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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느냐

그 긴 습작의 시간 3부 : 가야 할 길, 순응의 길

by 김덕용



[ 보이느냐 ]



명주실같이 까칠한 성깔 부리며

살그머니 다가서는 바람이여

고요히 스치리라 다짐해온 가을날이

급하다고 소리치는 사연은

가련히 시들어갈 단풍 때문인가

되돌아갈 여유조차 없이

너무도 냉정히 꺼꾸러져 갈 낙엽처럼

쓸쓸히 나부끼는 마음의 추(秋)여


바삐 움직이는 삶의 거울 앞에서

남기고 싶은 여운 속에

새로운 생명체를 간직하고 싶어

하염없이 추락해 들어가는

처진 어깨를 추켜세우고

조심스레 쓸리어지는 잎새를 밟으며

목화솜처럼 포근한 안식을 찾아

조촐한 사당 거리의 책자를 뒤적인다


아무도 아는체하는 이 없이

냉정하게 뿌리치어지는 손길들이

호주머니 속으로 숨어버리고

살판나는 세상 자연스레 흥청거리며

조금만 더

서운하다고 보채는 세인아!

겨울의 혹독한 소리가

산등성이에 걸려있는 것이 보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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