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색 옷을 곱게 입고 손을
다소곳하게 다리 위에 포갠
소녀가 공원에 앉아있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
소녀는 이름이 없다
명칭으로 불릴 뿐
단순히 그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꽃을 놓고 누군가는 규탄을 던진다
소녀는 반응하지 않는다 묵묵히 경청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소리도 없다
눈길도 주지 않는다 정면만 응시한다
소녀는 죄가 없다 죄를 지을 수가 없다
곧은 자세로 그대로 그곳에 현존할 뿐이다
겨울이 오면 소녀의 목에 목도리를 감아준다
털실로 뜬 스웨터를 선물한다
두꺼운 오리털 점퍼를 입고 소녀가 앉은
뒤편에 현수막 걸개를 건다
소녀의 몸에 걸쳐진 옷을 찢는다
사진을 찍는다
눈살을 찌푸린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공원관리인도 나서지 않는다
소녀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