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토마토. 상추. 옥수수.
당근은 당근인 줄만 알았는데 씨앗으로 심는단다. 자그마한 고랑을 내어 쪼르르 심은 씨앗이 정말 당근이 되었다. 땅속에서 자라는 작물은 보물 찾기와도 같아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당근은 잎부터 "나 당근이야"하고 티를 낸다. 누구나 뾰족뾰족한 당근잎을 보면 당근밭을 알아볼 수 있다. 잎이 잘 자라는 것을 보다가 땅 쪽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주황색이 보이자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다. 당근씨를 심은 곳에 당근이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너무 신기해서 보고 또 보게 된다.
이제 당근 뽑아도 되겠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 아이는 외친다.
"나는 토끼라 당근이 좋아요~"
아이들은 뽑는 재미에 빠져 쏙쏙 잘도 뽑아 먹는다. 비록 손가락만 한 당근이지만 바로 뽑아 씻어 먹는 당근맛은 어디에 비할 수 없다.
원래 이렇게 당근 향이 강한 건가? 마트에서 사 먹던 당근에 비해 밭에서 바로 뽑아 먹는 당근은 향이 아주 강렬하다. 당근 뽑기에 재미 붙인 아이들은 이제 텃밭 최애 작물로 당근을 뽑는다.
동글동글 알알이 색색이 방울토마토가 이름처럼 방울방울 달린다. 적당히 익어야 딸 수 있고, 너무 익으면 맛이 별로고 덜 익으면 못 먹는다.
나중은 없다.
"지금이다!" 하는 순간 지체 없이 따서 맛있게 먹는다. 다 때가 있는 법. 자연의 가르침인가 싶다.
이렇게 색으로 향으로 때를 알려주면 좋겠는데 아이와 내가 자라는 것은 어떻게 때를 맞춰야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마음으로 드려다 보려 노력하는데 잘되지 않을 때 방울토마토를 생각하자. 지금이라 느껴질 때 지체 없이 행동해야지.
연하고 맛있는 상추를 먹기 위해 상추 모종을 다시 심는다. 계절을 길게 나는 아이들은 이렇게 나누어 심으면 먹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니 잘 계산해서 심어야 된다. 매일이 배움의 연속이지만 또 하나 배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육아와 농사는 닮은 구석이 많아 보인다. 농사도 육아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거 같네.
"옥수수~ 옥수수~ 나는 좋아요~."
연신 노래를 부른다. 옥수수는 한 대에 한 개나 두 개만 열린단다. 옥수수를 따고 기다린다고 또 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열린 옥수수를 따면 대는 과감히 뽑거나 잘라낸다. 옥수수도 어려운 작물은 아닌 것 같다. 심어놓고 조금만 돌봐주면 키도 쑥쑥 잘 자란다. 하지만 다른 작물과 함께 키우려면 신경 쓸 것이 있다. 키가 큰 만큼 다른 작물에 햇빛이 안 갈 수 있으니 밭의 가장자리나 끝쪽에 심어야 한다.
"옥수수 알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
"새어봐야지요~"
"백개요~"
의견이 분분하다.
"옥수수수염 개수만큼 열린데~"
"그럼 옥수수수염을 세어야 하나요?"
"어차피 세어야 하는 것은 같네~ 하하."
귀여운 아이들의 대답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옥수수는 비료 주고 약친 것이 아니다 보니 중간중간 이가 빠져있고 자그마하다. 하지만 금방 따서 껍질을 벗겨 놓으니 반짝반짝 윤이 난다. 우리끼리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우리 몸도 좋아할 거라며 좋은 말만 한다. 예쁜 말 좋은 말 들은 것이 맛도 좋겠지. 예쁘고 좋은 말 감사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잘 자라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