지 않았다.


"쟤랑 학교 복도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었어."

"같은 학교야?"

"지금은 내가 자퇴해서 아니야."

동아리 후배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잘 어르고 달래어 그 애와의 문제는 잘 해결되는가 싶더니, 며칠 이후에 헛소문이 돌아다녔다.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선을 넘는 말장난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누구를 욕하는 건지 굳이 이름을 꺼내지 않아도 모두 다 알고 있었고, 질 나쁜 소문이 돌아다니는 데에는 큰 이유가 없었다. 뒤에서 교묘하게 입을 터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당당하게 다닐수록 소문은 더 거세져만 갔다. 결국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사람 한 사람의 존재를 오물로 만들어버렸다. 신고를 해도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처벌 수위를 올리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했다. 종국엔 소문이 전교생한테 퍼지고 말았다.


"쟤도 자퇴할 줄 알았어. 나랑 말 나누는 애들 족족 다 등신 취급당했거든."

"걔네 진짜 못됐다. 남을 상처 입히는 게 사람의 본능이야?"

"뭐, 심심해 죽겠는데 가지고 놀 게 사람밖에 없나 보지."


여자애가 비눗방울 부는 것을 멈추고 나래를 바라봤다. 밖은 점점 군청색으로 변해갔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나래는 불이 꺼진 꽁초를 창문 밖에 던지며 말했다.


"할 게 없어서 그냥 그러는 애들도 있고, 스트레스 풀려고 그러는 애들도 있고."


나래는 온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손목에 붕대가 감싸져 있으면 주변에서 오해를 하기 쉬웠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태클도 걸지 못하게 몸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싼 것이었다. 제 딴에는 열심히 감추려 한 건데 그리 좋게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관심 주기조차 조심스러운 나래의 의도는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여자애는 등을 완전히 기대며 말했다.

"너희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자꾸 불행한 일들이 파도처럼 덮쳐와."


여자애는 긴장이 풀어진 것처럼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발끝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거센 바람 한 점이 옷깃을 스쳐 지나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흐름에 시선이 따라가 자연스레 집 안을 둘러봤다. 나무 울타리가 돋보이고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딱 봐도 관리가 잘 된 집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공간인데, 보이는 요소와 분위기에 향수가 엄청나게 느껴졌다. 여자애는 새로 바뀐 환경 덕분인지 기분이 점점 괜찮아졌고 나래랑 얘기하는 것도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파도를 없앨만한 능력이 없어. 고작 피하는 게 다 인걸, 파도는 다시 덮쳐 올 거야."

"졸라 시적이다. 어떤 영화 대사에서 그러더라. 바다는 파도가 미친 듯이 칠수록 사람을 물에 잠기게 하잖아. 가끔 보면 정말 무서워 죽겠는데, 왜 사람들은 힘들 때마다 바다를 찾녜.“

청하는 자신도 모르게 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언제 싸울지 몰라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둘의 대화는 평화롭고 흥미로웠다. 그냥 필요할 때 부르라는 냥 그렇게 가만히 누워 계속 얘기를 들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간 바다에는 잔물결 위에 반사돼서 반짝이는 윤슬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고요한 빛을 보고 위안을 얻잖아."

"그래 맞아!"

"바다가 한 사람의 생애이고, 파도는 솟구치는 감정의 변화고, 윤슬은 희망이래.“


나래가 고개를 돌려 여자애와 눈 마주쳤다. 뒤돌아본 여자애의 얼굴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잔뜩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위에 있는 사람도 무엇일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순간 오글거렸는지 말끝을 흐렸다. 여자애는 삽시간에 표정이 밝아지더니 이내 광대가 하늘로 승천할 정도로 웃었다.

"그렇구나! 난 특정한 순간에 반짝이는 희망이구나, 윤슬이구나!"

"아악! 개 부끄러워!"

"난 윤슬이야! 난 윤슬이야!"


그대로 나래를 내팽개치고 우당탕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갔다. 청하는 화들짝 놀라 날아오는 것을 허둥지둥 받아냈다. 윤슬은 청하의 옷에 얼굴을 파묻으며 한껏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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