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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리셋되는 아이.

쉽게 되는 게 없다. 

by 글맘 라욤 Mar 20.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이의 경기가 발견된 후 처음 받는 외래의 날이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 입구에 들어섰다. 

병원 안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이렇게 2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외래 예약 시간이 15분 정도 남아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은지 계속해서 서지 않고 지나갔다. 

아이에게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고 이끌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선 아이는 강하게 거부하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탄지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아이는 에스컬레이터 타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계단이 쉬지 않고 올라가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공포스러웠던 모양이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엘리베이터는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아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옆에서 보던 한 분이 "제가 같이 잡아드릴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못 올라가고 있는 아이가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마음씨 고운 분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분의 손을 아이가 잡지도 않을뿐더러, 아이의 덩치가 크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도 있었다.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아이가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다시 강하게 잡아끌어 아이를 태웠다. 


작은 일 하나도 아이에게는 버거운 과제가 되어 버렸다. 

경기도 외곽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우리 가족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고 이렇게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곳은 피하는 편이다. 이제, 아이의 건강 때문이라도 병원을 방문하는 일들이 늘어나는데 이런 작은 거 하나도 어려워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다녀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이 날은 작은 아이의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라 아이 아빠가 오지 못했다. 

혼자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보고, 약을 타야 했기에 서울에 사는 친정엄마께 SOS를 쳤다. 

세브란스 병원은 규모도 크고, 각 과별로 분리가 되어 있어서 나이 드신 어머니가 우리가 있는 병동에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헉헉대며 2층 진료실 앞에 온 엄마를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일흔다섯의 나이에도 딸의 부름에 한걸음에 와 준 엄마가 고마우면서도 죄송했다. 

진료룰 보고 다행히 다음 예약일은 6개월 뒤로 하자는 교수님의 말씀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뇌파검사를 6개월 뒤에 하자는 말에, 아이가 뇌파검사할 때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알기에 이렇게 빨리하지 말고,  겨울에 다시 하자는 의견을 드렸다.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검사도, 아이에게는 대단히 큰 일이었다. 

머리에 무언가를 바르고 붙이는 일이 아이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극도로 거부하고, 울며, 검사를 진행되는 동안 묶인 팔을 휘두르고 악을 쓰며 울었다. 

첫 번째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가 클레임을 걸 정도였다. 


경기파가 발견된 이후 가장 걱정되는 게 이거였다. 

아이는 뇌파검사를 견딜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에게 이런 검사를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다. 


다음 주에는 치과가 예약되어 있다. 


병원도 가지 않고,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살고 싶은데... 아이의 건강은 그렇지 못하다. 

익숙해지길 바라지만, 아이의 뇌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번 해 보면 두 번 해 보면 여러 번 해보면 이해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아직 그러질 못한다. 


매번 병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는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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